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dia Noon 미디어 눈 Jan 27. 2020

"중국? 한국? 저는 청소년이에요."

[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4]  - 제3국 출생 청소년 정지혜 


40만 명, 57만 명 조사하는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은 수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다. 청소년은 곧 학생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제는 학교 밖 청소년 보다는 그냥 청소년, 청년으로 불리고 싶은 10인을 만났다. 각 스토리는 <미디어눈> 에디터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내러티브 혹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기사에 사용 된 이름은 청소년들의 신상보호를 위해 일부 수정이 있었음을 사전에 밝힌다. 

- 기자 말




 中国? 한국? 저는 청소년이에요.

송준호 에디터



저는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났어요. 엄마는 제가 7살 때 돈을 벌러 한국으로 떠났고요. 아빠는 엄마가 떠나고 얼마 안 있다가 한국으로 갔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저를 키워주셨죠.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고 할머니는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이에요. 할머니가 담가주신 김치가 진짜 맛있는데 할아버지랑 두런두런 얘기 나누면서 같이 먹던 생각이 나요. (중국)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는 한국어로 공부를 했고요,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중국말로 연예인 얘기를 했어요. 다니던 교회에서도 한국어로 예배를 보았는데 제가 성경 구절을 잘 외워서 칭찬을 받았어요.



지혜는 중국 길림성(지도 상의 붉은 지역)에서 태어났다.  ©️ 위키백과

정지혜(17, 가명)는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이다. 어머니는 북한이탈주민이다. 지혜의 아버지는 한국인인 (지혜의) 할아버지와 재중 교포인 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중교포이다. 지혜는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14살에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하고 중국하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이 중국을 가도, 중국인이 한국을 와도 서로 간에 어떤 편견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도 나와 다른 곳에서 왔다는 이유로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지혜는 현재 제3국 출생 청소년, 탈북 청소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서 교육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제 꿈이 뭐냐고요?


처음에 한국에 올 때 안 가겠다고 엄청나게 울었어요. 키워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헤어지기 싫었거든요. 할머니는 제가 한국에 오고 3일 동안 우셨대요. 아직도 정말 보고 싶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가 뇌출혈이 나셨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걱정돼서 매일 병원에 있었어요. 


병원 안에서 온종일 있으려니까 너무 심심해서 계속 왔다 갔다 하다가 간호사 언니들을 찾아갔어요. 갈 때마다 과자도 주고 얘기도 많이 했어요. 언니들이랑 노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1월 1일 설날에 병원 앞에서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했는데요. 다들 병원 밖으로 나와서 구경했어요. 지금은 할아버지도 다 나으셨고 그때 간호사 언니들이랑 불꽃놀이 덕분에 병원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게 됐어요.


사실 엄마가 많이 아파요. 지금은 (엄마가) 이혼했는데, 예전에 아빠가 술만 마시면 물건을 던지고 화를 많이 냈어요. 아빠가 평소에는 먹을 것도 잘 사주고 얌전했는데 술을 자주 마셨어요. 그때 엄마가 많이 놀라서 심장이 안 좋아요. 자다가 소리가 조금만 들려도 놀라는데요. 잠자는데 제가 가서 물을 마시거나 전화가 와도 깜짝 놀라요. 그러면 심장이 아프대요. 그런데도 엄마는 저 학교 보내려고 아픈데 계속 일했어요. 할아버지는 뇌출혈 후유증으로 반신마비가 있으시고 (아픈) 엄마 심장이 안 좋잖아요. 가족들을 위해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혜는 아픈 가족을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 ©️Pixabay


 조금 다행인 건 엄마가 좋은 사람과 재혼한 거에요. 새아빠를 처음 봤을 때 화를 내지 않아서 좋았어요. 군대에서 상사인데 누가 아빠 뭐하시냐고 물어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슈퍼 같은 데서 먹고 싶은 것도 한 보따리 사줘서 좋아요. 의사가 돼서 엄마를 평생 건강하게 해주고 새아빠도 아프면 제가 다 고쳐주는 게 꿈이에요. 



당연히 집 근처 학교에 갈 줄 알았죠.


 중국에 우리 집은 시골 마을의 언덕 가장 꼭대기에 있었어요. 집 주변은 다 밭인데 평상시에 집에서 먹는 가지, 옥수수, 과일 같은 것을 심었어요. 저도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랑 흙도 파고 씨앗도 뿌리고 따기도 했어요.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흙 묻은 손을 툭툭 털고 우리 지혜가 일 잘하고 착하다고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엄청 뿌듯했어요.


 동네에는 친구들이 남자애들밖에 없어서 걔들이랑 놀았어요. 자전거 시합, 달리기 시합도 하고요, 울트라맨이라는 애니메이션도 보고 놀았어요. 친구네 놀러 가면 TV에 CD 넣는 곳이 있어서 거기서 애니메이션을 봤고 우리 집에는 게임기가 있어서 게임을 했어요.


 학교 급식은 한 분단에 반찬통 3개씩 놓고 애들이랑 나눠서 먹었어요. 늦게 가면 탕수육같이 맛있는 반찬은 다 먹고 없어져서 빨리 가야 했어요. 사실 12살 때 한국에 왔었어요. 그때 친구들한테 “나 이제 한국 가니까 너네 이제 못 봐”하고 왔어요. 한국에서는 한강도 가고 놀이동산도 갔는데요. 한 달 정도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됐어요. 개학할 때 간 것이라 방학을 그냥 한국에서 보낸 게 된 거죠. 친구들한테 못 본다고 하고 왔는데 다시 봐서 엄청 민망했어요.


 그렇게 중국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 마치고 한국에 와서 학교를 알아봤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집 근처에 있는 일반 중학교에 편입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국에서 학교에 다녔다는 학력 증명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잘 몰라서 엄마가 대사관에 서류를 요청했는데 받는 게 너무 오래 걸려서 입학 시기를 일단 놓쳤고요. 그 학교 교장 선생님과 얘기했는데 제가 다녔던 학교의 학력 인증이 안된대요. 상해에 있는 학교는 학력인증이 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동북 3성에 있는 학교라서 그러는 건지 왜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은 50분 거리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사실 어쩌면 다행이다 싶었어요. 뉴스에서 학교 폭력이 자주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봤거든요. 한국에서 태어난 애들끼리도 괴롭히는데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학교에서 애들이 저를 이상하게 보고 괴롭힐까 봐 너무 걱정되는 거에요. 그 애들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까 확실히 괴롭힐지 아닐지는 모르는데 진짜로 괴롭히면 어떡해요. 지금은 (일반 학교) 교장 선생님이 대안학교를 소개해 주셔서 다니고 있어요. 선생님들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공부도 좋은데 아쉽고 걱정되는 것이 있어요.


 이 친구들(한국에서 태어난 청소년)은 어떤 동네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학교에서는 무엇을 먹고 어떤 얘기를 하는지, 무엇을 배우는지 궁금하고 저도 어떻게 자랐는지를 같이 얘기하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다른 나라에서 자랐으니까 생각만 해도 서로 할 얘기가 엄청 많을 것 같잖아요. 그런 것을 못하는게 아쉬워요. 또 의대는 일반 학교에서도 전교 1등을 해야 가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저는 일반 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했잖아요. 일반 학교에서 애들이 어느 수준으로 공부하고 있는지 비교를 못 하니까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너무 아쉽고 막막해요.


한국 학생들과 섞여서 평범하게 성장하고 싶지만, 지혜에게는 쉽지 않다. ©️Pixabay


어디에서건 꿈을 꾸고 응원받고 싶어요.



 제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그런 것은 잘 모르겠어요. 별로 중요하다고도 생각 안 했어요. 두 곳 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가 살았고 사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살다 보니 그런 것(출생지)이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방해하는 것 같아요. 한국이랑 중국이랑 교육 체계가 달라서 학력이 인증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돼요. 그래도 한국에서 또래 친구를 사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일반 학교에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안 돼서 너무 아쉬워요.


 병원비도 비싸고 아픈 엄마와 가족을 위해서 의사가 정말 되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대안)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요. 특히 요새는 영어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국제(사회)에 나가려면 영어가 필수라고도 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거든요. 또 모르는 것이 많아서 세상을 좀 배우고 싶어요. 특히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하와이인가? 그런 섬에도 가보고 싶고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곳에 가보고 싶은 이유는요. 사람은 직접 만나보고 겪어봐야 이해하는 것 같아서요. 중국인이 한국에 오거나 한국인이 중국에 가거나 분명히 문화가 달라서 차별을 겪을 수 있거든요. 근데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그제야 그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이유는 ‘어디서 왔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기 때문’인 거니까요.


 (사람들이) 직접 만나면 한국에서건 어디에서건 서로 이해하게 되고 학교에 가는 것이나 꿈을 꾸는 것에서 차이가 없어질 것 같아요. 저는 어디에 살든 어디에서 왔든지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청소년이잖아요.



지혜는 한국인 혹은 중국인보다 꿈꾸는 청소년으로 살고 싶다. ©️Pixabay



학교 밖 청소년 프로젝트란?


미디어눈은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6개월 동안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기사와 영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누구이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미디어눈의 기사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학교 밖 청소년의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눈 유튜브 채널: www.youtube.com/channel/UCE2lsamPsX3onwP5eU-OYLg

미디어눈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medianoo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