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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꿈, 새로운 몽화(夢畫)의 탄생

엘리 유(Ellie You) 작가 첫 번째 개인전 스페이스구기58

사라지는 꿈을 붙잡아 도원경(桃源境) 세계를 창조하는 몽화(夢畫)의 탐색은 여전하다. 몽환경의 예술은 이 세상 아닌 도원의 경지를 지향하기도 하고, 형태를 통해 정신을 구현한다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정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도원의 재현과 변주는 변하지 않는 시대의 예술이자 정신이다.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은 <도화원기>에서 무릉도원의 모티브를 제공했고, 당.송의 시인 한유, 소식도 그 경지를 노래했다. 우리에게 대표적으로 알려진 걸작은 조선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이다. 안평대군의 꿈을 안견의 미적감각으로 풀어낸 작품은 현실과 도원의 세계를 접속하는 환상과 파문(波紋)의 결정체였다.


근현대 우리 작가들에게서도 우리 산하와 도원의 꿈을 잇는 희망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박고석은 자연의 절대적 에너지와 힘을 남성적이고 원시적 질감으로 거침없이 풀어냈다. 붉은 산수풍경으로 이질적이고 극적으로 유토피아를 그려낸 이세현의 비현실적인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자연과 대비되는 사회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현실과 비현실이 중첩되는 기이한 이상향을 보여준다.


반면 엘리유의 아르카디아(Arcadia, 이상향)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이내 익숙해지고, 낙원이기보다는 반-현실적인 형태와 색을 구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지나다보면 신화와 도원이 파괴된 시대에 이제 도원과 현실의 경계는 다시 재정의 되어야 할 것 처럼 느껴진다. 현실이 바뀌면 시각도 감각도 새롭게 구성된다.


Ellie You, Arcadia, 25007. 100x57cm, Acrylic&Oil on canvas.


엘리유의 첫 번째 도원은 경계가 뚜렷한 폭포 그림 한 점이다. 작품은 겸재 정선의 박연폭을 닮은 듯 다르게 수려한 선의 유영(游泳)을 보여준다. 흘러내리는 물은 폭포수만이 아니다. 주변의 암산(巖山)과 폭포가 머무르는 소(沼) 역시 자유롭게 몸짓하고 있다.


Ellie You, Arcadia, (좌)25009. 90.9x52.4cm, (우)25004, 116.8x72.7cm, Acrylic&Oil on canvas.


그의 두 번째 도원은 마치 인왕제색도에 우주적 판타지를 덧씌운듯한 개성적인 작품이다. 본래 인왕제색은 한여름 소나기에 젖은 인왕산을 그린 것이다. 인왕에 스며든 빗속에 영혼이 깃들어있다면 아마도 이런 질감과 촉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형태적으로는 보수적이면서도 한껏 자유로운 선과 색을 담고 있다.


Ellie You, Arcadia, (좌)25001. 162.2x112.1cm, (우)25002, 162.2x112.1cm, Acrylic&Oil on canvas.


엘리유의 꿈을 끌어안은 마지막 도원은 아스라이 드러나는 도피안(到彼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모든 형태와 감각, 감정과 고통은 제거되고 오직 잃어가는 푸른 채색만이 남아있다. 사라져 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존재와 자연은 없다는 감각만이 재현되어 작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형태의 창조는 역사적이나, 색의 변주는 개성적이다. 환상과 파문의 도원경은 역사로 남겨졌고, 선과 색의 자유로운 유영(游泳)만이 예술가의 꿈을 그릴 수 있게 한다. 모든 존재와 자연도 사라지고, 색(色)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감각을 작가만의 선의 유영을 통해 재현하는 일이 작가 엘리 유가 품어 갈 하나의 과제가 되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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