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모사피엔스만이 인류의 유일 종인가?
호기심과 궁금심이 많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마지막에 "세상은 원래 그런 거란다."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내 지식 세상의 전부는 어머니와 아버지였고, 부모님이 답을 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프롤로그에도 잠시 말했었지만, 국민학교 입학 전으로 기억하는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궁금증과 함께 공포스러웠던 질문은 "사람은 왜 죽는가?"였다. 왜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질문을 어머니에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상황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렇게 또렷이 기억한 이유는 내가 정말 많이 울었기 때문이다.
그날을 회상하면, 겨울 어느 날 큰 방에 누나들과 동생 그리고 내가 어머니가 함께 있었다. TV가 없던 시절이라, 누나들은 종이 인형 놀이를 어린 동생은 잠을 자고 있었고, 나는 따뜻한 방에 누워 뒹글고 있었다.
뜨개질을 하고 계셨던 어머니에게 나는
"엄마 사람은 왜 죽는 거야?"
"나이가 들면 모두 죽는 거란다."
"그럼 엄마도 나이 들면 죽는 거야?"
"응, 엄마도 나이 들면 죽고, 너도 나이가 들면 죽어서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엄마랑 다시 만날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내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엄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것이었다.
어린 내가 공포스러웠던 것은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었고, 사라지면 어딘지 모를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에게 하늘나라가 그려지지도, 상상되지도 않는 미지의 세상이었다. 어린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세상에 간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던 것이었다.
사람이 왜 죽는가? 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죽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 영원히 엄마와 함께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어린 꼬마의 질문은 몇 날 며칠을 어머니를 힘들게 하였다. 아버지 월급날 통닭 한 마리를 사 오신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통닭을 먹고, 내일부터 신나게 놀아라고 그리고 내가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날에 대답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린 꼬마의 죽음에 대한 호기심과 공포는 통닭 한 마리로 잊혔다.
이 글을 쓰면서 어머니가 할 말씀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간다"
마치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경험담 말해주는 듯한 이 말은 어떻게 만들어진 문장일까?
산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죽은 이후의 이야기, 마치 죽은 사람이 또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는 듯한 이야기를 왜 산 사람들은 하는 것일까?
죽음은 무엇일까?
* 사전적 정의 :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
* 의학적 정의 : 생명체의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던 핵심 생명 시스템(심장, 폐, 뇌)의
기능이 비가역적으로 멈춘 상태
(심폐사) 심장 박동과 호흡이 완전히 멈추고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
(뇌사) 전체 뇌 기능의 완전하고 비가역적인 정지.
뇌사 판정 시 법적 사망으로 간주 (국가마다 다름)
* 생물학적 유물론 정의 : 자기 유지 기능을 가진 생물학적 시스템이 구조적·기능적 통합성을 상실하고,
더 이상 에너지 흐름과 정보 교환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
* 물리학적 정의 : 생명체의 낮은 엔트로피 상태가 무너지며, 에너지 흐름과 정보 유지가 불가능해지는
열역학적 해체
얼마 전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지병이 있으셨지만, 병원에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속히 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아내의 가문은 종교적으로는 불교이며, 생활 규율은 유교이다. 장례식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을 기준으로 3일장으로 모셨다. 장인어른께서 종손이었기에 문중에서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분들이 장례식장을 다녀가셨다. 그리고 학연, 지연으로 연을 맺으신 많은 분들이 장인어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3일 동안 다녀가셨다. 화장을 한 후 선산이 있는 곳으로 장인어른을 모시며 관을 묘에 하관 하기 전 유교 의례에 따라 묘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선산 묘소에 납골함을 입관으로 장례식은 모두 마쳤다.
갑작스러운 장인어른의 죽음으로 아내를 비롯해 가족들의 슬픔은 매우 컸다. 3일간의 기간 동안 형제, 자매 친척들은 장인어른의 살아생전 모습을 기억하고 서로 공유하며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조문온 분들과 장인어른과의 인연을 들으며, 장인어름 삶 전체의 퍼즐을 맞추는 시간이 되었다.
평범한 한국인에게 장례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시간이 되고, 돌아가신 분을 주인공으로 그를 기리는 축제의 시간인 듯하다. 존재와 부존재를 가르는 의식이 장례식이다. 장례식을 통해 우리는 산 사람에게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고, 죽은 자에 의해 인연들이 다시 만나는 축제의 시간이다.
한국 사회에서 장례문화는 유교 사례 절차에 따른 것으로 지금은 관습화되었다.
3일장의 유례는 유교 『예기(禮記)』에 근거, 부모가 돌아가신 후 3일간은 시신을 가까이하며 지극한 정성을 다해 곡하고 봉양해야 한다. 는 유교적 장례 예절이 표준이 되었다.
장례식을 마친 후 아버님의 위패는 절로 모셨고, 절에서 49재를 지냈다.
49재는 7일마다 한 번씩 총 7번의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6번의 재는 가족 중심으로 지냈다. 마지막 49재를 지내는 날 장인어른의 형제와 친인척 및 문중에서 일부 참석하셨다.
49재는 불교의 의례로 고인의 사후 세계에서의 해탈과 구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불교에서 49재는 불교에서는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윤회 과정으로 본다. 사람이 죽으면 그 즉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재탄생 사이에 중간적 존재 상태에서 최대 49일간 지속되며, 이때 생전에 쌓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의 윤회처(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가 결정되는 기간으로 본다. 49일 동안 기원을 통해 업을 해소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다.
49재를 마지막으로 장인어른에 대한 공유된 기억을 각자의 몫으로 남기며, 앞으로 차례와 기제(忌祭)를 지내게 될 것이다.
죽음은 생명 시스템의 중단, 사회적 소멸, 존재로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적으로 소멸시키지 않으며, 부존재의 존재화를 꾸민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를 존재시키는 것처럼 죽음을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죽음은 역사적으로 사람들을 사회 결속, 제도, 문화 그리고 공동체 가치관 및 세계관으로 묶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를 우리라는 집단으로 구조화시키고 있다. 물리적 소멸 상태의 죽음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는 상상력으로 죽음을 사람들에게 가치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몇백 년, 몇천 년 전에 죽은 인물을 소환하여 평가, 재평가를 하면서 산 사람들에게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호모사피엔스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호모사피엔스의 능력이 인류의 유일한 현존 인류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소멸한 존재를 소환하여,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등에 영향력을 끼치는 보이는 않는 힘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이끄는 힘을 가진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