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영등 Dec 15. 2022

일과日課

 일과日課


 바람 불어 후박나무 잎이 맞부대껴 서석대는 소리에 눈을 뜬다. 비가 오나 눈 비비며 방 창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데, 먹색 하늘에 별이 총총 달이 빛난다. 


낡은 등을 밝혀 세수하고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선 계단을 올라, 정자 한 켠 나지막이 달린 작은 종 앞에 서서, 몸에 힘을 풀고 고르게 종을 치고자 호흡을 가다듬는다. 긴 세월을 닳아 연꽃무늬 흐릿한 자리를 타종 봉으로 밀어 치면, ‘당’하는 울림이 내 몸을 따라 둥글게 울려 퍼진다.


 이렇게 매일 아침 서른세 번, 욕심이 담박하고 마음이 맑은 하늘사람이 산다는 삼십삼천三十三天에 이르자는 소망을 담아 종을 울린다. 종치는 나무를 내려놓고 계단을 더 올라 법당에 들어서 바르게 앉아 선禪에 든다. 


 좌선을 마치면 산비탈에 세워둔 참나무 원목에서 표고버섯을 채취한다. 먼지를 대충 불어 훑고 몰래 한입 베어 물면 짙고 깊은 향이 입안에 차 가득하다. 바구니 가득 채운 버섯을 가을볕에 말리려 얇고 넓게 펴 양지바른 곳에 두자 식때를 알리는 목탁소리 들리고, 발길을 돌려 소박한 공양을 받아 합장 올리고 수저를 든다. 


 그릇을 씻어 얹어두고 마음을 청정이 하는 주문을 부지런히 외우며, 나뭇가지 사이로 긴 햇살이 열어가는 오솔길을 따라 기도터에 올라, 샘물로 마른 목을 축이고 큰 바위 아래에서 마음을 모아 잠시 멈추니 정신기운이 상쾌하다.


 경내는 이 생生을 마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독경으로 경건하고, 나는 수레를 끌며 분주히 오가는데, 만덕산을 오랜 세월 지켜 오신 승산 종사님은 그늘 한켠에 자리를 잡으시고, 후박나무 가지로 등 두드리게를 깎으시며 이를 ‘여래봉’이라 이름 붙여 만덕산을 찾는 선객들에게 10년 안에 성불하라 다짐받으시며 나눠주신다.


 밭에 내려가 뙤약볕 아래에서 붉게 잘 익은 고추를 푸대자루 가득 담아, 트럭 뒤에 서서 타고 볼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이제 해질 무렵, 도끼를 들어 굵게 베어진 나무를 쪼개 겨울을 준비하는 장작을 마련할 때, 공양간에서 오르는 흰 연기와 밥 냄새에 마음은 흥겹다.  


 노을에 하늘은 검붉게 물들고, 정자에 둘러 앉아 신들린 북장단에 맞춰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올린다. 멀리 승산종사님은 모기를 쫓으시며 부채질하신다. 가을바람에 귀뚜라미 우지지고 반딧불이 허공을 가르는데, 내 마음이 오고 가다 높이 뜬 달에 멈춘다.  


 저녁기도 올리고서 스물여덟 별자리에 밤의 안녕을 기원하며 다시 종을 울린다. 이부자리에 몸을 눕혀 눈을 감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지 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