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8] 새빛청소년회복센터 현수 이야기
40만 명, 57만 명 조사하는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은 수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다. 청소년은 곧 학생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제는 학교 밖 청소년 보다는 그냥 청소년, 청년으로 불리고 싶은 10인을 만났다. 각 스토리는 <미디어눈> 에디터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내러티브 혹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기사에 사용 된 이름은 청소년들의 신상보호를 위해 일부 수정이 있었음을 사전에 밝힌다. - 기자 말
김태현 에디터
야 저놈들 잡어
거칠게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현수와 친구들 옆으로 갑자기 경찰차가 바짝 따라붙었다. 폭주를 뛰던 아이들은 일부로 경찰을 놀리려고 지구대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세 바퀴쯤 돌았을 때 갑자기 지구대에서 경찰들이 튀어나와 차를 타고 추격하기 시작했고 현수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4명의 아이는 각각 다른 길로 달렸고 경찰들은 현수를 따라갔다. “앞에 오토바이 즉시 갓길에 대고 섭니다.” 경찰차가 현수가 가는 길목을 좁혀왔고 결국 오토바이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 현수라고? 니 말고 딴 애들은 다 어데 갔노?” “모릅니다. 처음 보는 애들이었습니다.” “뭐? 니랑 같이 타던 애들 다 첨 보는 애들이라고? 참 내, 말이 되는 소릴 해라. 그걸 누가 믿어줘” 경찰이 언성을 높였지만, 현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그 친구들 안에서 의리였기 때문이다. 현수에게 친구는 소중했다.
집이 싫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어릴 때 아빠랑 이혼해서 떠나셨고요. 아빠는 재혼하셨는데 새어머니가 4살짜리 여동생을 데려왔어요. 저는 그냥 할머니랑 계속 같이 살기로 했죠.” 현수는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밭일을 나가시던 할머니는 매일 4만 원 정도를 벌어오셨다. 살림하기에도 빠듯한 돈이었다. “저는 간짜장 먹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요. 맛은 짜장이랑 똑같은데 왜 2, 3천 원씩 더 주고 사 먹는 건지.” 여전히 현수는 중국집을 가면 늘 짜장만 시켜 먹는다. “언제부턴지 집보다는 밖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가난이 싫었고 가난 때문에 종일 고생한 할머니가 집에 홀로 계신 모습도 보기 싫었어요.” 현수에게 친구는 가족이었고 현수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 안식처였다. “저는 가난도 싫고 재혼 가정이라는 남들과 다른 가정환경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고민이 있어도 할머니한테 얘기하겠어요? 아버지한테 애기하겠어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친구들이랑 더욱 자주 어울리고 소중하게 생각했어요.” 경찰에게 잡혔을 때도 그런 친구들을 넘길 수는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어요.
가난이 싫고, 짠 내 나는 모습이 싫어서 집을 나왔지만, 가난이 떨쳐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밥 한 끼 먹는 것, 당구나 볼링 한 게임 하는 것도 다 돈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어울릴 때마다 친구들이 조금씩 돈을 대신 내주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릴 때마다 돈을 빌리게 되자 친구들은 현수를 달갑게 보지 않았다. “한 번은 갑자기 친구들이 화내면서 여태까지 빌린 것을 싹 다 갚으라고 했어요. 다 합치니까 600만 원 정도였어요.” 물론 현수가 억울한 것도 있었다. “제가 600만 원이나 될 때까지 빌리고 안 갚은 건 잘못했어요. 근데 친구들이 이자 쳐서 1000만 원으로 갚으라 더라고요. 솔직히 말도 안 된다 싶었어요. 그렇지만 돈 때문에 친구를 잃기는 싫어서 그냥 갚겠다고 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현수의 아버지가 500만 원 정도를 대신 갚아주었고 현수는 나머지를 스스로 갚기 위해 돈을 벌기로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오토바이 배달 알바였다. 운전면허만 있으면 다른 자격을 보지도 않아서 현수는 바로 운전면허를 따고 알바를 시작했다.
그때는 오토바이 배달만 한 게 없었죠. 돈도 쏠쏠하고 재밌기도 했고요
현수가 했던 배달 알바는 24시간 동안 현수에게 오토바이를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았다. 대신 건당 3,000원의 배달비는 현수 몫이었다. 보통 오전 11시 반쯤부터 저녁 7시 정도까지 바짝 일하고 나면 꽤 쏠쏠하게 벌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자유롭게 타는 것도 좋았다. “돈도 돈이고 오토바이를 24시간 빌려주니까 배달 일이 끝나면 자유롭게 타고 다닐 수 있었어요.” 현수는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랑 오토바이를 타고 자주 놀러 다녔다. “처음에 몇 번은 간단하게 동네 어귀를 돌아다니는 드라이브였어요. 하지만 갈수록 과감해지고 위험하게 타면서 스릴을 즐기게 됐고 어느샌가 저도 도로에서 폭주하는 걸 즐기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경찰에 잡혔어요.” 법원은 현수에게 보호처분과 함께 그룹홈에 머물 것을 명령했다. “판사님은 제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또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잘못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에요.” 현수가 받은 판결은 그룹홈에 머물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라는 취지로 내려졌다고 한다. 현수는 경찰에 잡히고 할머니를 처음 본 날 실망하신 듯한 할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웠어요.”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잡아준 따뜻한 손
그룹홈을 현수는 그룹홈을 ‘진짜 집’ 같다고 표현했다. “어머니, 아버지(그룹홈 소장님 부부)가 있고 선생님들(소장님 아들, 딸. 부모님과 그룹홈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들이 진짜 잘 챙겨줘요. 좀 화목한 가족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현수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여기 소장님 부부를 어머니, 아버지라고 또 선생님 두 분은 형 누나라 부르며 따라요. 우리가 가진 문제를 이해해주고 함께 고민해주니까 정말 많은 위로가 됐어요. 이분들이 제 문제에 진심으로 관심을 둔다는 게 느껴져서 좋아요.” 현수는 어른들의 보호를 받으며 그룹홈에서 나간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일한다고 그만둔 학교도 여기서 다시 다니면서 미용을 배우는 중이에요. 집에서 걱정도 많고 저도 후회를 많이 하는 중이라 더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으려고요. 또 잠깐잠깐 버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미래도 생각해야 할 것 같고요.” 현수는 좀 더 일찍 그룹홈의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고 아쉽다고 했다. “이곳에 와서야 함께 제 문제를 고민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동안 제가 처해 왔던 상황이나 문제를 이렇게 관심을 둔 곳이 없었거든요. 새엄마가 들어오고 동생이 생기면서 겪은 제 심정이나 가난한 집안 사정에 대한 제가 가진 고민, 이런 것들은 아버지나 할머니한테 털어놓을 순 없는 것들이잖아요. 마음에 있는 말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학교 밖 청소년 프로젝트란?
미디어눈은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6개월 동안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기사와 영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누구이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미디어눈의 기사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학교 밖 청소년의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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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8]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잡아준 따뜻한 손|작성자 median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