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이란 소설을 읽(다가 중반부터는 훑)었다. 1800년 무렵을 배경으로 일본 나가사키항의 인공섬 "데지마"라는 교역관에 파견된 젊은 네덜란드인의 이야기다. 주인공 야코프 더주트는 독백과 여러 인물들(다른 국적의 유럽인 및 일본인)과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세계정세와 일본 상황을 전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그리고 희망봉과 필리핀 사이 지리적 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관한 이들의 대화는 일본사회로 흘러들어갔으리라.
이 책에서 흥미롭게 주목한 단어는 번역과 통역이었다. 일본인들은 제한된 공간에서나마 세계와 소통하며 <국부론> 등 서양 책을 번역해댔다. 데지마를 통해 서양인들도(이들 중 일부는 에도까지 나아갔다) 극동의 지리와 물상을 연구하고 일본을 알렸다(이런 게 바탕이 돼서 후에 카잔차키스도 롤랑바르트도 에즈라 보겔도 일본에 관한 책을 썼겠지. 한반도는 오지도 않고 흥)
어린 시절 우리보다 키도 작고 밥먹는 양도 적은 일본인이 어떻게 조선 땅을 식민지배하게 됐을까가 항상 궁금했다. 그 여러 원인을 관련 역사학자들이 전문가적 식견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은 선진문물을 대하는 사회 시스템 차이였지 않았나 싶다. 경주마도 아니면서 눈가리개를 하고, 중화사상 이외의 신문물에는 족쇄를 채워, 결국 이익을 구하는 방편이 내적 착취가 되었던 나라..
번역은 언어 문제 이상으로 이념과 문화의 문제다. 타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관용과 열린 자세와 직결된다. 한류에 관해서도 그러하다. “우리가 말여 이, 세계인이 좋아하는 한류를 만들었는데 이!” 그저 이런 자세에 머문다면 한류 현상으로부터 배울 게 없게 된다. 한류를 기회 삼아 한류가 생겨난 현지에 관해, 그 문화에 대해 배우고 또 우리 스스로 인종적 감수성을 키울 생각 없이 한바탕 돈 벌 생각에만 그친다면 말이다.
이 책에 더해 지난 일이 주간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가지 시선>, <아무튼 메모>, <삼국유사>, <깨끗한 존경> 등을 읽었다. 방학이어서 가능했다. 앞으로 일할 게 산더미다.
데지마에 관한 나무위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https://namu.wiki/w/%EB%8D%B0%EC%A7%80%EB%A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