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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단어와 의학용어: 안락사와 DNR

1. Euthanasia와 접두사 eu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좋은 죽음”에 대한 욕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고통 없이, 존엄을 잃지 않고,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환자와 가족 모두가 심리적 준비를 마치고, 억지스러운 연명 치료 없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상태가 좋은 죽음의 기준으로 여겨집니다.


의학 용어로써의 euthanasia는 바로 이러한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으며, ‘좋은’을 의미하는 eu-와 ‘죽음의 신’을 의미하는 타나토스(thanatos)가 결합된 euthanatos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직역하면 ‘좋은 죽음’이며, 실제로는 고통 없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도록 돕는 행위를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적용되며,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여기서 thanatos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의 신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영어와 의학용어 속에서도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thanatology는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thanatophobia는 죽음에 대한 병적인 공포를 의미합니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도 죽음을 향한 무의식적 본능을 death drive, 즉 타나토스라고 부릅니다. 삶을 향한 본능인 에로스(Eros)와 대비되는 개념이지요.


이러한 어근 eu-는 의학용어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도 자주 사용됩니다.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젤리온'의 '에반젤리온'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ev-'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eu-'에서 시작합니다. 그리스어 '에우안겔리온(euangelion)'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좋다'는 뜻의 'eu-'와 '메시지'를 의미하는 앙겔리온 'angelion'의 조합입니다. 그리스어에서 'angelion'(ἀγγελίον)은 '메시지' 자체를 의미하고, 'angelos'(ἄγγελος)는 '메신저', 즉 하나님의 천사를 의미합니다. (천사와 복음은 한 끗 차이) 기독교에서는 이 ‘좋은 소식’이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euangelion은 철저히 단수로 사용됩니다(복수:euangélia). 영어 성경과 신학에서 ‘복음’을 the good news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 약간의 언어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영어 단어 news는 본래 복수형 명사이며, 단수형 a new 같은 표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로 euphoria는 ‘매우 좋은 상태’, 즉 황홀감, 극도의 행복감을 의미하는데, 역시 eu-와 ‘지내다, 운반하다’라는 의미의 pherein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Peripheral 같은 단어에서 볼 수 있는 pherein은 ‘주변으로 운반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farewell의 fare도 같은 인도-유럽 어근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출발, 여행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결국 euphoria와 farewell은 모두 ‘좋게 보내다’,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공통된 개념을 갖고 있으며, 이는 인간이 타인의 평안을 기원하는 방식이 언어 속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말의 안녕도 마찬가지요^^



2. DNR (Do Not Resuscitate)


최근 안락사와 관련된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는 DNR입니다. DNR은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말라(Do Not Resuscitate)”는 뜻으로, 심정지나 호흡 정지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이 심폐소생술(CPR)이나 제세동 같은 적극적인 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도록 지시하는 의료적 결정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DNR은 단순히 심정지 상황에서의 CPR 중단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지양하고 환자가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소극적 안락사의 형태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환자의 삶의 질을 고려하며, 무의미한 고통을 연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현대 의학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말기 환자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죽음을 앞둔 환자의 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DNR 결정은 환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단지 기술적인 판단이 아니라, 환자의 삶과 가치, 가족의 이해, 그리고 의료진의 윤리적 책임이 모두 고려되어야 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의료인들은 과정에서 단순한 전달자가 아닌, 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가족의 감정을 지지하며, 전인적 돌봄을 실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총체적인 간호와 인간적인 소통은 DNR 결정이 단순한 치료 중단이 아닌,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배려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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