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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Han Aug 24. 2021

당근마켓 2.0, <동네생활 서비스>를 분석한다(4)

경험의 핵심 개념 : 상호작용성

본 내용은 2021년 봄 <UX 기획의 이해>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혹시 앞 글을 놓치신 분들을 위해..!)



동네생활 탭의 등장은 상호작용 및 상호작용성의 교과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상호작용은 ‘서로에 대해 알고 서로를 인지할 수 있는 두 사람 이상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상호작용을 위해 필요한 요소는 복수의 사람, 서로에 대한 정보, 서로에 대한 인지를 가능하게 하는 솔루션(인터페이스)의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당근마켓의 동네생활 탭이 상호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각각의 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상호작용의 3요소 : 사용자들, 정보, 인터페이스


중고거래 : 사용자 모으기

당근마켓은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목표로 시작한 서비스이니만큼 복수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동네 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당근마켓이 깔은 '판'을 중고거래 서비스(이자 당근마켓 1.0)라고 보면 어떨까. 기존의 중고거래 서비스와의 차별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동네기반'이라는 콘셉트는 여러가지 상황과 맞물려 사람들의 관심이 당근마켓에 쏠리게끔 도왔고, 자연스럽게 중고거래 매니아들의 스마트폰에 중고나라, 번개장터, 네이버카페에 이어 당근마켓을 4번째로 추가시키는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당근마켓 1.0이 중고거래를 매개로 많은 사람들을 모았고, 가입된 사용자들이 자신의 거래 정보를 주고받았으며, 앱이 사용자 간 인터페이스로 작용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 시기의 당근마켓은 상호작용을 논하기에는 약간의 손색이 있었다. 

사실 중고거래를 하는 데 있어 상대방을 깊게 알 필요는 없다. 대부분 한 번 보고 말 사이인데다가, 직거래를 위해 만난다고 하더라도 한 두마디 주고 받는 것으로 거래는 가능하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정보가 있다. 구매자는 판매자가 사기꾼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고, 판매자는 구매자가 '잠수' 혹은 '불발'을 하지 않을 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불발이라면...어쩔 수 없지

즉, 상대방의 거래 신뢰도, 거기에 더해 거래 과정에서 불쾌한 경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친절도 등은 중고거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정보이며, 이를 통해 내가 성공적으로 물건을 거래할 수만 있다면 사실 그 거래는 외국 사람과 하는 것이든 늑대인간(?)과 하는 것이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당근마켓은 이 같은 니즈를 파악했는지, 서비스 사용 과정에서 수집한 개인의 친절도와 신뢰도 등의 정보를 매너온도라는 수치로 수량화하여 제공하고 있다. 매너 온도는 36.5도에서 시작해서 100도까지 올릴 수 있는데(나는 현재 48도로 더이상 인간의 온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매너온도를 기준으로 거래 상대방을 가늠하며, 보통 매너온도와 거래 만족도 사이에 양적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매너온도를 바탕으로 중고거래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어떨까?
어떤 사람이 한강 러닝을 같이 하자며 글을 올렸는데, 그 사람이 일주일에 몇번씩 만나 러닝할 만한 괜찮은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1번만 갈 요량으로 별 생각 없이 모임에 나가보는 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지만, 그 1번이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 될 지 모를 일이며, 혹시나 나간 모임에서 하필 학창시절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네 친구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면 어느 새 모임에 나갈 생각은 쏙 들어가버리고 만다.(절대 운동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중고거래와 달리 동네모임은 그 지속성의 강도가 다르다. 동네에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얼마든지 마주칠 가능성이 다분할 수 있는 사람이고, 같이 무엇을 한다는 점에서 상대방과 얽힐 일이 많아진다. 모임 주최자의 매너온도와 모임 만족도의 상관관계도 없지는 않겠지만, 중고거래와의 상관관계와 비교하면 분명히 유의미하게 낮을 것임에 나의 당근마켓 이모티콘 스티커를 걸겠다..!

매너온도는 앱 상에서 제공되는 정보인 것은 분명하지만 커뮤니티의 기준에서 다른 사용자를 인지할 만큼의 정보량을 갖고 있지는 않다. 또한, 인터페이스 차원에서도 다른 사용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사실 당근마켓 앱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정보량이 있어야 상호작용을 하기에 충분한 정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능동성 + 변화 = 상호작용

리츠(Reetze)는 상호작용성을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접근하여 무엇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이라고 정의하는데, 매너온도, 혹은 거래내역이라는 정보는 사용자의 능동적 접근과 사용자 간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열어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네생활 탭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 내 타임라인에 재밌지만 간절한 글이 올라왔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유저 입장에서 나름대로 당근마켓 서비스 분석을 해보겠다는 핑계로 당근의 맛(?)에 빠져 하루 왠종일 당근마켓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 저녁 늦게 'a4 용지 1장만 기부받아요 ㅜㅜㅜ' 라는 글이 올라왔다. 내용을 읽어보니, 다음날 제출할 과제를 쓰는 데 A4 용지가 딱 1장 모자란 상황인 학생이 고심끝에 올린 글인듯 했다. 갑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는데, 예전에는 과목 시간에 이런저런 준비물이 참 많이도 필요해서 전날 미리 준비를 해놓아야 했다. 문제는 월요일에 주로 발생했는데, 학용품이나 미술용품 등을 파는 문방구가 주말, 특히 일요일에는 무조건 문을 닫아 준비물을 구할 수가 없던 것이다. 

요즘은 온라인, 학교차원에서 준비물을 일괄준비해서 학교앞 문방구가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요즘이야 다이소에 가면 당시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일요일 10시까지 구할 수 있으며, 왠만한 것들은 24시 편의점에 가면 모두 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A4 용지 1장을 파는 곳은 없다. 물론 한묶음을 살 장소는 잘 찾으면 물색이 되겠지만 내가 글을 확인한 시점은 이미 10시가 넘은 때였다. 근처 편의점에서 아까운 돈을 쓰는 것 외에는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그가 택한 것은 당근마켓에 '판매글'을 올려 보는 것이었다. 


일단 밤늦은 시간 a4 용지를 중고나라나 번개장터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동네 사람이면 밤 늦게라도 반응을 해줄 지 모른다는 생각에 당근마켓에 글을 올린 것이겠으나, 당근마켓에는 '구매글'을 올리는 시스템이 없었다. 당연히 나눔을 요청하는 글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 자신의 판매글(?)을 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마침 A4 용지가 1장 있으면서, 준비물을 구하지 못해 난감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에 너무 깊게 이입한, 당근마켓의 다양한 서비스 경험을 수집하는 한 사람의 오지랖으로 인해 그는 집 근처에서 A4 용지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보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잔머리를 굴리다가 구매하지도 않은 A4 용지에 대한 구매 후기를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메시지를 받은 그는 판매하지도 않은 A4 용지의 판매 후기를 작성해서 고마운 사람에게 전달하며 이 사건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지금이야 동네생활 탭에 글을 올리기만 하면 수 분 내에 댓글이 달려 어렵지 않게 a4 용지 한장 쯤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때는 동네생활 탭의 존재를 모르는 유저들도 많았을 것이고, 작성자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을 만들어 원하던 것을 쟁취했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을 것이다. 나야 서비스 분석을 해야 하니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를 <중고거래 플로우(업로드-채팅-만남)의 일부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편법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이름붙였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무엇보다도 불편하고, 다수를 대상으로 한 사용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당시 당근마켓 1.0에서 중고거래를 위해 지원하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은 상호작용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무려 채팅이 된다! 요새는 전화도 할 수 있다), 상호작용성을 충분하게 지원하는 인터페이스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중고 거래 외 지역 커뮤니케이션' 사례가 비단 나에게만 발생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전제조건은 충분히 갖췄다. '당신의 근처' 라는 콘셉트가 그랬고,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성공적으로 사용자들을 모으게 되었다. 당근마켓에 모인 많은 유저들로부터 지역 커뮤니티가 갖춰야 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형식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고 이를 해결하고자 동네생활 탭을 추가한 당근마켓 2.0이 생겨났다는 것으로 나의 가설을 정리해 볼 수 있겠다.

 

동네생활 탭의 플로우(포스팅-공감-댓글-리포스팅)는 리츠가 말한 '능동적 접근', '사용자 간 변화'가 용이하도록 개선되었다. 이는 당근마켓 2.0의 신규 기능이 사용자의 상호 인지를 도와 상호작용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개선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당근마켓 2.0을 통해  사용자-정보-인터페이스의 3박자를 두루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보가 흐르고 섞이면 = 상호작용

정보교환 관점에서의 상호작용성을 통해서도 동네생활 탭의 등장이 상호작용을 어떤 방식으로 증대시켰는지 분석할 수 있다. 라파엘리는 상호작용성을 ‘일련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발생한 메시지 전달이 이전에 전달된 메시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연관되는 정도’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 서비스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독립적으로 진행되거나 끝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맥락과 흐름을 가지면서 이후에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치면 상호작용성이 높은 서비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 설명한 동네생활 탭의 첫 커뮤니케이션 유형인 <일방적 정보전달>은 발생한 메시지(칼 가는 아저씨의 등장)가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이 메시지가 전달되어 다음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내가 글을 올리고 났더니, 어떤 사람이 칼 가는 아저씨에게 칼을 갈았다고 한들 그 사람이 내 글을 보고 가서 칼을 간 것인지 알 방도가 없고, 그 사람이 내 글을 보고 칼을 갈았다고 해서 내 글에 무조건 '꿀정보 감사해요~' 라는 댓글을 달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댓글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겨울 간식 지도의 경우, 사용자들이 올리는 단편적인 정보들이 지도 상에 모이면서 지도 자체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결과물이 된다. 우리 동네의 붕어빵집은 하나은행 옆 코너에 하나, 버스 차고지 앞에 하나 있는데, 하나은행 옆이 아무래도 목이 좋은 데다, 계란빵과 어묵도 같이 팔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된다. 나 또한 몇번 거기서 사 먹은 적이 있는데, 버스 차고지 옆을 발견하고는 무조건 거기만 가게 되었다. 하나은행 옆은 붕어빵이 3개 천원인데, 버스 차고지 옆은 붕어빵이 무려 5개 천원이기 때문이다. 카드가 안 되긴 하지만, 하나은행에서 돈을 뽑아서 가면 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겨울 간식 지도를 작성한다면 어떨까? 커뮤니티 특성상 도배는 비매너기 때문에 글을 1번만 쓴다고 가정했을 때, 하나은행 옆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하나은행 붕어빵 노점부터 써서 올릴 것 같다. 만약 하나은행 노점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람이 올려 놓았다면, 차고지 옆 노점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간식 지도에 글을 올린다는 나의 행동이, 이전 사용자들의 메시지에 의해 꽤 깊게 영향받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대뜸 올리면 장땡인 것이 아니라, 혹시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올린 정보는 아닌지, 혹은 내 정보를 통해 업데이트 될 여지가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발생이라는 것이다.


당근마켓이 동네생활 탭의 카테고리를 순차적으로 제공한다는 점도 당근마켓이 의도적으로 상호작용성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정보교환의 깊이(depth)를 늘어나게 하는 당근마켓의 전략으로 인해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성의 증대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당근마켓은 동네생활 탭 내에 '함께해요'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등장시킨 바 있다. 


함께해요 카테고리는 사용자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게끔 디자인되었을까?

다음 글에 이어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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