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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약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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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사엄마 Jul 27. 2017

이미 저 멀리 떠나버린 약의 행방

시장성을 이유로 사라져버린 항암제,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볼을 스치는 날이었다. 그 날 따라 회사에 가는길은 힘이 들었다. 눈이 오지 않을 것을 위안 삼으며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메일을 여는 순간!!! 이게 뭔가 싶었다. 

“비아이시엔유 품절”


BCNU 혹은 BiCNU라고불리는 항암제가 품절이라는 메일이 와 있었다. 무언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비아이시엔유는 carmustine 성분의 항암제로 뇌종양과 호지킨병, 비호지킨병 등에 쓰는 항암제다. 가을부터 이 제품의 수급이 잘 안되어서, 물류팀과 해외팀에 빠르게 수입 협조를 요청했다. 그런데품절이라는 메일이 오다니…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비아이시엔유를 처방하는 전국의 주요 병원에서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사실암 환자들은 약제 하나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서 약 하나가 품절되어도 안 된다. 마냥기다릴 수 없다. 그런데 이 품절의 의미는 단순한 품절이 아닌 장기 품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비아이시엔유는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는 약제였다. 전량 완제 수입을했는데, 제품을 생산하던 미국 공장이 폐쇄되어 멕시코 등의 제 3국에서생산하기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문제는 해당 공장을 새로 짓고,생산하여 미국에서 관련 validation (의약품 품질에 대한 인증 절차)를 마쳐야 국내 수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완제 수입을 하는 회사입장에서는 답이 없었다. 별 수 없이 각 병원에 장기 품절 안내장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나의 신상에도 변화가 있었고, 비아이시엔유 품절 사건은 아예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뇌종양에 사용하던 BiCNU, 이제 국내에서 보기 힘들다...

13년이 지난 후 다시 마주하게 된 비아이시엔유의 기억


그리고 13년이 지났다. 비아이시엔유는품절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다시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한 심포지움에서 다시 비아이시엔유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온 이야기는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 carmustine 사용이힘들기 때문에, 대안 약제들을 써야 합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carmustine처럼 저렴한 약제가 사라지면서 환자들의 부담이 너무 올라간 건을 유감입니다. 심지어 건강보험마저 대안으로 나온 약제를 급여로 인정하지 않고 있죠.” 


비아이시엔유가 사용하기 어렵다고?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관련한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현재 비아이시엔유는유통 및 수입 중단으로 되어 있었다. 성인 남성의 경우 1회 3-4 바이알을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비아이시엔유 가격은 10만원에서14만원 수준이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실제 부담금액은 훨씬낮아지는 것인데, 대체약이 들어가면 1회 투여 시 500-600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올라간다. 


어차피 비아이시엔유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해 봤자 그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이고, 제약회사입장에서는 각종 관리비용을 들여가면서 약 허가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제약회사의주판알에 비아이시엔유는 더 이상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약이 되어 버렸다. 그 때 그 약을 놓지 않고그 회사에 다니면서 뛰어다녔다면, 그 약이 유통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다국적 제약회사는 생산해봤자돈이 되지 않은 1병에 3-4만원 수준의 약보다, 1병에 30만원 이상 하는 항암제,그리고 한 알에 수 만원씩 하는 표적항암제를 유통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렇게 장기 품절로 한 동안 업무 마비를 불러왔던 비아이시엔유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그것도 영원히. 그리고 그 날아간 약과 함께 같이 좌절했을 환자들은또 얼마나 될까? 


어쩌면 수 많은 항암 화학요법제 중 사용량이 적으면서도 값싼 항암제들은 하나 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항암치료비가 올라가는 건, 신약이 개발되는 까닭도 있지만 저렴한 항암제가 시장성을 이유로 사라지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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