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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오리 Dec 21. 2020

나는 이상한 사무실에 알바로 출근한다.

알바생 쥬시의 이야기


<5층 사람들>은 미디어오리의 사람들, 그들의 활동생각행복불안과 희망을 담는 코너입니다.



해외 출장과 휴가를 간 동료 때문에 혼자 사무실에 남겨져 있는 알바생. 알바생 답지 않은 짐 지분율이 돋보인다.

나는 요즘 이상한 사무실에 출근한다. 이 사무실은 남영역에서 내려야 할지 숙대 입구에서 내려야 할지 애매한 곳에 위치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힘들어질 때쯤, ‘영상IN(현 미디어오리)’이라는 로고가 붙어있는 사무실이 나온다. 문을 열면 색온도 6500k의 따뜻한 조명과 조명에 잘 어울리는 커다란 목제 책상이 놓여있다. 업종은 영상 컨설팅 업체인데 나는 영상 강의를 들으며 이곳을 알게 됐다. 벽 한 편에 걸려 있는 액자 안엔 ‘여성 기업 확인서’가 있다.



이 작은 곳엔 총 네 사람이 출근한다. 본인이 82년생인 걸 강조하지만 ‘82년생 김지영’과는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대표. 평생의 반을 외국에서 살다가 남편과 한국에 들어온 디렉터. 그리고 평생을 한국에 살았지만 한국 같지 않은 이곳을 첫 직장으로 맞이한 95년생 언니가 있다. 새로운 동료도 들어왔는데 이 분은 가장 오래 한 나라에서 머문 기간이 3-4년이라 한다. 그리고 취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지 1년이 다 돼가는 알바생, 내가 있다.



급여 없는 출근을 하는 이유



출근을 한다곤 하지만 일이 없는 이상 급여는 없다. 대신 난 나에게 할당된 이 공간을 쓸 수 있고, 매일 아침 나에게 인사해주는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 매일 도서관 자리를 찾거나, 내 자신이 도서관 출근 시간을 관리 했어야 했던 때보다 훨씬 낫다. 다들 출근하는 시간에 나도 가야 한다는 적절한 긴장감은 오랜 취준 생활에 오히려 활기를 줬다. 이곳에서 주로 난 내 할 일을 한다. 오전엔 신문을 읽고 상식 정리를 하고, 오후 시간에는 편집을 하거나 글을 쓴다.



있는 듯 없는 알바로 사니 새로웠다. 일단 내가 잘 보일 필요가 없다. 누가 옆에서 뭔 일을 하던 그냥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내 할 일을 한다. 그 와중에 텐션 좋은 대표는 자꾸 혼잣말을 한다. 나는 그걸 무시할 깜냥은 없기도 하고, 대표인데 무시하면 되나 싶기도 해서 할 일을 멈추고 몇 번이나 답했다. 근데 그걸 본 다른 동료는 내게 “주연님, 할 거 하셔도 돼요ㅋㅋㅋ”라고 말했다. 대표도 웃었다. 대표의 말을 씹어도 된다고 직원이 말해주다니, 여기 참 이상한 곳이라 느꼈다.



각기 다른 리듬이 공존하는 사내 문화



이상한 말도 많이 배웠다. ‘톤 앤드 매너(Tone&Manner)’가 그중 하나다. 전 회사의 퇴근 시간은 5시였는데 비교적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다녀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기가 빠졌다. ‘눈치’라는 언어론 내 피곤과 우울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톤 앤드 매너라는 말을 듣고 그 전의 내 모습을 깨달았다. 톤부터 매너, 행동까지 모두 내가 ‘귀염받는 신입’처럼 행동하고자 신경 써왔던 걸 인지하게 됐다.



결국 이 사무실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이 낯선 사내문화 때문이다. 이 사내문화가 생길 수 있는 이유는 ‘한국 기업 문화’에 물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들 싹싹하게, 혹은 친절하게, 혹은 강압적으로 하나의 롤 플레이 하는 것에 시간을 덜 투자한다. 대신 자신의 스타일과 성격, 리듬을 살려서 소통한다. 대표는 ‘대표답게’, 신입은 ‘신입답게’를 요구받지 않는다. 알바인 나는 가장 쉽게 말을 내뱉는다.



새로운 동료가 오늘 또 들어왔다. 대표는 언제나처럼 혼잣말인 듯 혼잣말 아닌듯한 말을 내뱉는다. 이 동료는 몇 달 전 나의 모습처럼 자꾸만 본인이 답을 해줘야 하나 싶어서 쳐다본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니 웃는다. 머지않아 이 분도 웃지 않는 날이 올 거다. ‘느끼는 건 모두 입으로 내뱉어야 하는 대표의 리듬’에 익숙해질 거다. 이 곳은 서로 다른 리듬이 공존하는 사무실이니까. 그리고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도 혼잣말을 할 거다 아마.


 최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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