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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약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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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사엄마 Mar 24. 2017

진통제+스테로이드 범벅 약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진통제와 스테로이드가 정신없이 섞인 약, 누군가에게 절실할 수 있다...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명 "만병통치약"이라 하면서 보여주는 약을 보게 됩니다. 그 약만 먹으면 기운이 나고, 아픈 게 싹 사라진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디서든 구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아끼고 아끼던 약 한 봉지를 꺼내서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그 약이 어떤 것인지 일일이 찾아서 본 적이 있습니다. 


  1. 이부프로펜 400mg 

  2. 디클로페낙 50mg 혹은 디클로페낙 25mg 2정

  3. 시메티딘 200mg 혹은 파모티딘 10mg 

  4. 제산제 1-2정

  5. 스테로이드 (프레드니솔론, 트리암시놀론, 덱사메타손 중 1-2가지)

  6. 클로르페네신 250mg

  7. 삐콤정(삐콤씨가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만병통치약"은 진통제와 스테로이드, 그리고 근육이완제가 주 처방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약을 먹으면 웬만한 분들의 통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속이 쓰릴 수 있다는 생각에 제산제와 H2-blocker로 불리는 시메티딘이나 파모티딘 같은 약도 함께 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위에 열거된 약들은 약 가격이 무척이나 저렴합니다. 1알에 몇 십원 수준의 약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만큼 효과가 떨어지는 약도 아닙니다.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되어 왔으며, 제네릭 제품(일명 복제 의약품)이 많이 나와 있어서 저렴할 뿐입니다. 어찌 되었든 저 약들은 죄가 없습니다. 저 약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만병통치약을 처방받으러 구걸하러 다니던 부부의 사연 


나이 8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매일 같이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70대 후반의 할머니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어느 누구라도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살다가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일명 "만병통치약"을 구하고 싶다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이 약을 처방해 달라고 구걸하다시피 했던 40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무슨 이유로 이 약을 처방받으러 다녔을까요? 


그 부부에게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모가 계셨습니다. 암에 걸렸다가 치료를 하셨고,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지만 전처럼 건강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80대 후반의 노모는 아프지 않은 게 소원이라 하셨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의 친구분이 한번 먹어보라면서 주고 간 이 "만병통치약"을 먹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약을 먹었던 날, 노모는 그렇게 아프던 것들이 순간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날은 전에 없이 활기찼고, 행복해 보였답니다. 그래서 아들 내외는 그렇게 행복한 어머니를 위해 그 "만병통치약" 처방을 받으려고 온 동네방네를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거의 모든 병원에서 이 처방대로 약을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지만, 그 사연을 들은 한 의사 선생님이 딱하다고 하시면서 비슷하게 약을 처방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노모가 돌아가시기까지 몇 개월 동안 그 약을 하루 1 봉지씩 먹으면서 매일매일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시는 날, 편안한 모습으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처방전이란 무엇일까? 


사실 일반적인 통증을 위해 스테로이드와 진통제를 몇 개씩 섞어서 하는 처방은 웬만해서 잘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1차 진료를 하는 의사는 이에 대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암 환자나 난치병 환자의 경우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일반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처방전이라 하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약은 약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약으로 인해 잃을 수 있는 가치를 상회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스테로이드 범벅의 약이라도, 진통제가 2개 아니라 3-4종류가 짬뽕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먹고 힘을 내서 남은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처방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정적인 상황에서의 이야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약을 처방할 때 나이를 비롯한 환자의 상태, 마음가짐,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면 많은 이들이 비난하는 "만병통치약"은 또 다른 천국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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