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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Han Sep 09. 2021

당근마켓 2.0, <동네생활 서비스>를 분석한다(9)

Legal UX :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분쟁도 모인다

본 내용은 2021년 봄 <UX 기획의 이해>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들어가며

이번에는 당근마켓 2.0이 가지는 걱정스러운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이제 당근마켓이 포괄하는 유저의 폭이 생각보다 매우 넓어졌다는 것을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과거 중고나라, 번개장터 등은 신규 IT 서비스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사용자를 페르소나로 설정하고 서비스를 문제없이 운영한 바 있는데, 당근마켓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당근마켓 초기 사용자의 연령대는 30대 육아맘이었고, 현재는 10대에서 60대까지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이에 더해, 다양한 연령대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비스를 사용하며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내가 물건을 사러 가면 판매자가 초등학생일 수도, 할머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상호 커뮤니케이션 방식부터, 더 나아가 내부에서 발생한 특정 이슈에 대해 인식하는 지점 등이 연령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꽃이나 산 정상 사진을 올리며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귀 공유합니다.' 라는 게시물 유형은 보통 50~60대에게서 많이 보이고,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올리면서 자신의 취미를 나열하며 같이 친구할 사람을 구하는 게시물은 20~30대에서 많이 보인다. 동네생활 탭이 활성화 되면서 점차 상호 간의 갈등 지점이 발생하는 것을 보다 보니, 만약 서비스 내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10대, 20대, 50대 남녀의 글이 동시에 올라오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요즘 동네생활 탭에서 같이 만나자는 목적의 글이 증가하고 있다. 1020 사용자들에게 있어 당근마켓 동네생활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페이스북 페이지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연장선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들은 많은 온라인 모임을 경험하면서 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새로운 사용자를 쉽게 팔로우하듯 가볍게 만나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단'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물론 온라인도 현실이기는 하지만)에서 얼굴 보고 사람을 만나던 사람들에게 '만나자'는 글은 뭔가 수상하고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한번 '잘못 엮이면' 어디까지 골치가 썩을 수 있는지 보고 듣고 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만나서 같이 해요' 라는 게시물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동조하며 호응하지만, 비판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비판의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현재 시기상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모임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대면 모임을 주도하는 것이 사회적, 개인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것이며, 이외에도 '불순한 목적으로 타인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다. 


실제로 겪었던 이상한 사용자

실제로 특정 인물이 ‘친구찾기’ 글을 반복적으로 올리면서 특정 성별과만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든지, 어떤 의도로 올렸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애매한 목적으로 만남을 원하는 글을 올리는 글이 올라오는 일이 있었다. 

실제로 아직도 닉네임을 기억하는 한 사용자가 있었다. 자신의 나이와 직업을 밝히고 강아지 사진을 올리며, 같이 까페나 산책을 가자는 글을 반복적으로 업로드하는 사람이었다. 

몇일이 지나면 글이 묻히는 온라인 커뮤니티 특성상 주기적으로 글을 업로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밌는 것은, 남자(로 추정되는 사용자)가 '재밌겠네요' 라든지 '까페 멋있네요, 위치가 어딘가요?' 등의 댓글을 달면 거기에는 아무 반응을 하지 않으면서 같은 내용의 새 글을 업로드 한다던가, 심지어는 댓글이 달린 글을 삭제하고 같은 글을 반복해서 업로드 하는 것을 보고 난 후였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자신과 비슷한 목적으로 글을 올린 사람(중 남자로 추정되는 사용자)의 글에 가서 싫어요/화나요 버튼을 꾸준하게 눌렀다는 것이다! 대체 왜? 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나름대로의 가설은 있으나.. 굳이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겠다.

주기적으로 동네생활 탭을 들어가는 나로써는 그 사용자의 글이 눈에 띌 수 밖에 없었고, '어휴..열~심히도 산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나 뿐만 아니라 그 사용자를 눈여겨보고 있던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나 보다. 결국에는 나중에 그 사람에 대한 문제제기 및 돌려까기를 한 사용자가 글로 올리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당근 모임을 하고 싶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의견은 껄끄러울 수 있다

최근 게시판 내 트렌드를 한 3개 분기 정도로 임의로 나눠보자면, 초기인 1분기 때의 분위기는 코로나로 인해 전체적으로 자제하는 여론 내에서 다양한 모임(이상한 것도 포함된)이 조심스레 시도되던 정도였다. 그러다가 2분기 즈음 비대면의 장기화를 더이상 참지 못하고 주식토론, 소통, 한강라이딩, 등산 등등 수많은 활동으로 터져 나오며 진짜 사이비 종교 모임글 같은 것도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최근 3분기에는 서비스 운영 차원에서 필터링을 빡세게 하는 것인지 다른 글들에 의해 묻혀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 이상한 모임이나 불분명한 목적의 게시물은 점점 노출이 줄어들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동네'와 '익명'은 섞이기 어렵다

당근마켓은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갖고 있다. 가이드라인 등에서도 본인 얼굴 사진을 노출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내 가입 당시 요즘 유행하는 소셜 로그인 기능조차 지원하지 않고 스마트폰 번호를 기반으로 한 자체 로그인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사용자에게 연락처를 노출하지 않고 메시지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얼마 전에는 통화 기능까지 업데이트한 바 있다. 나의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익명으로 서비스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익명성은, 가장 핵심적이고도 필수적인 서비스 기능인 '거래'를 할 때 무조건적으로 깨지게 된다. (옵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대면 직거래가 당근마켓 거래의 사용 경험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이 거래하는 사람은 대부분 나와 거주 구역이 겹치는 동네 사람이다. 한번 거래하며 얼굴을 트면, 혹시나 이후에 오다가다 만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최근에는 전애인을 당근하다가 만난 사람 썰이나, 당근하다 만난 사람과 썸을 탔다는 썰도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만약 그 전애인이 미처 안전이별하지 못환 사람이라면? 혹은 혼자 썸이라고 생각한 거래 상대방이 나와 거래한 곳 주변을 맴도는 걸 내가 우연히 목격했다면?

빠르면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10초만에 거래를 끝낼 수 있는 당근마켓 거래다 보니, '에이, 그렇게 치면 세상에 할 수 있는 게 어딨어?' , '망상이 지나치시네요'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마 그 사람들은 건장한 체격에 불안 수준이 낮고, 본인이나 가까운 사람이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한 경험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불쾌한 대면 경험을 넘어서 스토킹이나 성추행까지도 이어지는 이상한 경험은 굳이 당근마켓이 아니더라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새우잡이 배(?)라든지, 사이비 종교라든지, 다단계라든지 하는 것이 더이상 '괴담'의 영역이 아닌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인간의 사회성을 미끼로 개인에게 해를 끼치는 다양한 수법이 개발, 전파되면서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사람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디폴트가 되었다. 이제는 교과서도 바뀐 지가 꽤 되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물어볼 경우 과거에는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 도덕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고 대답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오는 것이 도덕적으로 여겨진다.
다른 사용자의 판매목록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 판매자의 성별을 유추하는 것이 가능하고, 생각없이 집 앞 가까운 곳에서 한 거래가 자칫하면 상대방에게 집주소를 노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실제로 외부에서 당근마켓의 잠재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당근마켓의 책임소재?

실제로 어떤 불미스런 사건에 당근마켓 서비스가 활용될 경우, 당근마켓이 지게 되는 법적 책임소재는 어디까지라고 할 수 있을까? ‘SNS 환경에서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적 대응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소셜 네트워크에 공개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사이버케이싱 범죄가 최근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에는 다양한 웹 서비스가 활용되는데, 트위터와 같은 SNS 서비스 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같은 서비스가 악용되기도 하며, 당근마켓과 가장 유사한 서비스로는 미국의 중고장터 서비스인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에서의 사이버케이싱 사례도 들고 있다. 

이러한 위치정보 및 개인정보의 범죄활용은 기존 사이버범죄에서 많이 언급되던 피싱, 스미싱, 해킹과는 결이 다른 형식으로, 기존 범죄는 유저, 서비스제공자가 아닌 범죄자가 정보를 ‘절도’하는 방식이라면, 사이버케이싱은 범죄자가 다른 불법적 행위를 하지 않고 유저와 같은 권한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범죄행위에 이용하는 ‘파생적 불법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당근마켓으로 치면 당근마켓을 이용해 특정인의 신상을 캐고 캐낸 신상을 바탕으로 불법행위를 위한 맞춤형 정보로 이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사이버케이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하단의 링크를 통해 알 수 있다.)

 

서비스제공자의 의무가 과거에는 수집된 정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보안에 신경쓰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면, 지금은 서비스제공자가 특정 정보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물론 온라인 서비스(웹, SNS 등)의 본래적인 성격과 순기능을 고려하여, 정보 수집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법익 보호의 차원에서 아직까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한 정보유통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늘어날 경우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범위가 과거에 비해 늘어나는 것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서비스의 규모가 커지면서 언젠가는 마주할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특정전기통신역무제공자의 손해배상책임의 제한 및 발신자 정보의 개시에 관한 법률’을 통해 서비스 제공자를 관리 감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전기통신역무역제공자란 방송법에 규제를 받지 않는 웹사이트 및 게시판 운영자, 서버 관리자 등을 포괄하는데, 영리 목적의 제공자 뿐만 아니라 비영리 목적의 제공자 까지도 규제영역에 두는 등 넓은 범위에 걸쳐 적용되고 있다. 


당근마켓에서도 사용자의 위치(동네)가 노출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대면 만남, 사용자의 프로필을 확인하는 정보에서 사용자의 다양한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러한 사이버케이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설령 법적인 문제에서 정보유통자의 책임소지가 불분명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에 당근마켓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서비스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위험성은 무시할 수 없다. 


당근마켓이 할 수 있는 일

이러한 성격의 문제는 사후에 해결하는 것 보다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면 불법행위의 원인은 불법행위를 행한 사람에게 있고, 당근마켓은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피해측에게 사전방지를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전 방지란,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당근마켓에서 문제 발생 가능성을 과거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고, 이러한 문제를 통제하기 위해 운영 뿐만 아니라 서비스 기획 단계에서부터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사용자에게 제대로 어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건 발생 이후 사용자들이 '와..이건 당근마켓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네' 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전 방지는 마케팅적 차원(서비스의 수요를 확보하고, 사용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으로도 접근할 수 있고, 윤리적 차원(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위해 위치된 자리에서 기여하는 것)으로도 풀어낼 수 있다. UX 차원에서도 사용자들이 경험하고자 하는 것들을 미리 읽어내고 준비하여 결과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직 발생한 일도 아니고, 할 일이 산더미일 텐데, 향후 쓰일지 말지 확실하지도 않은 기획에 리소스를 낭비하는 것은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해야 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당근마켓이 이러한 '사전 방지'를 고민하는 데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하고 있는 서비스가 네트워크 서비스이고, 추구하는 가치가 사람 사이의 연결이며(항상 문제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데 말이다..), 브랜딩 및 UX 설계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게 보이는데다,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선도 기업의 위치에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서비스 초반에는 있지도 않은 일을 사전방지 한답시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다 보면, 양날의 검 처럼오히려 사용자들에게 막연한 불안감이나 부정적 인식을 끼치게 되고 그 결과 서비스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동네생활 탭이 충분히 활성화된 상황이고, 서비스 사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시나리오에 대해 사용자들과 같이 공유하고 발생 방지를 촉구하는 것이 필요해진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사건이 터져서 그때 수습하는 것은 그렇든 그렇지 않든 미봉책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그 때 가서 <범죄의 원인은 당근마켓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케이싱이 가능한 사회적 변화로 인한 것 아닙니까?!>라는 말을 한다면 그 말의 옳고 그름 여부와 상관없이 사용자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마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근마켓은 서비스 운영의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많은 고민과 액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용자들 대부분이 선의의 사용자이고 정말 일부만 도시괴담처럼 서비스를 오용, 악용하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다른 세대, 다른 의견을 본다고 무조건적으로 편가르기나 비난, 선동 등을 하리란 법도 없다. 이것은 그저 인간 본성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학 전공자의 워스트 케이스 시나리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최근 법적 분쟁에도 휘말려 보고, 세상이 생각한 것 만큼 꽃밭은 아니라는 걸 겪다 보니, 피할 수 있는건 피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것은 대비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사이버케이싱이라는 단어는 구글에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혹시나 당근마켓 담당자가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언젠가 한번쯤은 고민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음 글에서는 '넛지'로 유명한 '행동경제학' 과 당근마켓 서비스의 관련성을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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