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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Aug 31. 2020

바이든과 오바마

전설이 된 두 남자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정치 로맨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세계 어느 나라나 관심을 받는 핫뉴스이다. 4년 전 트럼프가 거의 모든 예상을 깨고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세계 각국은 공황에 빠졌다. 외교가는 트럼프가 누군인지 알려고 하는 움직임부터 트럼프와 어떻게든 연결점을 찾으려고 분주했다. 특히 일본 수상 아베가 제일 빨리 트럼프 대통령을 찾아가 골프를 치며 친분을 과시하는 사진을 전 세계에 송출하였다. 4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꽤 낮다. 트럼프의 막무내가식 발언과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모습에 실망한 미국민들이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고 민주당을 지지한다. 4년 전에 비해 민주당 집권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압도적이다. 민주당 대선주자로 오바마 정부 시절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선출되었다. 바이든은 30여 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부통령으로 8년을 재직한 미정가 최고 정객 중 한 명이다.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바이든은 트럼프가 바꾸어 놓은 세상을 다시 오바마가 구축해 놓았던 세상으로 ‘얼마나’ 되돌릴까?  세계는 이 ‘얼마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과 오바마> 표지, 원제 : Barack and Joe


 저자는 교양 넘치고 인간적인 오바마와 바이든을 그리워하며 이들이 걸었던 길을 조명한다. 정치인들은 고도의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세상에 보여준, 또는 노출시킨 이미지들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적어도 바이든과 오바마는 둘의 이미지에는 그 이상이 있다고 판단한다. 브로맨스를 이야기할 정도로 오바마는 바이든에게 권력을 나눠주고 토론을 하며 바이든을 의지하고 존중했다고 평했다. 냉정하고 과묵함이 천성인 오바마는 격의 없고 더없이 가정적인 바이든을 사랑했단다. 2017년 바이든과 오바마는 헤어져 각자 정치적 갈 길을 갔다. 오바마는 2020년 민주당 대통령 주자 선출 과정 중 바이든을 위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자신의 치세 기간 동안 이루어 놓은 유산을 지키는데 가장 적격인 인물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 당선되기를 바란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오바마와 바이든의 우정에 열광했던 보통 미국민들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 아쉬움을 잠시 접어놓고 두 사람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따라가 보자.    


 오바마는 임기 6년인 상원의원의 첫 임기를 채우지 않고 대통령 경선에 나섰다. 오바마는 미 전국으로 이름을 날린 2004년 7월 27일, 민주당 보스턴 전당대회 기조연설로부터 4개월 뒤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미국 스타 정치인이 된 오바마는 계속 대선 출마에 대한 의사 표명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2007년 출사표를 던졌다. 이때 오바마는 바이든과 경쟁 관계였다. 하지만 바이든이 경선에서 말실수로 일찌감치 사퇴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오바마는 여러 정치인 중 부통령 후보를 고르다 바이든을 지명했다. 마침내 힐러리를 누르고 대권주자가 된 오바마는 존 매케인과 경쟁을 벌여 대통령이 되었다.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오바마 부부와 바이든 가족 (2012년)

 상원의원이 된 오바마가 바이든으로부터 받은 첫인상은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이 수다스러움이 바이든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적되었지만 적어도 오바마에게 있어 이 수다스러움은 지겨움이었던 모양이다. 오바마가 이 지겨움을 극복하고 바이든을 부통령으로 지명한 배경에는 당연히 오바마의 정치적 고려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 정서로는 정치 신인이 국회의장 급 정치인을 부하로 두고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모양새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권력 앞에서 가능하지 않는 건 없었다. 바이든도 부통령 지명을 수락할 때는 보통의 각오는 아니었을 거다. 미국에서 부통령은 상원의장으로서 명예는 가지고 있으나 정치적 실권은 거의 없다. 차라리 부통령보다 국무부 장관이 더 좋다라는 정치적인 판단도 가능하다. 미국 대통령은 그 권력이 절대적이다. 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일 뿐이다. 그러니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장관급 인사를 해임하는 게 가능했다. 바이든은 오바마에게 부통령 지명을 받아들이면서 백악관의 회의에 참석을 보장하고 토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 2000년 투표용지 논란 끝에 부시 대통령에게 석패했던 고어 부통령도 클린턴 대통령과 썩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권력의 변두리에 있으면서 단지 지구온난화에 집중했던 전례가 있다. 권력을 나눈다는 건 동양권에서도 거의 불가능한 일로 치부되었다. 예로부터 부자간에도 권력은 나누지 않았다. 상황(上皇)이나 상왕(上王)으로 물러나 있어도 실권을 쥐고 흔들었던 역사는 얼마든지 있다. 살아있는 권력이 자신의 일부를 떼어낸다는 건 정말 권력 특성상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여하간 오바마와 바이든은 합의를 끝냈다. 바이든은 부통령을 수락했으며 결과적으로 오바마는 그 약속을 성실히 지켰다. 

오사마 빈 라덴의 상황을 주시하는 오바마와 바이든 (2011년)

     

단순한 얼굴 마담이었던 부통령이 실제 권력을 가지게 되어 미국을 대통령과 같이 나누어 통치했다. 그 과정이 지극히 아름다워 오바마와 바이든의 사랑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마음속 깊숙한 울림은 전해주지 않지만 그 진의는 충분히 전달된다. 오바마와 바이든은 매케인과 페일린의 결합을 이겨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오바마는 바이든의 반복된 말실수를 만회해야 했다. 이성적인 오바마와 정감 넘치는 바이든의 결합은 구설수를 이겨내고 승리를 쟁취했다. 1기 오바마 정부는 시작부터 힘들었다. 모기지론과 결합된 파생상품으로 비롯된 경제위기는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 여겼던 미국의 자존심인 금융기관들을 부도나게 만들고 월가의 도덕적 해이를 거칠게 항의하는 시위대를 양산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 위기를 먼저 극복해내야 했다. 세상의 일이 그렇듯 위기는 늘 계속된다. 경제위기가 끝나기 전에 신종플루의 공습이 이어졌다. 지금의 코로나19에 비하면 약하지만 신종플루의 공포도 세계를 강타했다. 이때도 부통령 바이든은 익숙한 구설수에 올랐지만 두 사람은 잘 이겨냈다.      

부통령의 역할에 대한 논란은 있었지만 체니 부통령만큼은 아니었다. 체니 부통령은 부시 정부의 내각을 좌지우지하며 보이지 않게 권력을 휘둘렀다. 체니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부시 가족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아들 부시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라기보다 서로를 이용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미국의 반대 세력에 호전적이고 강경한 세력들을 이끌며 광범위하고 독단적인 권한을 가져 누가 대통령인지 모르겠다는 언론의 조롱을 받았다. 권한을 부여한 아들 부시 대통령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경우도 있어 보였다. 체니의 그림자 정부는 오바마와 바이든에게 부통령의 권한 설정과 그 권한의 성실한 이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역대 가장 힘있는 부통령’으로 꼽히는 딕 체니 부통령(왼쪽)과 조지 부시 대통령 (출처:경향신문)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정치 행위를 대신 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유색 인종이기에 오히려 유색 인종,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히기 어려웠다. 오바마 대통령은 피부색이 그간의 대통령과 달라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인권 신장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의미하지만 2020년 5월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 보여주듯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오바마가 유색 인종과 성소수자에 관한 정치적 발언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정치 영향력이 커질수록, 거의 없었다. 대통령이 되어 발언을 피해온 게 현실이었다. 소수자에 대한 소신 발언을 할수록 주류 세력으로부터 지지를 잃을 가능성이 커지기에 피했다는 게 정확하다. 바이든은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의 가려운 곳을 긁어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어였고 오바마가 바이든에 대해 애정을 가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두 사람은 ‘흑인과 백인은 영원히 구분되어야 하며 영원히 지배, 피지배 계급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악한 신앙과 맞서 싸웠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전히 백인이 상사이고 흑인이 부하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를 명확하게 뒤집어 버렸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장군과 조 바이든 부통령은 부시 행정부가 개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설전을 벌였다. 오바마 정부의 최종 입장은 명확했다. 미국을 제2의 베트남 전쟁의 수렁 속으로 끌고 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미군을 철군시켜야 하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미군을 추가로 증파해 전황을 안정 상황으로 만들어야 하느냐의 현실인식과 전쟁 유지에 대한 정치 부담을 계속 가져야 하느냐가 둘 사이의 쟁점이었다. 두 사람의 발언과 오바마 정부의 장관들의 비의도적 발언이 오바마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책임자의 발언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정치 행위에 있어서 추상적이지만 단 한 단어로도 논란이 만들어지는지 보여주었다. 뉴스거리를 만들어내려는 언론의 집요함이 상상을 초월하며, 어떻게든, 뭔가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지점에서 바이든의 진의가 왜곡되었다 여기고 너그럽게 넘어갔다. 

 2012년이 되면서 오바마 정부는 재선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바이든이 방송에 출연해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외교정책에서 이라크 병력 감축을 내세워야 했다. 바이든은 곤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오바마가 부통령을 교체할 가능성이 그 질문이었다. 백악관 언론담당 보좌관은 이를 부인하고 힐러리 클린턴으로 부통령을 교체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백악관은 바이든을 고집스럽게 고수했으나 오바마가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바이든 부통령이 교체당하지 않았으나 대통령의 신뢰를 의심할 이유가 만들어졌다. 직장 생활 중 직장 상사가 부하의 직위나 직책을 확실히 하지 않고 불확실한 자세를 취하면 당사자인 부하는 전전긍긍하면서 심적 상처를 받게 되는 모습을 흔히 목격한다. 그 상처는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하물며 미국 부통령이야 오죽하겠는가? 그 부통령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진로가 달려있으니 두말할 나위 없다. 오바마와 바이든이 정치적 동료애를 가지고 충분한 신뢰관계를 가졌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냉정해질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가혹한 결정도 감당해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불편한 상황에도 오바마는 바이든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바이든과의 신뢰관계를 유지했다.      

바이든은 1972년 자동차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상원의원으로서 성실하게 일해왔던 바이든은 또다시 2015년 아들 보를 잃게 되었다. 최고위층 정치인이 자식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오바마는 바이든에게 보의 치료 시기에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 말했으며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이 부통령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조사를 낭독하며 바이든 가족에 애도를 표했다. 

아들 故 보 바이든과 아버지 조 바이든 (출처:세계일보)
바이든을 위로하는 오바마

가족의 가치가 매우 중요한 미국에서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언론들도 이 장면을 기록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전직 교육부 장관 얀 던컨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아니라 그냥 두 남자였다’라고 감동을 표현하기도 했다.      

2017년 1월 12일 백악관 국무식당에 깜짝 파티를 위해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 1주일을 앞두고 바이든 부통령에 대통령 자유 훈장을 추서 하기 위해 직접 기획한 파티였다. 바이든에게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통령이라는 화려한 수사가 추서 이유에 덧붙여졌다. 이 깜짝 파티는 언론에 훈훈한 마무리, 대통령과 부통령의 아름다운 우정으로 보도되었다. 영화였다면 이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해피 엔딩이었을 거다. 하지만 현실은 엔딩 스토리가 아니었다. 1주일 후 백악관의 주인은 바뀌고 트럼프는 오바마의 유산을 지우기 위해 열심이었다. 오바마는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권주자로 나서기를 바랐고 바이든을 설득해 대선 경선을 포기하도록 했다. 

집무실에서 바이든과 오바마 (바이든이 2016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문서를 같이 보고 있다)

바이든이 아들의 죽음을 추스르지 못한 상황도 있지만 힐러리가 후임 대통령으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훈장 수여도 대선 경선 포기 대가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오바마 입장으로서는 자신이 남긴 유산이 뿌리 뽑혀 나가기를 바라지 않은 건 인지상정 이해된다. 그러나 바이든이 2020년 대선 경선에 나섰을 때 오바마는 시큰둥한 논평을 냈다. 정치인의 사정은 더 이상 고려하지 않기로 하자. 오바마와 바이든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건 사실이다. 그러니 이 아름다운 모습을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다만 2020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시간이 더 흐르면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서평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본사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필자 : Nebula20


* <바이든과 오바마> 북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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