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7] -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 유진이
40만 명, 57만 명 조사하는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은 수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다. 청소년은 곧 학생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제는 학교 밖 청소년 보다는 그냥 청소년, 청년으로 불리고 싶은 10인을 만났다. 각 스토리는 <미디어눈> 에디터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내러티브 혹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기사에 사용 된 이름은 청소년들의 신상보호를 위해 일부 수정이 있었음을 사전에 밝힌다.
- 기자 말
김태현 에디터
유진이가 친구와 놀다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유진이의 뒷자리에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둘이 있었다.
“呀 傻瓜又上新闻了 (야 바보 또 뉴스 나온다)”
“谁啊习近平哈哈 (누구 시진핑? 하하)”
유진이가 친구랑 대화하는데 뒷자리에서 핸드폰 기계음이 중국어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남학생들이 유진이가 중국에서 온 것을 알고 일부러 구글 번역기를통해 놀린 것이다. 남학생들은 몇 차례 더 유진이와 친구의 반응을 살피며 낄낄댔다. 유진이는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저 학생들에게 말을 해보아야바뀔 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와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지만 이런 경험을 할 때면 마음속에 걱정이 조금씩 피어난다.
이유진(19)은 탈북자인 엄마, 중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다. 지금은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와서 생활한 지 3년이 되었다.
엄마 없이 12년을 살았어요. 드디어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유진이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유진이는 중국 하얼빈에서 16살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셋이 살았다. 원전 노동자인 아버지는 중국최남단 하이난에서 근무해서 1년에 한두 번 집에 들렀다. 특히 그리웠던 건 어머니였다. 유진이의 어머니는 유진이가 4살 때 아버지와 이혼하고 한국으로넘어와 정착했다. 12년 동안 유진이는 어머니를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고 가끔 바다 건너에서 편지나 전화가 한 통씩 오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어머니가한국에 와서 살아보겠냐고 연락이 왔다. 너무나 기다렸던 말이었다. 또 엄마, 아빠 없이 중국에서 살기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연세도 많고 몸도 편찮으셨다. 조부모님은 유진이를 챙겨주기 힘들었고 유진이가 두 분을 부양하기에는 어렸다. 유진이는 한국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할머니 혼자 계세요. 홀로 남으신 할머니가 걱정되지만 겨우 만난 엄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한국 국적으로는 할머니를 뵈러 갈 수 있거든요. 지난해에도 다녀왔어요.”
16살에 초등학생이 되라니 말이 됩니까?
16년 동안 중국에서 살아온 유진이가 한국에서 처음 먹은 것은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였다. “엄마가 만들어 준 김치찌개는 최고예요. 근데 사람이 가끔은친구들이랑 밖에서 사먹고 싶잖아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친구가 없었으니 할 수 없이 집에만 있었죠.” 유진이는 아는 곳도, 아는 사람도 없어서엄마가 가끔 데리고 나갈 때 빼고는 한국에 와서 한두 달 동안 집 밖으로 전혀 나가지도 않았다. “학교라도 다니면 나았겠죠. 중국 학력은 한국에서 인정이 안 돼서 나이에 맞는 학교에 갈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이 나이에 초등학교에 갈 수는 없잖아요” “할머니도 많이 보고 싶어서 중국에 가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가끔 중국에 가서 할머니를 뵙고 돌아올 때면 눈물이 났어요.” 그래도 유진이는 다시 엄마와 다시 헤어지기는 싫다고 했다. “가끔 지치기도 하지만 엄마랑있으면 힘이 나요. 그리고 지금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저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서 조금 덜 외롭기도 해요.”
한국말이든지 중국말이든지 하면 쳐다보니 입을 열기 어렵죠.
유진이의 외로움은 탈북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받는 따가운 시선은 여전히 불편하다고 했다. “한국사람이 중국인을 싫어한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중국인들은 예의 없고 시끄럽고 냄새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맞아요. 중국인 중에 그런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한국인도 그런 사람이 있잖아요. 그건 국적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유진이는 남들 앞에서 입을 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특히 버스에서의 일은 완전히 테러였죠. 저랑 친구가 중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듣고 뒷자리 남학생들이 욕을 하는데 완전히 황당했죠. 반응할 가치도 없다고 느꼈어요. 이런 건 대꾸해줘도 소용없거든요. 힘이 쭉 빠졌죠” 유진이는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지친다고 했다. “친구랑 홍대에서 쇼핑하고, 카페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였어요. 그냥 남들처럼요. 이렇게 살아가는데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가 중요한가요?”
한 걸음 다가갈게요. 따뜻하게 맞아줘요.
올해 유진이는 대학교에 합격하였다. “대학에 가면 한국에서 태어난 학생, 외국인 학생,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돼요. 친구와 기숙사에서 방도 같이 써보고, 학교에서 배운 얘기도 나누고 같이 놀러도 다닐 생각이에요 .” 다만 유진이는 자신이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멀리하지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어색한 한국어 발음을 듣고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 걱정도 돼요. 버스에서 겪었던 일을 또 겪게 될까 걱정도 되고요. 그래도 대학생이 됐으니까 좀 더 용기 내서 다가가 볼래요. 저를 중국인이나 한국인 말고 그냥 청년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학교 밖 청소년 프로젝트란?
미디어눈은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6개월 동안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기사와 영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누구이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미디어눈의 기사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학교 밖 청소년의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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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7] "한 걸음 다가갈게요. 따뜻하게 맞아줘요"|작성자 median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