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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a Noon 미디어 눈 Feb 03. 2020

"차라리 신나게 놀다가 소년원 가는 게 낫지"

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5 - 새빛청소년 회복센터 진수 이야기


40만 명, 57만 명 조사하는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은 수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다. 청소년은 곧 학생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제는 학교 밖 청소년 보다는 그냥 청소년, 청년으로 불리고 싶은 10인을 만났다. 각 스토리는 <미디어눈> 에디터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내러티브 혹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기사에 사용 된 이름은 청소년들의 신상보호를 위해 일부 수정이 있었음을 사전에 밝힌다. - 기자 말


 


최중무 에디터

   "야, 부산으로 온나. 버스비 내줄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한 진수(가명)를 맞아준 유일한 사람은 고등학교를 먼저 자퇴한 동네 친구였다. 전화를 받고 부산으로 가보니, 대여섯 명이 무리를 지어서 모여있었다. “야, 망 잘 보고 있어!” 한두 명이 망을 보는 사이 나머지는 인형 뽑기 기계를 흔들고 부수어 돈을 빼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진수가 겁을 먹자 친구 녀석이 말했다. "야, 집에서 니네 아빠한테 맞고 살 바엔, 신나게 놀다가 소년원 가는 게 더 낫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미디어눈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진수(뒷모습) ©️미디어눈

집으로부터의 탈출


 진수가 처음 가출한 것은 17살 때다. 진수에게 집은 소년원만큼이나 두려운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 폭력을 일삼았다. 견디다 못한 진수의 엄마는 진수가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집을 나갔다. 그 후 아버지의 폭력은 집에 남겨진 진수와 진수의 형에게로 향했다. 가사를 내팽개친 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가 아이들을 키웠지만, 술 취한 아버지의 폭력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한 날이면 진수와 형은 동네 놀이터로 숨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날에는 온몸에 피멍 자국이 나도록 맞았다. 아무리 울어도 누구도 막아주지 못하는 것을 알 때쯤, 더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술을 먹은 다음 날이면 아빠는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는 척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줬다. 그런 아빠가 너무 미웠지만,


그 돈이 진수의 유일한 용돈이었다.


 진수가 16살이 되던 해, 두 살 터울인 진수의 형은 집을 나갔다. 형의 가출은 중학교 때 시작됐는데, 보통 집을 나가면 일주일 안에 돌아왔다. 형이 없는 동안 컴퓨터를 독차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진수는 신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고, 형의 SNS 아이디가 사라졌다. 그제야 가족들은 실종신고를 했고, 진수는 형이 보고 싶어졌다. 다행히 신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은 형이 수원에 있다는 것을 찾아냈지만, 더는 법적으로 미성년자가 아닌 형은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고, 그 이후로는 만날 수가 없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는 것이 형의 마지막 말이었다.


 진수는 집주변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않았다. 고향인 창원을 떠나 부산의 조리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공부에 대한 흥미도 잃었지만, 집과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 수업은 시시했고, 밤늦도록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갔다. 친구들과 술을 먹고 못 일어나서 다음 날 학교에 못 가는 일이 잦아졌다. 학교에서 진수는 문제아로 취급됐고, 선생님과 반 친구들은 자기에게 피해만 주지 말라는 눈치였다. 결국, 한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의 권유로 자퇴를 했다.


 그렇게 돌아간 집에서 아빠의 폭력은 여전했고, 고통을 함께 분담하던 형마저 사라지자 진수는 집을 나가기로 했다. 열일곱 진수의 첫 가출이었다. 마침 먼저 가출해서 자취방을 구해 살던 친구가 있었다. 자취방은 두 사람이 눕기에는 매우 비좁았다. 하지만 밤마다 맞을까 걱정하던 두려움은 사라졌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자유였다.




자유는 달콤했고 결과는 씁쓸했다


여느 때처럼 친구와 놀던 밤, 길가에 키가 꽂힌 오토바이가 있었다. 진수와 친구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진수는 충동을 못 이기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달린 지 얼마 못돼 주변에 있던 차를 들이받았고, 진수의 일탈은 CCTV에 고스란히 담겼고 경찰서에 가게 됐다. 죄목은 특수절도. 진수가 저지른 첫 번째 범죄다. 경찰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진수를 훈방 조치했다. 훈방 조치를 받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수에게 관심이 없었고 여전히 술만 마셨다. 진수는 또다시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집에서 벗어난 자유의 맛은 달콤했지만, 당장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다시 가출한 진수를 맞아준 것은 이미 자퇴해서 무리를 이뤄 살아가는 친구들뿐이었다. 이들은 인형뽑기 기계를 털어 모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두려움과 거부감이 들었지만, 친구 말처럼 집에 돌아가서 아빠한테 맞는 것보다 어쩌면 소년원에 가는 것이 좋을 것도 없지만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 대구, 대전 등 전국을 돌며 4개월 동안 인형뽑기 기계에서 돈을 훔쳤다. 30여 차례 범죄를 저지른 후에야 진수와 친구들은 경찰에게 꼬리를 잡혔고 범행은 끝났다.


결국 진수는 친구들과 재판을 받게 됐다. 법정에 서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까짓것 뭐 대수인가 생각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피해자들에게 물어줘야 할 돈이 5천만 원이 넘었다. 판사님에게 지금껏 저질렀던 죄목을 직접 들으니 자신이 범죄자라는 사실이 실감이 됐다. 판사님 앞에서 할머니는 제발 한번만 봐달라고 빌었고, 진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제야 지난 일이 후회되고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진수의 친구는 이미 이전에 여러 차례 재판을 받았던 터라, 더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재판 기간에도 범죄를 저지른 친구는 결국 소년원에 갔고, 진수는 소년원 송치 기준인 8호보다 낮은 6호 처분을 임시로 받아 보호시설에 들어갔다.


보호시설에서 5주 동안 진수는 자신의 잘못과 반성을 빼곡히 적었다. 최종 판결에서 판사는 진수가 다른 아이들처럼 토 달지 않고 반성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하지만 진수의 가정환경에 재범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소년법 1호 처분을 내렸고, 진수는 "대안 가정"인 ‘청소년회복지원시설’(이하 쉼터)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하게 되었다.




새롭게 박힌 '가족'이라는 말


‘가족'이라는 단어는 진수에게 한 번도 안정감을 준 적이 없었다. 진수에게 '가족'은 술에 취한 아버지, 그리고 집을 나간 형의 모습뿐이었고, '집'은 항상 벗어나고 싶었던 공간이었다. 그래서 쉼터에 갈 때도 가족 공동체, 대안 가정이라는 말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법원 앞에서 센터장님과 처음 만나 쉼터에 왔을 땐 무척 낯설고 어색했다. 6개월 동안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다. 진수는 여전히 홀로 어딘가에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런 쉼터에서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땐, 외박이 허락됐다. 떠나고 싶었던 집이었지만, 떨어져 살다 보니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진수에게 집은 여전히 발붙이기 힘든 곳이었다. "짐승도 아니고, 하다 하다 가족한테도 그러나!" 쉼터에서 외박을 나간 날, 진수는 일어나자마자 고모의 매서운 불호령을 들어야만 했다. 할머니가 통장과 돈 15만 원을 도둑맞았는데 아빠와 할머니가 진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전날 친구들과 놀았던 진수는 할머니의 돈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애꿎은 일로 의심을 받으니 너무 억울했다. 아니나 다를까 돈은 할머니 서랍에서 발견되었고, 고모는 멋쩍게 사과를 했다. 화를 내야 하는데, 화를 낼 수 없었다. "전과"는 가족도 의심하게 할 만큼 무섭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누구와도 솔직히 고민을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쉼터에서는 나와 비슷한 고민이 있는 형, 동생이 있었다. 자주 투덕거리지만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많이 배웠고 사회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는 정말 바뀌어야겠다는 다짐을 나누기도 했다.


쉼터에서는 센터장님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럴 때마다 집에 있는 할머니가 자주 떠올랐다. 진수에겐 어렸을 때부터 키워주신 할머니가 엄마 같았다. 일 년 전부터 집을 밥 먹듯이 나갔지만,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진수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화를 했었다. 아빠는 알코올중독에, 형까지 집을 나갔을 때, 할머니에겐 진수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진수는 유치장과 법정을 오가면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할머니를 만났지만, 할머니에게 미안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쉼터에서는 매일같이 할머니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 아빠가 술을 줄이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아빠가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 쉼터에서 나갈 땐 다른 모습으로 가족을 마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쉼터에서 들은 칭찬은 진수가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갖게 했다. 쉼터에서는 매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시켰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대충했었는데, 한 번 집중해서 써본 글에 선생님이 감탄했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읽고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생전 처음 들어본 칭찬이었다.


할머니와 센터의 가족이 내민 손길은 진수가 다시 일어나는 힘이 된다. ©️Pixabay


2019년 10월이면 진수의 쉼터 생활이 끝난다. 쉼터에서 마음을 회복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같이 조리고등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SNS에 요리한 사진을 올리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꿈을 고민할 때, 쉼터에서 소개해 준 미용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뭐라도 하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목표가 생겼다. 교육을 마치면 미용실에서 인턴을 하며 실력을 쌓고, 돈을 적게 벌더라도 번듯한 가게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것이 꿈이다. 그리고 미용 기술로 아빠와 할머니의 머리를 언제든지 예쁘게 잘라드리고 싶다. 그렇게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진수는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정말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쉼터의 6개월은 짧았지만, 진수의 삶을 바꿔놨다. 진짜 사랑받는 것이 무엇인지, 가족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걱정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가족들에게 상처받고 다시 삐뚤어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칭찬받을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옛날처럼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수는 자신 있게 다짐했다. 끝까지 믿어주는 할머니와 제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아빠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진수는 용기를 낼 것이다.




학교 밖 청소년 프로젝트란?


미디어눈은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6개월 동안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기사와 영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누구이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미디어눈의 기사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학교 밖 청소년의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눈 유튜브 채널: www.youtube.com/channel/UCE2lsamPsX3onwP5eU-OYLg

미디어눈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median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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