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z Jul 26. 2020

당신은 어떤 하루를 살고 있나요?

호스피스 병원에서 카메라를 들다


“오늘 오전에 한분이 떠나셨어요.”


  방송 촬영을 위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임종이 임박한 말기 환자들이 지내는 호스피스 병원. 입구로 들어서자 한쪽에서는 침대를 빼고 방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그 옆으로 가족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TV를 보면서 운동하는 사람, 소파에 앉아 통화를 하거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보였다. 환자복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었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마치 이곳에서의 죽음은 그저 누군가의 일상이자 나도 곧 맞이하게 될 일상인 것처럼. 처음 방문한 촬영 스텝들만이 굳은 표정을 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한 간호사가 우리에게 다가와 ‘환자들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상태이니 그들 앞에서 슬퍼하지 말고 편하게 대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와 다르게 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메라를 든 채 주변만 삼십 분째 돌고 있었다.


“저기요~ 그만 방황하고 여기 와서 과일 좀 같이 드세요.”


  방황하는 나를 계속 지켜보던 환자 보호자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어색해하는 촬영팀을 관찰하는 일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환자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함께 웃고 있었는데 그의 온화한 미소는 배우 한석규 씨를 참 많이 닮았다. 에서 사과를 깎으며 그를 챙기는 여자는 털털하고 씩씩해 보였다. 다정한 부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오빠와 여동생이었다. 아내는 그를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바쁜 아내의 자리는 여동생이 지키고 있었다. 하루 종일 오빠와 여동생은 뭐가 그렇게도 재밌는지 깔깔 소리 내어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의 병실이 조용해졌다. 그는 혼자 침대에 기대고 앉아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편지를 쓰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새 그의 눈에 눈물 방울이 서서맺히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편지 형식이었지만 내용은 유서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일 거라 생각하고 영상편지로 남길 것을 부탁드렸다. 수줍어서 못하겠다며 잠시 망설이마침내 그는 카메라 앞에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출처 : KBS 다큐멘터리 3일)



“아내에게,

 여보 사랑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제일 먼저 행복했던 시간이 당신을 만나고 사모했을 때의 순간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고생 속에서 삶을 과제로 남기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합니다.”


  삶의 반성문이었다. 어느새 내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카메라 액정을 펼쳐서 빨갛게 충혈된 내 눈동자를 그가 보지 못하게 숨겼다.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세상과 이별하는 일은 분명 슬픈 일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삶을 정리하고, 남겨질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떠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는 새벽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해피 모닝~ 밤새 뒤척이다가 아침을 기다립니다. 아주 상쾌한 아침을 맞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아침인사를 건넸다. 건강을 잃고 보니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선물 같다고 했다.


  늦은 오후엔 그의 후배가 카메라를 들고 찾아왔다. 자신이 원하는 영정사진을 미리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며 그는 카메라 앞에서 계속 농담하며 웃어 보였다. 마지막까지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거 한번 해볼까? 최불암 웃음!”이라고 말하더니 “퐈아~~~ 하하하~~~” 하고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웃을 일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웃으면 얼굴이 밝아진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보니까 ‘아, 미쳤구나’ 거울을 보고 이렇게 미친 짓까지 하고 웃어야 되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못 미치는 것보다 미치는 게 차라리 낫다’ 이런 이상한 생각도 드는 거야.”


  그가 한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지금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살고 있나? 루하루 사는 게 힘들다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아직은 괜찮다며 건강을 챙기는 일에 소홀한 건 아닐까. 어쩌면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른 채, 그냥 의미 없는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촬영이 끝난 열흘 뒤에 방송이 나갔다. 문득 그가 TV에 나온 자신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에 그 날의 방송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방송을 볼 수 있는 하루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나와 인터뷰하며 보낸 시간이 그에겐 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앞으로 나와 당신이 어떤 하루를 살아야 할지 좀 더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의 마지막 인터뷰를 적어본다.


"하루를 미리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하루 열심히 살면 오늘과 같은 하루가 내일 또 맞아지겠죠. 나의 철학 이런 건 아니고 그냥 절실한 오늘 하루라는 시간을 이렇게 보내다가 보니까 제가 살 수 있는 하루는 그런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빠의 두 번째 그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