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나는 1988년 늦가을까지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출장 일정을 소화하였다.
파리에 이어 HR과의 동행 출장 일정을 통보받았고 목적지는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였다. 보통 출장 일정은 사전 예고 없이 목적지 기준으로 물리적 정신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없는 24시간 이전 페이저 메시지 통보가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출장은 일정 일주일 전에 HR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첫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출발 전 영국에서 들은 IBM 관련 사항에 대해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소규모 통상위원회에 참석하여 증언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증언 내용은 내가 작성한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라 하였지만 HR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긴장감이 엄습해 왔다. 두 번째 이유는 내 입장에서 통상위원회 증언 같은 것은 은 Handler가 할 업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즈음 HR이 본인 방으로 나를 호출하면서 알게 되었다.
HR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HR은 답변 준비 상황에 대해 질문하면서 앉으라는 말 대신 내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HR과 악수를 하였다. HR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축하한다’고 하였다. 그날 나는 Carrier에서 Handler로 직급이 상승되었다. 승진을 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나는 가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나의 정체성 대비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연관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갖기 시작했었다. 그것은 내가 업무에 대한 익숙함에서 오는 약간의 정신적 여유를 가졌다는 것이고 그 여유는 어떤 사실을 가지고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유를 직급 상승이라는 폭탄으로 부수어 버렸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미합중국에 대한 더 많은 충성심을 요구하고 요구받게 되는 또 다른 수준의 시작이었고 다음 출장지인 이스라엘과 관련된 어마어마한 내용을 숙지하여야 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No Pain No Gain”
Handler가 되면서 나의 소속이 국방성으로 옮겨졌다. 다만, 당시 나의 국적이 대한민국으로 접근 가능한 정보 등급이 미국 국적의 Handler보다는 제한적이었다.
업무적으로 필요한 내용은 요약본으로 대신할 수 있었지만 반드시 숙지하여야 하는 내용 양이 어마어마 해졌다. 슈퍼컴퓨터 관련 업무에서 Handler는 Carrier와의 업무 동행 시간에만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고 출장 국가의 그 외 기타 업무도 담당하였다. 즉 업무의 양과 강도가 더 많아지고 깊어진 것이다.
새로이 발급받은 국방성 신분증은 전 세계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은 물론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의 출입이 24시간 가능하였고 미국 본토 내 모든 정부 기관에도 별다른 절차 없이 출입이 가능하였다. 해외 출장 시 사용할 수 있는 브라운 색깔의 ‘Official Passport’도 나왔지만 슈퍼컴퓨터 관련된 업무 출장 시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국방부 장관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협조 공문을 소지할 수 있었는데 해외 출장 중 긴급하게 대륙간 이동이 필요한 상황 발생 시 아주 유용한 서신이었다. 편지 내용은 “오늘도 미국의 국익을 위하여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귀하의 수고를 미합중국을 대신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서신을 제시한 당사자 또한 미국의 국익을 위한 업무 수행 중에 있습니다. 귀하에게 요청한 사항을 우선적으로 처리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그에 수반되는 모든 사항은 미합중국이 보장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귀하의 협조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당시 전 세계 웬만한 국제공항에는 미국 국적 항공사들이 진출해 있었고 미국에서 파견된 지사장 급의 직원이 있었다. 그 서신을 제시한 후 목적지를 얘기하면 그 공항에서 요청한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항공편을 즉각 처리하여 주는 시스템이었다. 어찌 보면 합리적인 것이고 달리 보면 비 현실적 일수도 있었지만 그 서신을 소지하고 사용할 수 있는 개인이 갖는 자신감이나 자부심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개인의 우월성을 키우는 동기 부여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개인이 속한 조직의 배경이 가지고 있는 우월성에 대한 인지를 통해 소속감과 연대감을 부여시키면서 그 조직에 대한 충성심의 증가와 함께 그에 부합되는 자기 계발과 발전의 합리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빠르다.
반만년 역사와 최고의 문화를 가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남자보다는 그저 세계 최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살기 원했던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 출신 학생인 내가 세계 어딜 가던 통하는 최첨단 기계를 허리에 차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았던 내가 미 국방부 장관의 친서를 소지하고 제시하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국가의 도시를 가장 빨리 갈 수 있고 전 세계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은 물론 미군 기지를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된 내가 마치 어마어마한 권리를 가진 슈퍼맨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만들어 준 미국이 고마웠고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감성에 이은 굳은 다짐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정말 오랫동안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나의 능력이 많고 잘난 것이 아닌 미국이라는 배경이 준 신기루였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요구된 충성심에 자발적으로 부응하게 된 나는 점점 더 ‘바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겉은 노란색이나 까 보면 안은 하얀색인, 모습은 동양인이나 사고방식은 미국인인 그들의 시선에서는 그저 신기 하지만 필요시 제시된 나의 신분증을 본 후의 그들의 반응에서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나의 어떤 점이 미국의 국익에 필요하여 고용하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결론은 하나였다.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닌 미국으로 통해야만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