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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Dec 03. 2022

내가 너 였을 때

내가 너였을 때 


시골에 사는

호기심 덩어리 열 살배기 소년이었던 내게

풀벌레들은 만만한 노리개였다. 


여름 따사로운 햇살아래

부지런히 대지를 돌아다니는 개미를

보이는 족족 집어서 미리 봐 두었던 거미줄에

한 마리씩 던졌다. 


개미가 끈적이는 줄에 엉켜 바동거리면

미세한 떨림을 감지한 호랑거미가

재빠르게 달려들어 먹이를 물었다. 


독이 몸에 스며들자 곧 개미의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노랗고 검은 줄무늬를 가진 거미는

꽁무니에서 실을 뽑아 개미를 둘둘 만 다음

소화액을 개미 몸 안에 넣고서 천천히 빨아먹었다. 


풀숲을 뛰놀며 나비, 여치, 귀뚜라미, 고추잠자리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 그 거미에게 먹였다. 


아버지가 양파 망으로 만들어준 잠자리채를 휘두르다

덩치 크고 힘센 말잠자리를 건지면

옆으로 매고 다니는 채집통에 고이 넣어두었다가

다른 날벌레를 줘서 배불린 뒤 기르던 거미를 찾아갔다. 


호랑거미는 인기척을 느끼고선

거미집을 세차게 앞뒤로 흔들다가

내가 더 다가서자 구석으로 숨었다. 


엄지와 검지로 말잠자리 몸통을 잡고

다리를 허공으로 향하게 한 뒤

다른 손으로 날개를 펼쳐서

끈끈한 줄에 꼼꼼하게 붙였다. 


말잠자리가 천하의 싸움꾼이라지만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에서는

거미의 한 끼 거리에 불과했다. 


그렇게 여러 날 지나 거미의 몸집이 제법 불면

땅으로 내려서 사마귀와 대결시켰다. 


동네 꼬맹이들은 누가 이기나 보려고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두 검투사가 모두 비틀거리며 혈투가 시들해지자

흥미를 잃은 나는 그 둘을 개미굴 앞에다 던져버렸다. 


이미 지친 거미와 사마귀는 

새카맣게 달려든 개미떼를 당해내지 못한 채

속절없이 머리와 다리를 뜯겼다. 


철없는 장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개미잡는 약을 개미집 입구에 놓았다가

그것도 지루해서 살충제를 마구 살포했다. 

숱한 개미들이 마구 널브러졌다.

모종삽으로 땅을 마구 헤집고서야 행악질을 그쳤다. 


방학숙제를 한다는 이유로

꿈틀대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몸 구석구석에 핀을 꽂거나 

쉭쉭거리는 하늘소를

산 채로 에탄올에 담그면서도

행여나 쏘일까 두려웠을 뿐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멋진 트로피를 얻은 양 자랑스러웠다. 


죽은 바퀴벌레와 파리, 모기를 휴지에 싼 후

라이터를 켜고 에프킬러를 분사하여 활활 태우며

해충을 응징했다고 의기양양했던

악동들 중 한 명이 나였다. 


영화에서나 보던 화염방사기처럼

불을 뿜어대는 스프레이 모기약이 마냥 신기했다. 


형들을 따라 방아깨비 작은놈을 미끼로

낚시질 하는 재미도 좋았다.

이게 다 촌 장난꾸러기의 거친 유희였다. 


그러던 개구쟁이가 이제는 가급적 홈키파 대신

로즈 제라늄 화분을 창가에 놓아서 모기를 쫓거나

번거롭더라도 방에 모기장을 치는 중년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농약을 치더라도

최소한에 그치려 애쓰는 동시에

생명을 잃은 벌레의 천도를 기도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어떻게 사냥하는지 알고픈 호기심에,

최강자를 가리고 싶어서,

단지 해론벌레라는 까닭으로,

달아나는 곤충을 낚아채는 손맛을 즐기려 

생명을 놀잇감 삼다 가차 없이 내버리는 행동이

결국 나를 해치는 길이라는 이치를 시나브로 깨달으며

나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너였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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