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6] - 새빛청소년회복센터 민승이 이야기
40만 명, 57만 명 조사하는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은 수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다. 청소년은 곧 학생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제는 학교 밖 청소년 보다는 그냥 청소년, 청년으로 불리고 싶은 10인을 만났다. 각 스토리는 <미디어눈> 에디터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내러티브 혹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기사에 사용 된 이름은 청소년들의 신상보호를 위해 일부 수정이 있었음을 사전에 밝힌다.
- 기자 말
우리 집에 네 번째 새어머니가 들어오던 날
윤형 에디터
“집이 싫었어요.” 민승이(가명, 20)는 중학생 때부터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것이 싫었다. 방과 후에 다른 친구들은 학원에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갔다. 또 다른 친구들은 집에서 간식을 먹을 거라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민승이는 집이란 공간이 불편했다.
어릴 적부터 집에는 아버지만 계시고 엄마는 없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엄마가 없는 줄로만 알았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민승이가 살던 집에 새어머니가 들어왔다. 민승이는 처음 새어머니를 만난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아버지는 멋쩍어하면서 ‘엄마라고 불러도 된다’며 새어머니를 소개했다. 하지만, 엄마라는 말이 입에 붙기도 전에 새어머니들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어떨 때는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집에 있는 것이 불편했던 민승이는 집을 뛰쳐나왔다. 민승이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민승이의 누나는 온 동네를 뒤지며 민승이를 잡으러 다녔다. 민승이의 누나 역시 중3 때 가출한 적이 있다. 누나는 민승이가 잘못할 때마다 때리고 혼냈고 때로는 그럴 수 있다며 민승이를 다독여줬다. 새어머니는 자꾸 바뀌었지만, 아버지는 더욱더 외로워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서 누나와 자신을 키우는 아버지가 힘들어 보이기도 했다.
첫 비행
무작정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은 없었다. 첫 한두 달은 친구한테 얹혀살며 돈을 빌리기도 했다. 두 달이 지나니 친구한테도 눈치가 보여 더는 있을 수 없었다. 돈은 없고 휴대폰도 끊겼다. 한겨울 날씨는 춥고 배는 고팠다. 마땅히 할 일도 없어 패딩을 입고 새벽에 밖에 나와 거리를 돌아다녔다. 사람 없는 밤거리에 주차된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 문을 열어보고 잠금이 풀린 차를 골라 현금 될만한 물건을 털었다. 몇 차례 계속된 범행에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CCTV에 찍힌 증거 사진은 쌓여가고 있었다. 결국 대낮에 경찰한테 걸린 민승이는 유치장에 들어갔다. 조사받으러 올라온 자리에는 아버지가 와 계셨다. 오랜만에 재회였다. 아버지는 민승이를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한 말씀 덧붙이셨다. '엄마 닮아가냐?' 만나본 적 없는 엄마였지만 낳아준 어머니가 손버릇이 안 좋았다는 말씀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민승이가 17살이던 17년 4월, 형사재판이 열렸다. 담당 검사에 의해 사건은 *소년부로 송치되었다. **소년분류심사원 위탁 시설에서 4주를 보내고 경남 김해에 있는 새빛 청소년 회복센터(이하 회복센터)로 가게 됐다
*소년부로 송치되었다는 것은 검사가 수사한 결과 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보호 처분을 받을만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 관할 소년부로 서류와 함께 넘기는 일을 말한다.
또 한 번의 재판
회복센터에서 1년을 보내고 나왔지만 민승이가 갈 곳은 없었다. 여전히 집에 가기는 싫었다. 가출해서 어울려 지내던 형들과 6개월을 함께 살았다. 중3 때 다녔던 검정고시 학원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함께 살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저한테 삿대질하는 것 같았어요”
중학생인 후배 한 명이 민승이에 관한 소문을 퍼뜨렸다. 민승이의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것이다. 고1 때였다. 처음에는 장난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후배를 불러 밥도 사줘 보고 얘기도 나눴지만, 소문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점점 학교에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다 자기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여자친구가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고 화를 참기 힘들었다. 몇몇 친구들을 불러 중학생 후배를 폭행했고 다시 한번 재판을 받았다.
회복센터에서 지내며 학력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원
민승이는 1달에 1번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간다.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이른 아침이 아닌 점심을 먹고 학교에 가서 빠르면 10분 늦으면 2시간 수업을 듣는다. 한 반에 20명 남짓이 모여 수학, 과학, 회계, 한문 등등 여러 과목을 배운다. 수업에 열중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지만, 착실히 학교에 나오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출석하는 편이다.
청소년 회복센터를 지원하는 (사)만사소년은 부산국제금융고등학교 창원법원특별반 및 부산가정법원특별반인 ‘부산아동청소년상담교육센터’ 운영지원 등 위기 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학업을 돕는다
민승이는 중3 때 일반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어차피 학교 안 나갈 거 아니가?”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에게 더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몰랐던 민승이는 아버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검정고시 학원에 다녀봤지만, 검정고시 커트라인 60을 넘기기 힘들었다. 고졸을 포기하려고 할 때쯤 지금 다니는 학교 교감 선생님이 민승이를 찾아왔다. “니 졸업장 따고 싶나?” 졸업장이 왜 필요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어딜가도 고졸은 해야 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고졸이면 나도 남들처럼 잘 될 수 있겠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어른
처음 그룹홈을 나와 집에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민승이는 막노동을 시작했다. 경남 거제의 조선소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불경기로 일을 쉬었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게 눈치가 보였던 민승이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르면 아침 7시, 늦으면 9시부터 시작해서 날씨가 좋으면 오후 서너 시쯤에 끝나요. 일당은 14만 원, 일주일 버티면 7~80만 원. 여기서 식비만 빼면 60만 원 정도니까 한 달에 240만 원이에요. 그거 싹 다모아서 아빠 드렸어요.”
무거운 철근을 옮기거나 모래를 파서 고층으로 올리는 일이었다. 꼬박 석 달을 죽어라 일만해 약 700만 원을 모았다. 민승이는 아버지가 선물보다는 현금이 좋다는 말을 기억했다. 미성년자 신분으로 한 곳에서 많은 현금을 뽑기 어려워 동네에 있는 은행을 전부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거제에 있는 아버지 집을 찾은 민승이는 현금 700만 원을 아버지께 드렸다. 하룻밤 자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버지 혼자서 울고 계셨다. 아버지의 낯선 모습에 눈치를 살피다 짧게 근황을 나누고 다시 김해에 있는 회복센터로 돌아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민승이는 경남 김해에 있는 새빛 청소년 회복센터에서 지낸다. 청소년 회복센터는 소년법상 1호 처분을 받은 보호소년들이 함께 생활하는 대안 가정으로 사법형 그룹홈이라고도 불린다. 법원의 보호처분에 따라 부모를 대신해 보호소년들을 살피고 가르치는 가정의 역할을 한다. 소년법은 재범률이 높은 19세 미만 소년들의 품행을 교정하고 궁극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데 목적이 있다. 올해로 20살인 민승이는 회복센터를 나와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 끝에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저도 언젠가 커서 결혼을 하면 2세가 태어나잖아요. 저는 제 자식이 바른길로 갈 수 있게 잡아주고 싶어요. 나와는 다르게 부모님 탓하지 않고 그냥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 밖 청소년 프로젝트란?
미디어눈은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6개월 동안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기사와 영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누구이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미디어눈의 기사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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