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기 위해 일해요? 일하기 위해 쉬어요?
쉬기위해 일해요?
일하기 위해 쉬어요?
목표지향적인 한국인들, 그들의 행복관
최근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유엔이 정한 ‘국제 행복의 날’을 맞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도 점수는 6.058점으로 전 세계 52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토록 쉽게 불행을 느끼는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유전적 요인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행복물질’로 불리는 신경전달물질, 아난다마이드(anandamide)의 자연 생성 비율에 민족 간 차이가 뚜렷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 한국인의 경우 이 물질의 자연 생성률이 고작 1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반면, 유럽계 백인은 21%,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인은 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현저히 낮은 수치는, 한국인들이 기본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덜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주
아난다마이드는 이름부터가 ‘ananda’, 즉 산스크리트어로 ‘즐거움, 행복’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물질은 뇌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내인성 마리화나(endogenous cannabinoid)로서, 대마초의 향정신성 성분인 THC와 동일한 칸나비노이드 수용체인 CB1과 CB2에 결합하여 작용합니다. 이 물질은 공포를 견디게 하고 불안을 누그러뜨리며, 긍정적인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반대로, 아난다마이드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더 많은 성취와 결과를 갈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문화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이라는 단어 속에 이미 이러한 우리의 관념이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행(幸)’이라는 글자는 매울 신(辛) 자를 닮았습니다. 본래 갑골문의 이 한자는 나무로 만든 수갑을 의미합니다. 두 나무를 아래위로 맞댄 뒤 양 끝을 노끈으로 묶어 손을 꼼짝 못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왜 수갑, 형벌의 도구가 행복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지만, 형벌의 위협 아래에서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상태를 뜻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고통이나 시련 속에서 우연히 살아남거나 구제받은 것, 그것이 ‘행’의 원형이라는 거죠. 내가 노력해서 쟁취한 결과가 아니라, 어딘가로부터 뜻밖에 내려온 결과라는 수동성과 우연성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행복’이라는 것이 요행처럼 헛된 것이어서, 우리를 구속하는 수갑같은 것이란 의미를 담을 수도 있습니다. 헛된 운을 뜻하는 요행(僥倖)의 행(幸)자도 같은 행(幸)자입니다. 그러니, ‘행(幸)’ 이라는 글자의 뿌리는 결코 그렇게 좋은 의미만은 아닙니다.
‘복(福)’ 역시 그 구조를 보면 신과의 관계 속에서 하늘로부터 주어진 은총을 상징합니다. 왼쪽의 ‘示(보일 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의 형상이며, 오른쪽의 ‘畐(복)’은 밭(田)이 풍요롭고, 입(口)이 가득 차 있으며, 그 위에 점(丶)처럼 복이 더해진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밭이 풍성하고 입이 채워졌다는, 곧 ‘충만한 상태’를 뜻하며, 그런 풍요로움이 신의 제사와 기원 속에서 주어진 것이라는 관념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복(福)’ 또한 내가 노력하여 이룬 결과라기보다는, 하늘이 내려준 결과, 예기치 않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뉘앙스를 가집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많은 복을 누렸다’는 식의 뉘앙스가 담겨있습니다.
이처럼 ‘행복(幸福)’이란 단어는 매우 결과중심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던 돈이 많거나, 명예를 이루었거나 하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우리 마음에 심어졌습니다.
현재 중국의 결혼식장에서 골칫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신부 입장을 하는데, 신부보다 먼저 식장으로 돌진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데요, 이들은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바로 신부에게 보내는 하객들의 축복을 가로채려는 행동이랍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 실제 타인의 축복이 자신에게 온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이들이 바라는 행복이 바로 거저주어지는 그런 행복입니다. 그러나, 원래 한국인들이 추구했던 진짜 행복은 지금 우리가 표현하는 결과론적인 행복이 아닙니다.
‘행(幸)’ 자가 쓰인 춘추전국시대의 문헌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보면, 군자는 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행’은 우리가 생각하는 과정과 무관한 결과적 행복이지요.
“고군자부처행 부위구(故君子不處幸, 不爲苟)”
군자는 '행복'을 좇지 않으므로, 모든일에 소홀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덕을 행함으로서 얻어지는 즐거움을 진짜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이 때 주로 사용되는 표현은 행복이 아니라 ‘樂(즐거울 락)’과 ‘安(편안할 안)’이었습니다. ‘安貧樂道(안빈락도)’는 그 두 글자를 모두 담고 있는 말로, 겉으로는 가난하고 누추한 삶일지라도 도(道)와 진리 속에 머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깊은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청빈함도 괜찮다’는 체념이 아니라, 오히려 ‘도’를 따르는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이런 안빈락도의 삶은 외물에 휘둘리지 않는 고결한 인격과도 연결되며, 진정한 기쁨이란 결과적인 성취나 행운이 아니라, 내면의 충만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이 처럼 원래 한국인들이 추구했던 행복은 현대적 의미의 ‘결과로서의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행복'이란 단어 자체가 원래 쓰이던 말이 아닙니다. 중국에서도 '행복'은 간혹 등장했지만, 본격적으로 널리 쓰인 것은 청나라말 근대 이후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아시아인들이 추구했던 원래의 행복은 도를 따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편안함과 즐거움이었습니다. 군자의 ‘安’과 ‘樂’의 문화가 다시 우리 사회 속에서 회복된다면, 우리 민족도 더 행복해지리라 생각합니다. 결과적인 행복은 결국 외부와의 비교에 의해 이루어지고, 누군가는 늘 패자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우리가 결과적인 행복에 매달린다면(행복의 행자가 수갑, 구속을 뜻한다고 했지요?),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늘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부족하다고 하는 '아난다마이드'라는 물질도 평안함과 즐거움을 높이는 물질이지, 성취에서 오는 행복과 관련된 '도파민' 같은 물질이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이상적으로 삼았던 행복은 조선시대 철학자 '최한기'선생이 정자에 쓴 양한정기라는 현판문학에 잘 나타납니다. 양한은 한가로움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三光之斡運至健(삼광지알운지건), 其動也閒(기동야한), 四山之變態無窮(사산지변태무궁), 其容也閒(기용야한): 三光(해, 달, 별)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모습이 지극히 건강하다. 그 움직이는 모습이 한가롭다. 4방으로 보이는 산의 변하는 모습이 무궁무진하나, 그 모습은 한가롭기만 하다.
以其積漸有序(이기적점유서), 動靜得宜(동정득의), 不勞力不費心(불노력불비심), 是謂閒也(시위한야): 그것으로 점점 축적되어 나가는 데에 질서가 있고, 동하고 정하는 모습이 마땅함을 얻어서, 그것이 억지로 힘을 쓰거나, 마음을 소비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한가로움이다.
한국인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이란 한자는 결과를 중시하는 단어입니다. 예기치 않게 내가 노력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가 있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가 행복입니다. 반면, 안락이란 말은 뭔가 부정적인 어감입니다. 노력도 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는 그런 느낌을 줍니다. 현대에 우리는 모두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전통적으로 선비, 군자의 이상은 행복보다는 안락에 가깝습니다.
이제는 한국이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도 갖추었으니, 이제라도 결과적인 행복보다는, ‘안’과 ‘락’을 즐기는 삶의 풍토가 사회 전반에 자리잡기를 소망합니다.
주) 언론사 마다 인용을 하는데도 도무지 출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실제 남아시아인들이 백인들보다 높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Kantae, V., Nahon, K.J., Straat, M.E. et al. Endocannabinoid tone is higher in healthy lean South Asian than white Caucasian men. Sci Rep 7, 7558 (2017). https://doi.org/10.1038/s41598-017-07980-5) 그리고, 아난다마이드에 관한 연구도 대부분 오래된 연구인 것을 보면 최근들어 대두된 주제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