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눈 세 번째 눈사람. 박연희 에디터 이야기
"손에서 피가 나요!!! 다친 거예요? 무슨 일이에요? 병원 가야 해요?"
(차분한 미소)
"요즘 목공 해요. 이건 페인트예요."
박연희 에디터와의 첫 만남은 호들갑스러운 질문에 이은 차분한 대답으로 이어졌다. 온라인 회의로만 만나던 사람을 실제로 보니 어색할 만도 한데, 그런 벽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은총 에디터가 왜 박연희 에디터를 미디어 눈으로 섭외했을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조은총 에디터의 노트는 하단에.)
진솔한 걸 좋아한다.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스스로도 언행일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책임감이 강하고 공수표를 날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자유롭다. 모험과 도전을 좋아한다. 요즘은 체력이 정신력이라는 생각에 달리기와 명상을 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한창이란다. 알아갈수록 더 알고 싶은 박연희 에디터를 소개한다.
김하늘 (이하 김): 화상 회의로만 뵙다가 이렇게 만나니 신기한데요? 첫 질문은 면접처럼 한 번 해볼까요? 키워드로 자신을 표현해주세요!
박연희 (이하 박): 저를 키워드로 소개하기가 좀 어색하네요. (하하) 아직 저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반면, 키워드는 사람을 분명하게 규정하는 효과가 있어서 좀 어려워요. 그래도 하나 말해보자면, 저는 이상주의자예요. 더 나은 사회를 꿈꾸죠. 제 이상은 서로가 서로를 보다 이해할 수 있는 사회예요.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그러면 좀 더 살 맛 나는 사회가 될 거라 믿어요.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설사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해도 포기하고 싶진 않아요. 적어도 내 삶에선 그런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이런저런 것을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새로운 걸 해보는 걸 좋아하고, 여행이라면 편안한 도시보다는 사람의 손을 덜 탄 자연을 느끼는 게 좋아요. 대학생 때, 인도 방갈로르에 2개월 자원봉사를 간 적이 있었어요. 여유 시간에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함피, 고아를 놀러 갔는데,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과 유적, 사람들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이후로도 다닌 곳 중에 남미, 몽골이 기억에 남아요.
하지만 항상 여행을 갈 순 없으니 일상에서도 자유와 일탈, 머리를 환기시킬 수 있는 활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요즘에는 달리기랑 목공을 하고 있어요. 달리기는 운동복과 러닝화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체력을 단련시킬 뿐만 아니라 살아있다는 기분을 들게 해줘요. 골치 아픈 일들도 잊을 수 있죠. 목공은 정직한 노동으로 눈에 보이고 손에 쥘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게 매력이에요. 목공 기계를 만지면서 공장에서 작업하시는 분들의 노고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고 노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어요. 요즘은 너무 바빠서 목공방을 자주 못 가는데 틈틈이 계속하고 싶어요.
하: 그럼 미디어 눈도 하나의 도전이겠네요! 미디어 눈에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뭔가요?
박: 오랫동안 회사의 일원으로 일하다 보니 회사와 무관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기록을 좀 남기고 싶었고, 성찰도 하고 싶었죠. 그리고 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공부했는데, 이 내용을 대중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배워보니, 평화학이라는 게 소수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더라고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고민하면 좋을 학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침 대학원 후배인 조은총 에디터가 평화 저널리즘에 기반을 둔 미디어 활동을 하자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것만 듣고도 적극 지지하며 서포터로 도울 작정이었어요. 처음엔 미디어 눈의 첫 지원기관인 경희대 회의에 배석했다가 끝나고 바로 조은총 에디터, 송준호 에디터와 후속 회의를 했고 그 자리에서 “모든 목소리에 가치를”이라는 표어를 만들었어요. 만들고 보니까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와, 이건 꼭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코를 꾀어서 지금은 당초 계획보다 많이 참여하게 되긴 했지만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하: 재미있고 의미 있는 활동이라도 힘든 부분이 있었죠?
박: 네, 그럼요! (하하) 지금 미디어 눈은 시작하는 과정이라 유기적인 조직이 형성되고 있는데요, 여러 사람의 에너지가 모이고 무에서 유를 만드려다 보니까 만만치 않은 면도 있어요. 예를 들어, 저희가 운영 멤버 중심으로 매주 토요일 저녁에 주간 회의를 합니다. 대부분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인 등 다른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라 주말 시간을 이용하죠. 직접 만나긴 어려우니 화상 회의를 이용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한 번 회의를 하면 세 시간씩 이어져서 솔직히 진이 빠질 정도예요. 멤버들 사이엔 ‘토요병’이란 말이 생길 정도죠. 하지만 조직의 세팅 단계이기도 하고 저희의 표어처럼 모든 의견을 숙고하여 결정하는 과정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이해해요. 그리고 지금은 2시간 정도로 줄기도 했어요.
그리고 미디어 눈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있어요. 이름 끝에 ‘님’ 대신 ‘밸’이라고 붙이는데, 모두가 가치 있다는 뜻에서 ‘밸류’를 줄여 부르는 것이죠. 송준호 에디터의 아이디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아직 적응이 안돼요. 오글거린다랄까? 제가 그런 거에 좀 약하거든요. 그래도 나이, 경력에 무관하게 서로를 존중하고 민주적인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하고 사용하고 있어요. 은총밸~ 준호밸~ 하늘밸~ (하하)
하: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기까지 함께 올 수 있었던 동기가 있었을 거 같아요. 미디어 눈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박: 아직은 조명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내어 공유하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문구가 있어요. “모든 개인의 삶은 하나의 예술 작품일 수 있지 않는가? 회화나 건축이 미술품인데 어째서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아야 하는가?” 미셸 푸코가 남긴 말인데, 저는 이 말이 굉장히 와 닿았어요. 특별할 거 없어 보이는 평범한 사람의 삶도 예술 다큐멘터리처럼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마치 ‘인간극장’처럼요. 많은 사람들이 재력가나 권력자, 연예인처럼 특별해 보이는 사람을 동경하는데 저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모두 특별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찾아 보여주면 같은 삶도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또 이런 시도가 호기심을 낳고 긍정적인 상상력을 북돋우면 사람을 바라볼 때 전보다 공감하고 이전에 갖고 있던 오해나 편견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걸 실험해보고 싶어요.
하: 흥미로운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박: ‘평범함 속의 특별함’은 제가 대학원 논문을 쓸 때부터 화두였어요. 논문에선 ‘평범한’ 시민이 사회의 폭력적 시스템 때문에 생긴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어요. 극단적으론 혁명도 가능하지만 그보단 평화적인 방법으로요.
그러던 중 제 눈에 '특별하게' 눈에 띈 사례가 하나 있었어요. 한국전쟁 때 적대적으로 갈라선 부여의 두 마을에 대한 건데요, 전쟁 전부터 신분제로 인한 갈등이 있었는데, 전쟁이 벌어지며 좌익 마을, 우익 마을로 갈라지고 마을 간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어요. 혈육과 이웃을 잃었다 보니, 전쟁 후에도 몇십 년 동안 서로의 마을을 지나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갈등이 계속되고 생활에 지장을 주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를 보다 못한 몇몇 사람들이 ‘강호동지회’라는 친목회를 만들어서 교류하기 시작했어요. 곧 단순한 친목모임을 떠나서 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강의 범람을 막는 댐을 세우는 등 더 큰 사회적 역할을 하기도 했죠. 이런 깨어 있는 주민들의 활동이 마을 간 갈등을 완화하고 지역경제도 도왔다는 추측이 있어요. 이런 움직임이 어떻게 생길 수 있었을까? 그게 참 궁금하더라고요. 논문에 다른 사례들도 있는데 궁금하신 분은 제 논문을 찾아보시길 바라요. (하하)
아, 그리고 제가 논문을 쓴 게 2016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논문을 쓰는 동안 촛불 혁명이 일어났어요. 평화 시위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유일무이한 혁명으로 전 세계가 주목했죠. 제가 논문을 좀 더 늦게 썼으면 촛불 혁명을 연구해보는 건데. (하하하) 외진 곳의 기숙사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느라 촛불시위는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비폭력적으로 특별하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구나'하는 생각에 힘을 많이 얻었어요.
하: 그렇다면 미디어 눈 역시 이런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조명하며 나아가겠네요? 미디어 눈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시나요?
박: 미디어 눈은 기존 미디어와는 다른 눈으로 이슈와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를 공유하며 소통하고자 만들어졌어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패기로 시작된 미디어 눈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닻을 내리게 될지는 몰라요. 하지만 초심을 유지한다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디어 눈이 미움보다는 공감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솔루션을 고민하는 미디어가 되길 바라요. 또한, 경쟁과 경계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협력과 희망의 사회를 보여주는 미디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분명한 목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패기 있게 도전하는 미디어요. 나아가서는 독자들이 우리의 콘텐츠에 공감하고, 우리가 꺼내 놓는 논제를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하: 공감하고, 논제를 함께 고민하고, 나눈다, 어떤 의미인가요?
박: 미디어 눈이 가진 문제의식 중 하나는 기존 언론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분열되고 갈등이 심화되어 왔다는 것이죠. 문제를 드러내지만 문제를 같이 잘 해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 식으로 의견이 양극화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미디어 눈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인터뷰를 하는 곳이잖아요.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사람을 탐구하고 그 사람의 핵심에 도달하고 그 핵심을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 공감대가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줄 거라고 생각해요.
하: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들께 한 말씀 전한다면요?
박: 만드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너무 진지하게 다가오실 필요 없이요. 읽으면서 흥미를 느끼고 호기심을 갖고 공감을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독자 여러분이 동참해서 미디어 눈 활동에 참여하시거나 새로운 소재를 제안해주시는 것도 적극 환영입니다. 미디어 눈은 지금 영상과 사진을 잘 찍는 분들이 필요해요~ 그리고, 지금 미디어 눈의 세 번째 프로젝트를 실현시키기 위해 카카오 같이가치를 통해 모금을 받고 있어요. 사단법인 시민과 카카오 같이가치의 #더불어삶 캠페인에 선정되었거든요!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저희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시면 응원 버튼과 댓글, 공유만 해주셔도 큰 힘이 되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모두 고고~!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54100)
글·인터뷰 김하늘 에디터 l 사진 제공 박연희 에디터
3년 전, 군 제대 후 입학한 평화학 석사과정 첫 수업에서 만났던 박연희 에디터가 떠오른다. 가장 관심 있게 읽은 뉴스 기사를 선택해 발표하는 수업 첫날, 박연희 에디터는 미국 흑인 교회에서 일어났던 총기 난사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희생자의 부고 기사를 읽던 도중 목이 메더니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얼굴 한 번 안 본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 내가 기억하는 박연희 에디터의 첫 모습이다.
그렇게 2년을 학교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가까이에서 봐왔다. 박연희 에디터와 매우 친한 친구가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고양이다. 어느샌가 고양이 한 마리가 학교 앞마당에 새끼를 낳고 가족을 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몇 학생들이 사비로 고양이 사료를 사서 밥을 챙겨줬다. 박연희 에디터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다 학생회의 때 고양이도 우리 가족이니 전학생이 함께 돌보자는 안건을 내기도 했다. 안건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그녀는 1년은 족히 먹을 고양이 사료를 사비로 사고, 매일 고양이를 가족처럼 돌보았다. 졸업 후에도 고양이와 강아지 간식을 사들고 먼 길을 떠나 광릉 수목원에 위치한 학교를 찾는다.
수많은 실력자들이 있겠지만 어느 누구보다 박연희 에디터가 미디어 눈에 함께 한다는 것이 참 든든하다. 미디어 눈은 단순히 새로운 미디어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같이 눈물 흘려줄 수 있는 사람. 설령 뉴욕타임스 출신 베테랑 기자라 해도 그녀보다 우리가 하려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박연희 에디터가 함께 웃고, 울며 전할 사람 이야기가 기대된다.
"미디어 눈 사람들"은 미디어 눈을 만드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연재다. 대안 미디어의 필요성을 느낀 청년들, NGO, 국제기구,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며 풀리지 않는 사회문제를 답답해하던 청년들. 미디어 눈을 시작하기까지의 경험들에 뉴스의 가치를 실어 전한다.
미디어 눈 홈페이지: http://median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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