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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두보 Dec 22. 2023

한류가 뭐길래

제 새 책을 소개합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었던 한류의 역사가 어언 수십 년을 헤아립니다. 그 시간 동안 한류의 양태는 다양해지며 복잡해졌습니다. 동시에 한류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무척이나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한류에 취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떤 논의와 글쓰기는 오히려 한류에 관한 이해를 어지럽히고 결국 대중을 한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한류의 초기에 외국에 거주하며 미디어 교류와 문화변동의 ‘경이’를 목격하였고, 이후에도 꾸준히 한류 현상을 탐구한 저로서는 한류를 쉽게 말하는 ‘방구석’ 논의가 무척이나 안타까웠습니다. 이에 더해 상품을 파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수출’ 중심주의가 왜 문제가 되는지 짚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한류가 뭐길래>를 내놓습니다.      

<한류가 뭐길래>는 ‘문화 현상’으로서의 한류라는 정의를 기준으로, 한류의 ‘복합 요인성’, 한류의 ‘위치성’, 한류의 ‘관계성’, 한류의 ‘혼종성’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한류를 설명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담았습니다. 여기서는 책의 내용 일부를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해외에서 펼쳐진 유행이자 문화 현상으로 시작한 한류가 국내에서는 산업으로서 더 많이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한류는 문화 현상으로서의 한류와 산업으로서의 한류로 나누어 정의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해외 소비자의 선택과 수용입니다. 국내에서 산업적 노력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해외 소비자가 선택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한류라는 현상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류가 뭐길래>는 문화정치의 관점에서 하위문화로서의 한류 팬덤과 보수 문화권력이 각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갈등하고 타협했는지 설명했습니다.     

또한 한류 발생의 복합 요인성을 다루었습니다. 세계 문화 시장에서 성공하려는 문화 기획자와 생산자의 야망, 연예계에서 입신하려는 젊은이들의 땀과 눈물, 문화 간 소통에 능하고 비즈니스에 열정적인 문화 매개자의 역할, 한국 문화 텍스트에 공감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해외 수용자의 존재 등 한류를 발생시킨 여러 요인의 작용에 주목하고 이를 다뤘습니다. 그리고 대중문화의 생산·유통·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정치경제 역학과 미디어 기술의 발달, 더불어 국경을 초월한 팬덤의 행위성(agency)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한류를 더 깊이 분석할 수 있음을 풍부한 예시를 담아 강조했습니다.  


<한류가 뭐길래>는 한류의 ‘위치성’에 관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을 던집니다. “한류가 세계를 정복했다.”라는 식의 ‘국뽕’을 자극하는 언론 문구와 달리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는 해외에서 외국 수용자가 선택하는 수많은 문화 메뉴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한국의 수용자가 ‘문화 다식가’(cultural omnivores)로서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동시에 임영웅 노래도 즐겨 듣듯이, 외국의 수용자도 케이팝을 포함해 다양한 문화상품을 함께 즐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동남아 국가에 한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중국·일본 문화와 그 외 여러 다른 나라 문화도 여전히 그들을 매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여러 기관에서 수행하는 해외 한류 동향 조사는 대개 국가별로 또 시기별로 “K-컬처 인기가 높아졌고, K-컬처 중 무엇이 인기다” 식으로 보고하는 한계를 노정합니다. K-팝밴드 OO이 인기였는데, 최근에 어떤 드라마가 인기 순위 1위가 되었고, 불닭면이 현지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는 식이지요. 왜 이런 방식의 한류 동향 조사가 계속될까요? 이는 한류를 ‘상품 수출’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단지 수출 기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한류의 기점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국내에 팽배한 수출 중심적 한류 정책에 영향받은 탓입니다. 이는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류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외국에서 반한류가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이 수용의 주체인 현지인과 현지 문화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존중 없이, 이들을 그저 돈벌이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류가 뭐길래>는 한류와 이문화 간 ‘관계성’에 주목합니다. 사실, 해외 현지에 먼저 진입한 유사한 성격의 타국 문화가,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문화 매개자가, ‘징검다리’가 되어 한류의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드라마가 수출되었지만, 비로소 1997년 <사랑이 뭐길래>가 한류의 기폭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중국 국영 CCTV 방송이 고용한 실력 있는 조선족 번역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드라마 텍스트를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여성 팬들은 대만 드라마 <유성화원(流星花園)>을 시청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비슷한 외모의 한국 남성 배우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속내를 밝혔습니다. 2006년 브라질에서 <겨울연가>가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일본사회를 경험하고 돌아온 브라질의 일본인 3세들이 일본의 <겨울연가> 인기를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도 한류 팬 다수는 원래 일본문화 팬이었다가 한국문화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한·일전 승리’로 해석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한·일 문화 모두를 애호합니다. 이러한 예시가 드러내는 이문화 간 ‘관계성’과 ‘징검다리 효과’를 깨닫지 못하면 한류로부터 얻어낼 것은 ‘국뽕’밖에 없게 됩니다.      

<한류가 뭐길래>는 한국 문화상품의 오락적 경쟁력이 한류의 지속성을 이끄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 연원을 ‘한국 문화는 원래 우수하다’는 식의 ‘문화 본질주의’ 혹은 일종의 ‘무속적 DNA’ 학설로 설명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는 학문적 게으름의 징표일 뿐입니다. 이 책은 현대 한국 문화상품이 오랫동안 외국문화와 교섭해 이를 토착화하고, 국내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오락적 품질의 향상을 실현한 문화과정(cultural process)의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설명합니다.      

오랜 기간 혼종을 거친 한국문화는 식민주의, 전쟁, 독재, 민주화와 산업화 등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녹여낸 콘텐츠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맞닿아 한류가 발생한 것입니다.      

저는 한류가 산업적 효과 이상의 효능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하나는 한류라는 흐름에 얹혀 우리에게 되돌아오는(還流) 의식과 태도입니다. 타국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듯이, 이제는 한국인이 인종적 감수성과 포용성을 강화해 타문화에 더욱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한류의 성격과 특징을 분석한 것에 더해, <한류가 뭐길래>는 한류를 ‘문화적 사유의 도구’로 활용합니다. 이를 통해 전지구·아시아·국가·지역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문화 현상과 이슈를 해석했습니다. 일테면 중국은 왜 자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명칭인 ‘차이니즈 뉴이어’(중국은 설날을 ‘춘제’라 부름)를 대외적으로 고집해 타국과 갈등을 일으키는지, 코미디언 김경욱의 부캐 ‘다나카상’ 인기가 담고 있는 문화적 의미는 무엇인지, 걸그룹 피프티피프티 사태는 글로벌 문화산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국 드라마의 인종과 젠더 재현은 어떤 이슈를 담고 있는지 등을 분석했습니다. 또 저와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한류 관련 인물 소개를 통해 한류를 둘러싼 이야기를 좀 더 흥미롭게 끌어내고자 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한류가 뭐길래>는 한류를 비판적 인문주의의 관점으로 사유하고, 글로벌 문화연구와 미디어 연구의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그러자니 문화와 산업, 근대성과 전 지구화, 대중문화와 소프트파워, 젠더·인종과 문화정치, 팬덤과 문화소비, 민족주의와 혼종성 등 여러 개념과 주제를 다룹니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끔 이 모든 개념을 쉬운 언어와 친숙한 에피소드에 담았습니다. 저조차도 대학생 시절에 난삽한 학술서의 폐해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문화/대중문화에 흥미와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집필했습니다.     

출간된 순간 이 책은 더 이상 저자의 것이 아닙니다. 공용의 텍스트가 되어 담론과 논쟁의 토대가 됩니다. <한류가 뭐길래>가 한류에 관한 새로운 논쟁을 촉발해 우리 시대 문화의 의미와 역할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도록 이끌기를 소망합니다. <한류가 뭐길래>를 읽고 한류뿐 아니라 문화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독자의 눈이 조금 밝아진다면 저자로서 매우 기쁠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말연시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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