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란 무엇일까?

운코치가 생각하는 운의 활용 첫번째 step : 운의 이해

by 운코치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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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명상을 주제로 글을 쓴 지 그리 오래 되진 않았지만,

그 간의 연재를 통해 독자 분들이 명상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돕고,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 도움을 드리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이번에는 명상보다 포괄적인 "운"을 주제로,

운에 대한 나의 접근법을 한번 공유해보고자 한다.

LUCKY.jpg 이미지 출처 : untamedscience.com


어찌 보면 운코치의 코칭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글이기도 한데,

3가지 챕터(운에 대한 이해, 운의 확인법, 운의 개선법)로 구성해 보았다.


삶에서 운을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토대로

많은 분들이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먼저 운에 대한 이해 돕기 위해 개념을 하나씩 정리해 보자.



컨센서스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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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운이라는 개념을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얘기하지만,

운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기준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되지 않는 것 같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러한 기준 설정을 "조작적 정의" 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데,

연구자마다 자신이 연구하는 어떤 현상이나 개념에 대해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접근을 하기 때문에

서두에 항상 자신이 어떤 정의를 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의미있는 논지를 전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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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것은 운의 조작적 정의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고,

운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봐야 할 지에 대한 경계 지점들을 설정하는 것이다.

글에서 먼저 기준을 제시해야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제시된 방법론을 수용할 지 말 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운에 대한 입장은

운과 명을 구분하기 / 운을 주관적으로 접근하기(객관적으로 접근하지 말기)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운에 대한 이해 : 운과 명은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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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학"을 이해하는 방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접근은

운과 명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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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을 - 흐르는 것, 변하는 것, 현재의 순간,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명을 - 고정된 것, 타고난 것, 불변하는 것,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것으로

속성을 나누어 이해하는 방식이다.


운명학에는 사주, 신점, 타로, 관상, 점성학, 주역, 풍수 등 다양한 세부 분야가 있는데

위의 분류법에 따르면, 사주나 점성학은 명을 다루는 영역으로 볼 수 있고

타로나 주역은 운을 다루는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원리는 각 세부 분야의 방법론에 디테일하게 반영되어 있다.

사주는 사주"명리(命理)"학(사주의 명적 원리를 다루기 때문에) 이라고 하며

주역의 "역()"자는 변화를 의미하다 보니 영어로는 book of change(변화의 책)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관상과 풍수의 경우에는 타고나며 바뀌지 않는 형세를 논하기 때문에

명의 측면이 강조되는 부분이 있고,

신점, 즉 무교(巫敎)의 경우는 운이든 명이든 구분할 것 없이

알려고 하면 다 알 수 있는(?) 그런 특징이 있다.

i1217606754.png 무교(巫敎)..운명학 계의 차무식



그렇다고 운명을 분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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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운과 명의 개념적 차이를 인지하면

나의 운과 명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주의할 것은, 운과 명을 무 자르듯 구분하자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운과 명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상대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사주명리학에서도 운을 볼 수 있고, 타로로도 내담자의 고정적 속성을 볼 수 있다.

다만 사주는 10년 단위의 대운을 중심으로 운을 보기 때문에

세운은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 편이며,

타로에서도 1년 정도의 과거와 미래의 흐름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타로로 먼 과거나 먼 미래를 보는 것을 권장하지 않을 뿐이다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6.17.25.png 하지만 사람들은 늘 vs 게임을 하지...

운명을 운과 명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시도가,

운과 명 각각의 요소를 판단하고 구분하는 행위로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의 삶은 운 혹은 명의 각 극단의 지점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며,

삶의 매 순간은 사실상 운과 명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운에 대한 이해는

현재 내가 어떤 순간에 있는 것인지 제대로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바탕으로 의도에 맞는 판단과 행동을 하는 법을 삶에 적용하기 위함이지

판단과 구분을 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면 곤란하다.

운과 명, 둘 중 어느 것 하나가 좋고 나쁜 것도 없고, 맞고 틀린 것도 없다.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6.19.07.png 결국 이것이 동양철학의 근본적 접근방식인 것 같다.



운은 주관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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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운을 논할 때 명을 논하거나, 명을 얘기하며 운의 요소를 들이댄다면

그때는 틀리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운의 주관성을 얘기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같은 논리를 활용할 수 있는데,

운이 주관적이라는 얘기는, 운이 객관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주관적 차원을 중심으로 운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미 주관-객관의 준거틀 안에서 운에 대해 이해하는데

객관을 빼놓고 운을 논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의 속성을 가져와 운의 주관적 속성을 해석하려고 하거나

이를 근거로 비판(심지어 비난)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의 잣대를 운명학에 갖다 대는 일 말이다.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6.22.37.png 과학의 이름으로!

예전에 학부 수업 때,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에서

교수님께서 본인이 크리스천임을 언급하셨다.

그러자 학생들이 "과학적 연구를 하시는 분이 어떻게 종교를 믿습니까?"

라는 내용의 질문을 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그것(과학적 연구)과 그것(종교적 신념)은 다른 것이다." 라고

쿨하게 말씀하하고 수업을 이어가셨던 기억이 난다.


얼핏 보면 교수님이 학생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나는 사족 하나 달리지 않은 명확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방법론과 종교적 신념이 독립적인 요소라는

입체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둘 중 하나를 취사선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택하지 않았으니 답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이해되겠지만,


두 요소가 독립적일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면

다르다 라는 말 외에는 더 더할 말도 없지 않겠는가?

(마치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말한 어린 대장금처럼..)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6.25.17.png 요즘 사람들.. 이 짤을 알까?


과학은 과학이고, 신학은 신학이며, 철학은 철학이다.

레슬링이 레슬링이고, 복싱이 복싱이고, MMA가 MMA 이듯이.


복싱 룰로 레슬러와 복서가 싸우면 레슬러가 이길 수 없다.

MMA 파이터는 복싱도, 레슬링도 모두 구사하지만

그 말이 복서와 레슬러보다 강하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룰 안에 있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 간의 싸움이라도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하는 중생들이 인터넷에 종종 보인다..


비유 없이 다시 설명해보겠다.

과학은 반복가능성, 관찰가능성, 검증가능성(ROT)이라는 룰 안에서 움직인다.

이 말은, ROT가 되어야 "맞고", ROT가 안되면 "틀리다" 라는 말이 아니다.

반복,관찰,검증의 기준을 벗어나면 과학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말에 더 가깝다.


전자의 말이 맞으려면, 과학이 정답이거나, 우월한 개념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래야 과학이 아닌것이 오답이고, 열등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학은 물론 과학의 범위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작고 뾰족한 바운더리 안에 있지만,

검증,반복,관찰이라는 룰을 기준으로 삼아도 되지 않는 분야다.


이는 사람들이 왜 운명학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사람들은 나의 문제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운명학을 필요로 하지,

받은 공수나 뽑힌 카드의 의미를 검증하려고 운명학을 하지 않는다.

나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해서 태동한 분야에서

객관성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물론 운명학에서도 객관성을 논할 수 있다.

무교(신점)보다 타로가, 타로보다 명리학이 더 객관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명리학이 방법론적으로 더 "맞다"거나,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처한 문제와 고통만 해결해 준다면,

그 사람이 장님이건 애기동자건 상관없는 것이 이 바닥 아니겠는가?

무속신앙.jpg 어떤 신을 모시든, 맞추는 것부터 상담은 시작된다.


점 보는 사람 말고, 점 봐주는 사람이라면 객관성의 확보가 어느정도 필요할 수 있다.

점 보는 법을 습득해서 그 방법을 가지고 점을 봐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객관성(원리를 바탕으로 점을 본다)과 주관성(원리 없이도 점괘가 나에게 맞게 나왔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조건 주관성을 택할 수 밖에 없다.

이유를 길게 풀지 않아도, 생각해 보면 그냥 그렇다.

운명학이라는 분야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사족

사실 이 대목까지 읽고도 내 입장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꼭 운명학을 삶에서 활용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전제는 적당한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다음 챕터인 활용법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미 시작 단계에서 부터 수용이 되지 않는다면, 운명학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이다. 논리적 무결성을 위해 힘을 다 쓰기 보다,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상호 더 효율적인 판단일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더, 점 봐주는 사람 치고, 기구한 사연 없는 사람 없다는 말도 있다.

내 "사나운" 팔자를 도무지 이해할 방법이 없어서 명리학을 시작하고,

내 신"병"을 고치기 위해 내림굿을 받고 무당의 길에 들어선다.

이미 시작부터 주관적이다.


여전히 운명학의 본질 제 1순위에는 객관성이 자리할 수 없다는 게

내가 얘기하고 싶은 말이다.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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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자,

사주는 과학이래느니, 아니래느니 하는 말을

접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사주는 과학.png 구글에 검색해봐도 나오는 과학과 운명학의 관계성..

운명학 하는 사람들이 과학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만 같은

그 이면에는 과학이 우월한 것,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주의>적 사고가 깔려있어서 그런 것이라는게

내 입장이다.


소와 닭 중 무엇이 맞고 무엇이 우월하냐는

어떤 기준으로 비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니

소 닭 보듯 한다는 말이 여기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나의 운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정리해 보았다.

관점이란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이 당연하다.

나의 관점 이외에도 운에 대한 관점을 다양한 책에서 잘 정리해 놓았으니

꼭 찾아서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추후 북 큐레이션으로 소개도 해 보겠다)



세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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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은 운과 명의 합성어이고, 운과 명은 개념적 차이가 있다.

- 운명은 상보적 개념이기 때문에 분리하지 말고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 운은 주관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애초에 객관적이기 힘들다)



다음 편에서는, 운을 개선하기 전 필요한 절차인

운을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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