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의학용어를 공부해야하는가?
사랑하는 가족이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무슨 상황인 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입원한 지 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담당 의사를 만났어요.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어떤 병인지 알려주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큰 병은 아니라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검색해 봤어요.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 것 같아요.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궁금한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어떤 치료를 하는 지도 궁금하고, 확률은 낮지만 발생 가능한 부작용들도 좀 걱정이 됩니다. 유튜브를 보니 정말 다양한 치료법이 있는데, 이 병원에는 그런 최신 기계가 있는지도 알고 싶어 집니다.
그래서, 다음날 회진에 맞추어서 선생님을 뵈려고, 회사에도 늦는다고 이야기해 놓고,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예상 시간보다 한참을 지나, 어제의 담당 선생님을 포함한 여러 명의 부하들을 거느린 대장 선생님이 오셨어요. 어제 담당 선생님은, 레지던트이신가 봅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몹시 바빠 보이는 과장님이라 불리는 대장 선생님께 어제 공부한 내용을 물어봤어요.
"어떤 치료를 하고 계신가요? 그 검사는 왜 진행이 되었나요?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대장 선생님은 뭔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저를 잠시 바라봅니다. 하지만, 곧 친절하게 말씀을 해주셨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친절하던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이, 왠지 오늘은 저를 째려보는 것만 같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은 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만 하십니다. 저는 그래도 용기를 내어 질문을 하는데, 특히, 부작용, 의료 사고의 가능성, 치료 방법에 대해 물어보니, 언짢은 표정이 역력합니다. 왠지 진상 환자로 찍혀버린 것 같습니다. 저도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인지라 느낌이 있거든요.
그리고, 보험 관련해서 여러 필요한 서류를 위해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문의를 하니, 또한 달갑지 않은 표정들입니다. 내가 병원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인 지, 아니면 보험 사기라도 치려는 사람처럼 보이나 봅니다. 왜! 아프면 죄인이 되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왜 매번 굽신거리며 병원을 돌아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진상 환자 취급을 안 당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고, 원무과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마침내 소견서를 비롯해서 몇 가지 서류를 챙겼습니다.
무겁고 지친 몸과 마음을 끌어 결국 의자가 털썩 앉았습니다. 그리곤, 받은 서류들을 펴 보았습니다. 대충 영어사전을 찾아보면서 읽으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사전에도 나오지도 않고...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실제 받아 든 정보는, 유튜브의 정보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도, 내 가족이 최고로 좋은 치료를 받게 하고, 문제없게 잘하고 싶어서, 또다시 의사 선생님께, 간호사 선생님께 질문합니다.
"이 주사는 무엇인가요?"
"이 수액은 왜 맞아야 하나요?"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는데, 모두 꼭 맞아야 하는 주사인가요?"
"이 약은 꼭 먹어야 하는 거죠?"
"부작용은 없는 것인가요?'
"많이 아픈가요?"
내 질문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병원에서 내 '진상' 지수는 비례해서 올라갑니다.
의학 지식은 의사들만 알아야 하는 걸까요? 일반인이 섣불리 알면 더 위험한가요? 지식의 불균형이 만드는 문제들은 어떻게 할까요?
엉터리 의학 정보에 노출된 일반인들
현대인들은 정말 건강에 관심이 많아요. 의학 정보도 넘쳐나지요. 이제는 티브이를 넘어 블로그, 유튜브등에서 의사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방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정보들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서울대병원에서는 유튜브에 올라온 파킨슨병 관련 영상 138개를 분석해 보았는데요, 그중 91개만 올바른 정보를 담고 있었어요. 1/3 정도의 영상은 잘못된 정보였단 뜻이에요.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어요. 91개의 올바른 동영상보다 잘못된 47개의 영상의 조회수가 훨씬 높았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내가 유튜브에서 봤는데.."라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이 째려보는 거예요. 솔직히 '유투..' 두 글자만 들어도 짜증이 나거든요.
참 모순된 상황이에요. 우리는 의학과 건강에 관심이 많고, 많은 시간을 정보습득에 소비하는데, 정작 대부분 잘못된 정보를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요? 소비자와 의료서비스 제공자 양쪽에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콘텐츠 소비자인 우리는 건강에 관심은 있지만,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어 하지는 않아요. 영어로 된 의학용어라도 나올라치면 바로 눈을 돌리고, 한글로 "당뇨약을 먹고 있다면 꼭 봐야 하는 동영상"이라 쓰인 섬네일을 클릭합니다. 의학이 마치 엔터테인먼트처럼 소비됩니다. 이게 얼마나 비합리적인 상황이냐 하면요, 내 자동차에 문제가 있어서 인터넷을 찾아보는데, 자동차 정비를 하는 사람도 아닌, 일반인이 "엔진청소는 이거 하나면 카센터 안가도 됨"이라고 올린 정보를 믿고 따르는 것과 같아요. 우리 몸은 적어도 자동차보다 소중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 몸에 관한 의학정보에 관해서는 불합리한 판단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의사들을 불신하고 의학 지식을 찾지만, 진지하게 공부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유튜브를 하면서 마이크 하나를 사는데도, 3개의 제품을 반품하고 이런저런 공부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콘덴서 마이크가 뭔 지, 다이내믹 마이크가 뭔 지, 폴라 패턴이 뭔 지 등을 따져보고, 마침내 딱 맘에 드는 가성비 최고의 제품을 살 수 있었어요. 처음엔 그냥 리뷰 사이트에서 좋다고 한 것을 샀는데, 제 작업환경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제품이었거든요. 의학 지식과 음향기기 지식이랑 같냐고요? 맞아요, 다르죠, 우리가 의사들처럼 공부를 할 수도, 시간도 없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관심 있는 건, 딱 하나의 질환일 뿐이에요. 내 병, 내 가족의 병. 그거 하나는 깊이 파볼 수 있잖아요? 적어도 자동차나 오디오를 파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일반인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어요.
둘째로, 서비스 제공자인 의사들은, 일반인과 지식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왜냐? 귀찮기만 하거든요. 실제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꼬치꼬치 캐묻는 환자들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아요. 그 환자들의 의사에 대한 불신이 느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딱 믿고 따라오는 환자들을 보면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어요. 하나라도 더 신경 써주고 싶어요. 그런데, 솔직히 진상 환자들에게 좀 더 조심하는 부분도 있기는 해요. 그래서, 의사들은 보통 환자들이 공부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하는 것은 환영인데, 어디서 이상한 정보만 가져오거든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히고, 짜증도 나고... 솔직히 그래요.
양 쪽 모두에서 노력이 필요합니다. 환자는 정확한 지식을 공부해야 해요. 몸이잖아요? 자동차나 오디오보다 더 중요한 우리 몸인데, 사이비 지식에 혹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바쁜데 의학 공부할 시간이 어딨 냐고요? 그러게요, 그럴 거면 의학전문 대학원에 진학하고 말지요.
의사는 환자에게 더 자세하고 제대로 된 설명을, "믿고 나만 따라오라"와 같은 태도에서 '환자와 같이 판단'해가는 진료가 필요합니다. 바쁜데 가능하냐고요? 그러게요, 그럴 시간에 대기한 환자 하나 더 보는 게 국가와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인데 말입니다.
예... 현실적으로 참 어렵죠. 그러나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일반인들이 더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을 갖추는 것이 의료 서비스 개선의 첫걸음입니다. 전문가는 지식을 독점하지 않고, 소비자는 더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식의 불균형을 줄임으로써, 의학적 부권 주의(parternalism)도 지양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도 높일 수 있습니다.
"환자들이 뭔 의학 공부를 한다고 해?"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요?
"여자들이 뭔 공부를 한다고 해?"
지식의 공유는 늘 긍정적인 역사를 갖습니다. 기득권자는 늘 지식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말입니다. 그만큼, 일반인으로서도 전체적으로 올바른 의학 지식의 획득을 위해 노력이 필요합니다.
Jargon Oblivion 전문용어 망각
The mismatch between our intent to avoid jargon and the reality of our frequent use of it
우리는 그냥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전문용어를 엄청 쓰는 현상
Gotlieb R, Accuracy in Patient Understanding of Common Medical Phrases. JAMA Netw Open. 2022 Nov 1;5(11):e2242972
다음 의사의 설명이 어떤 의미인지 맞추어 보시겠어요? 암 검사를 마친 후 의사의 설명입니다.
“Your nodes are positive.”
A) You are clear of cancer
B) The cancer has spread
C) The cancer has not spread
D) Don’t know
정답은 B입니다. positive는 긍정적으로 해석되지만, 위에선 nodes가 양성, 즉 존재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 문제들은 Gotlieb등이 JAMA에 2022년 기재한 연구에서 소개된 예시입니다. 아래 다른 문제들도 맞혀 보시겠어요?
Your blood tests showed me that you do not have an infection in your blood.
Your cancer screening test came back and the results are negative.
Your blood culture was negative.
Your chest x-ray was unremarkable.
We are halfway through your chemotherapy treatment and your tumor is progressing.
You are to have nothing by mouth after 4 pm.
Your nodes are positive.
Patient’s neuro exam is grossly intact.
The findings on the x-ray were quite impressive.
You will need to be NPO at 8 am.
Have you been febrile?
I am concerned the patient has an occult infection.
정답을 확인해 보시죠
당신의 혈액 검사 결과, 혈액에 감염은 없습니다.
당신의 암 검사 결과는 괜찮습니다.
당신의 혈액 배양 검사는 정상입니다.
당신의 흉부 X-레이 결과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습니다.
당신의 항암 치료 중반인데, 종양이 커지고 있습니다.
오후 4시 이후로 먹거나 마시면 안 됩니다.
당신의 림프절 검사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환자의 신경 검사 결과는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X-레이 결과가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오전 8시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마세요.
최근에 발열 증상이 있었나요?
환자에게 숨겨진 감염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몇 문제를 맞히셨나요? 해당 연구에 의하면 많은 미국인들도 정확한 해석을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이 예들을 보면서, 환자들이 이런 것도 모른다고? 혹은 왜 의사들이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의사들은 아마 환자들에게 NPO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9번의 문장은 매우 의아했습니다.
The findings on the x-ray were quite impressive.
만약에 방사선 검사 결과지 findings에 impressive가 있다면 문제가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일상적으로, 보편적인 느낌으로 impressive라고 하는 것은 좀 어색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a clinician saying their radiography was impressive was generally bad news
의사가 "방사선 결과가 impressive 하다"는 것은 보통 나쁜 소식이다.
저는 아무래도 좀 이상했는데, 좀 더 읽다 보니, 이 논문 말미에 위 문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추가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impressive라는 말을 환자가 얼마나 빨리 좋아지고 있는지 표현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으므로,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앞뒤 배경이 필요하다. 미국인들에게도 헷갈리는 표현입니다.
Additionally, adding a control group of clinicians taking the survey would have been helpful to validate the agreement behind what clinicians intend when they use these phrases, though the only phrase we can hypothesize where this may be used differently depending on the context is the term “impressive” when describing radiography, which conceivably a clinician might use to describe how quickly something healed. Finally, though our survey questions were thoroughly assessed for bias, in some cases, the answer choices were multiple choice (eg, good news, bad news, or don’t know), allowing a survey respondent to guess and provide answers that may not reflect their true understa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