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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약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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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사엄마 Apr 08. 2017

내가 과연 이 약을 쓸 수 있을까?

고가의 항암제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 

이렇게 비싼 약, 내가 그 병에 걸린다면 쓸 수 있을까? 

                                                                                      

어쩌다보니 항암제 관련한 일들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메게이스, 탁솔, 카디옥산, 엘록사틴 등 이제는 거의 고전이 되어버린 항암제부터 시작하여, 현재는 각종 표적항암치료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항암제들을 접하고 그에 대한 여러 프로젝트들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항암제 관련하여 일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답답합니다. 그건 다름 아닌 항암제 가격입니다. 새로 나오는 신약들을 주로 접하다보니, 약 가격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제가 접하는 대부분의 약들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들 약이 건강보험 적용이 되거나 환자 지원 프로그램이 되는지 여부를 먼저 살펴보고, 물어보게 됩니다.          

                                         



"부인에게 차 한대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치료해 주세요"


                                                                                

언젠가 한 외과 선생님이 유방암으로 수술한 환자 남편에게 한 마디 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수술 후 항암을 해야 하는데요.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게, 차 한대 뽑아준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2010년이나 2011년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3주에 한번해야 하는 항암 치료에 들어가는 핵심 약의 가격이 1회에 120-140만원 정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외에 진료비와 입원비, 그리고 각종 검사비들은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고요. 1년간 2천만원은 훌쩍 넘는 치료비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의사 선생님은 "차 한 대 값"을 언급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한달 약값만 1000-1500만원 하는 약들도 나와 있습니다. 물론 건강보험 적용도 요원합니다. 환자 지원 프로그램이 있기는 합니다만,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지원을 받는다고 하여도, 일부에 그칠 뿐입니다. 점점 환자들은 지쳐갑니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들. 이들의 약가는 건강보험 지원이 없으면 한달에 수백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한 달 치료 약값만 천만원 시대, 나는 치료를 할 수 있을까?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한달에 천만원씩 하는 암 치료제 가격은 나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한달에 천만원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한 달에 천만원씩 꼬박꼬박 약을 쓰면 정말 치료가 되기는 한 것일까요? 


사실 지금 이렇게 일하는 지금도 한달 천만원 버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달 천만원을 버는 것도 아니고, 정말 죽을 것 같이 달려야 한달 천만원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세금 떼고 뭐하고 하면 남는 건 그보다도 훨씬 적어지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한달 천만원 하는 약을 써야 한다면, 상당히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아... 그보다 그렇게 한달에 천만원씩 써서 1년 치료를 했을 때, 암이 완치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집니다. 나에게 1억2천만원을 투자하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그 1년 치료 기간이 지난 후, 질환이 다시 진행되어 버린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1억 2천만원을 쓰는 것일까요? 다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고가의 항암제로 유명한 폐암표적항암치료제들. 이들은 한달 약값이 천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최근에는 비싼 항암제를 조합하여 한번에 2-3종을 투여하는 임상시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때도 가장 큰 문제는 약가입니다. 많이 투여되는 표적항암제들와 면역항암제들을 병용 투여하면 1달 약가가 1천만원이 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그 효과는 하나만 쓸 때보다 좋은 편입니다만, 치료비를 생각하면 선뜻 치료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전 세계적으로도 비싼 항암제 가격으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이에 대한 통제, 혹은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건강보험 재정 문제로 이들의 급여화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개발된 약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요? 정작 약제가 필요한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턱을 넘기 어려운 현실에서 약에 대해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본 글은 네이버 블로그 <힐링컴즈>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http://healingcomz.com/22097528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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