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유통되는 오정보 현상
아래 글은 필자가 2017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것을 가져온 것임.
https://www.khan.co.kr/print.html?art_id=201702102057045
페이크뉴스, 즉 가짜뉴스가 극성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은 언론의 기능과 관련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는데, 그중 하나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정보를 조작하고 민의를 왜곡해 정치과정에 영향을 미쳤던 점이다. 지금 국내에도 뉴스의 형식을 갖췄지만 날조된 정보를 담은 가짜뉴스가 카카오톡과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첨예한 정치 상황 속에서 특정 정치집단이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동원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것이다.
사실 가짜뉴스는 인류사와 함께 존재해 왔다. 다만 과거에는 단순한 거짓정보였던 것이 소셜미디어의 활성화와 함께 더욱 그럴듯한 모습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인터넷은 거대 미디어에 맞서 시민의 발언권을 강화시켜주는 환경을 제공한다. 오랜 기간 동안 정보의 순환고리에서 수동적인 위치에 있던 대중은 인터넷을 통해 능동적 수용자 혹은 생산자적 소비자로 다시 태어난다. 즉,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사회활동과 정치참여의 확대가 인터넷 시대의 밝은 면이라면 가짜뉴스의 유포와 그 맹종은 어두운 면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가짜뉴스를 포함한 각종 거짓정보의 온상이 되고 있음을 최근의 경험에서 재확인했다.
몇 년 전에 등장한 토착 소셜미디어인 네이버 밴드는 처음부터 동창회 기능을 장점으로 표방한 덕에 중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밴드가 주로 성인들의 동창회와 동호회 등 ‘감성적 공동체’의 사교적 기능에 주력하다보니, 그 안에서 유통되는 정보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소구하고, 논쟁보다는 공감을 확장하는데 특성을 지닌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의 반지성주의가 지배하는 경향이 강하다.
디지털 매체의 특징 중 하나는 검증받지 않은 정보가 쉽게 복사되어 확산되는 것이다. ‘펌글’ 혹은 ‘퍼옴’이라는 글이 그것이다. 이런 유형의 글로 몇 년 전부터 여러 밴드를 통해 유포되는 것이 있으니, ‘모르고 쓰던 말’ 혹은 ‘올바른 조문 예절’이라는 제목을 지닌 동일한 내용의 무기명 글이다. 그 글은 몇 가지 조문 예절의 사례를 소개하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쓰는 것은 고인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행위이니 마침표를 쓰면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각 단어 간 띄어쓰기 없이 ‘고인의명복을빕니다’여야 하며, ‘삼가’라는 부사는 고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경우가 아니면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포스팅의 아래에는 매우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어 감사하다는 댓글이 무수히 달려 있다. 댓글이 가진 ‘칭찬 효과’ 때문인지 이 글은 여러 밴드에서 계속 퍼 날라졌다. 그러더니 어느 때부턴가 밴드에 부고 소식이 오르면 거의 모든 댓글이 ‘고인의명복을빕니다’가 돼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필자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홈페이지 ‘묻고 답하기’ 코너에는 이에 대한 질문이 이미 여럿 올라와 있었다. 국립국어원은 “한글 사용의 기본원칙은 각 단어 사이를 띄는 것이며, ‘삼가’는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의 뜻을 지닌 부사로서 그 사용 여부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고,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쓰는 것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소통을 위한 소셜미디어 공간이 오히려 외부와 불통하는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대중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 찾는 ‘확증편향’의 행태를 보이고 있고, 일부 소셜미디어는 ‘좋아요’가 메아리치는 반향실(echo chamber)이 되고 있다. 이러한 틈을 거짓정보가 쉽게 파고들어 사람들을 속이고 선동한다.
디지털 매체가 올바른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려면 미국의 스토니브룩대학이 거의 무료로 진행하는 6주짜리 온라인 강좌 ‘디지털 시민을 위한 뉴스의 이해’ 같은 교육이 국내에도 도입돼야 한다. 또한 각 언론은 온라인상에 유통되는 거짓정보를 걸러낼 팩트체크 기능을 강화하고, 지면에 이를 보도해야 한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언론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하지만, 언론의 진실 확보·검증·보도 기능은 소셜미디어 시대에 더욱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