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Trumps Hate
사랑이 증오를 이긴다
겨울비에 내린 갈잎 축축이 젖어 길을 덮었다. 비오고 되레 따스한 바람이 낯설다. 가지 사이로 청아한 하늘 아래, 닫힌 철문을 열어 걸고, 긁개와 긴 비를 들고 나섰다. 교당에 머물며 여행 중인 뉴질랜드에서 온 학생이 다가서 묻는다. “깨달으면 좋나요?” “깨달으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데서 자유롭지.” 이 말을 마치고 남은 낙엽을 마저 쓸어 자루에 담았다.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한동안 분노로 일그러지더니, 이내 불안으로 굳어가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지난해 이맘쯤, 캐나다 밴쿠버에서 보았던, 쥐스탱 트뤼도 신임총리를 반기던 이들과 영 다른 모습이 이채롭다. 이민자 우호 정책을 펴겠노라는 트뤼도와, 불법이민자를 단호히 추방하고 국경에 담을 쌓겠다고 엄포를 놓는 트럼프. 체류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의 호불호는 분명하다.
미국 대선결과를 보고 유독 한 청년이 떠오른다. 매릴랜드 주에서 만났던 그는, 불법체류자인 어머니가 시민권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군에 입대했다. 힐러리라고 해서 덜 할 것도 없겠지만, 그의 가족에게, 호전적인 매파가 득세할지 모를 트럼프 행정부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뉴욕원광복지관에도 영주권이나 시민권 상담 차 들르는 한인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오바마케어라는 건강보험혜택을 입고 있던 가난한 이들도 다시 의료사각지대로 내몰릴까 우려를 놓지 못한다. 인종차별과 여성비하로 구설수에 오르던 트럼프를 혐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분노, 불안, 그리고 공포라는 망령이 미국에 떠돌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최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했고, 조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숱한 이들이 이름 없이 죽어나가지 않았는가. 이 전부가, 국민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대통령에 의해 훼손되고 있는 현실에 시민들은 절망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최순실, 차은택, 안종범, 우병우, 김기춘... 감자넝쿨처럼 알알이 올라오는 이 지질한 인간군상은 적나라한 우리모습이기도하다.
미국과 한국에서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뉴스를 주시한다. 그리고 내 마음에 일어나는 분노와 증오의 흐름을 바라본다. 트럼프와 박근혜. 그들의 그름을 통해 내 그름을 깨치기에, 두 사람은 나에게 참 선생이자 부처님이다. 아직 오지 않은 트럼프의 미국에 대한 불안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박근혜씨에 대한 증오에 휘둘려 오늘의 내가 잠식될 필요는 없다. 만약 이 마음을 놓치고, 싫어하는 것에 집착하여 나의 오늘을 잃어버린다면, 또다시 원하지 않는 상황은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오고 말 것이다.
다시 밖을 바라본다. 광화문의 100만 촛불. 이는 불의를 차마 보지 못해 일어난 양심의 빛이다.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응집된 양심의 에너지는 분노와 증오의 흐름을 돌려 거리를 축제로 물들였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나의 소원’에서 한없이 바라마지 않았던 ‘높은 문화의 힘’이 여기에 있고, 장차 한국이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이 되리라는 원불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예언이 싹트고 있음을 보았다. 분노와 증오를 축제로 돌려놓은 힘은, 싫어하는 것에 끌리지 않아 자유로운 내 안의 양심이며, 그름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자비요 사랑이다.
뒷정리를 마무리 짓고 돌아서는 내게 뉴질랜드 청년이 또 묻는다. “교무님 저 출가해도 될까요?” 뜸을 두고 나직이 답했다. “사랑, 해봤어요?” 이 말에 그는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