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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Sep 07. 2020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브렉시트와 EU 권력의 재편성

 영국은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다. 그 후, 2016년 6월 갑자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국발 뉴스가 있었다. 당시 영국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캐머런 총리는 EU 잔류를 주도했지만 근소한 차이, 52% 대 48%로 탈퇴 캠페인을 이끈 보리스 존슨에 패했다. 전 세계는 경악했다. 세계 많은 언론들은 영국인들이 왜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는지 조명하였으며 영국의 EU 탈퇴 실행 - 브렉시트가 언제 실행될지 예측했다. 영국의 후임 총리들은 브렉시트를 실행시키려고 노력했다. 캐머런 총리 후임 테레사 메이 총리는 자신의 EU 탈퇴 협약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했고, 존슨 총리 역시 자신의 안을 통과시키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작년 12월 존슨 총리는 조기 총선을 실시하고 ‘브렉시트를 성사시키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기존보다 80석 이상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결국 2020년, 올해 2월 1일,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떠들썩하는 동안 영국은 유럽연합(EU)을 공식 탈퇴했다. EU 초석인 유럽경제공동체(ECC)에 합류한 지 47년 만이자,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결정한 지 4년여 만의 일이었다. 저자는 영국의 독일대사로 6년간 일하고 오랫동안 외교관으로서 독일 정치인들과 교분을 나누며 독일의 EU 내에서의 역할을 지켜보았다. 저자는 독일의 사회와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를 EU 조직과 작동원리에 적용시켰다. EU에서 큰 지분을 가진 독일을 살펴보면 EU가 어떻게 움직이고 나아갈지를 전망하는 게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독일에 대하여 가진 일반적인 생각과 실제 독일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저자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독일에 대한 막연한 상식과 실상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고 영국의 움직임을 이해하게 된다.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표지


 EU가 등장하고 초기 40여 년 동안 프랑스와 독일의 경제 규모는 비슷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EU 내의 위상은 비슷했으나 1990년 독일의 재통일이 상황을 바꾸었다. 독일은 2천만 명의 국민이 늘었고 국경은 ⅓ 정도 확장되었다. 독일 정부는 자국의 이해와 양립할 수 있는 정도로만 프랑스의 견해와 계획에 존중을 보였다. 반면 프랑스는 독일 정부가 반대하는 EU 정책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영국인들이 EU의 회원 자격을 두고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선택한 건 EU 내에서 영국이 배제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영국은 그 이전에 유럽의회에서 영향력도 전혀 없었고, 유럽의회가 권력을 잡는 것을 반대하도록 이사회의 동료 회원국들을 설득할 능력이 없었다. 독일이 EU 내에서 가진 힘은 독일이 먼저 나서서 얻은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독일을 따르기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스스로 경제적, 정치적 재앙을 이겨냈고, 일본과 극명히 비교되는, 어떤 나라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국의 과거를 인정하려고 애써왔기 때문이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규칙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지금의 지배 방식을 선택했다. 독일은 어떤 계획이나 목표를 가지지 않고 EU를 지배했다. 

    

브렉시트 이미지 (출처:한겨레)

독일의 힘은 두말할 필요 없이 경제다. 독일의 경제 규모는 프랑스나 영국보다 약 25% 정도 크고 유럽에서 가장 크다. 하지만 단일 경제로서 다른 나라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독일 경제의 네 가지 특성이 독일 경제를 특별하게 만든다. 첫째, 독일 경제는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소위 챔피언 기업이 많다. 둘째, 독일 경제는 수출에서 뚜렷한 성과를 가지고 있다. 셋째, 독일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크고, 재정 적자와 정부 채무 수준이 낮은 건전한 국가 재정 상태를 가지고 있다. 넷째, 사회 연대와 안보 수준이 높다. 독일은 석탄 외에 천연자원이 거의 없어 노동인구에 대한 교육과 기술에 의존해 산업을 발전시켰으며 대규모 제조업체와 중소기업의 협력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 전통이 강한 독일을 만들었다. 하지만 독일 경제가 유럽 다른 나라들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있지 않음에도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독일의 많은 동맹국들이 자국의 경제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했다. 즉, 독일이 경제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지만 인근 국가들의 경제 성적이 신통치 않아 그 성공이 더욱 뛰어나 보였다.      

독일 정치에 대한 일반적 인식 중 하나는 독일 국민들이 단일 대오를 이루고 국가 질서를 아주 잘 지킨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단일 대오를 이루고 있다는 인식은 잘못되었다. 독일 헌법과 독일 정치가 연방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독일 국민은 독일어를 사용하고 연대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단일 국가라는 생각을 옅게 가지고 있다. 1871년 이전 독일인이라는 의미는 정치적 정체성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을 의미했다. 1871년 철혈의 재상 비스마르크의 노력으로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수많은 왕국, 공국, 한자동맹 도시가 하나로 합쳐졌다. 1934년까지 여권에 표기된 국적은 프로이센, 바이에른, 작센 등이었다. 독일인들이 분리주의적 경향이 있거나 다른 정치 질서를 원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예전 지역 출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독일인들은 독일이라는 국가로 통일을 기적으로 여기며 다양한 정치적 배경에 적응하는 일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 이 성향이 유럽 연합에도 적용되어 독일인이면서 유럽인이라는 느낌을 좀 더 쉽게 가진다. 건강, 교육, 문화, 치안 유지와 같은 부분은 지방 정부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논란이 많은 특정 정치 사안의 경우 연방 상원의 찬성 결정을 얻는 건 무척 어려우며 이 지점에서 총리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헬무트 콜 전 총리에 이어 가장 오랫동안 독일 총리로 일하고 있는 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신교도이고 이혼 경력이 있는 동독 출신 물리학자로 이전 정당 대표들과 이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메르켈 총리는 각 연방 간 정치적 조율을 잘하여 살아남았다. 독일의 정계는 무척 복잡하며 이를 잘 조율해야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프랑스의 르펜이나 이탈리아의 베페 그릴로와 같은 극우주의 색채를 가진 정치인은 살아남기 힘들다. 이런 독일 정치적 전통에 친숙한 사람이면 관리 방식 측면에서 유럽연합 내 유럽의회의 관리 방식에 쉽게 적응한다. 독일인들에게 EU의 운영은 자국 정치의 자연스러운 연장으로 받아들여지며 이 때문에 EU 내 여러 기관에서 독일인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독일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現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여전히 독일 하면 나치가 떠오른다. 이는 우리뿐 만은 아닌 모양이다. 유럽에서도 독일에 대한 경계의 시선이 존재하고 있으며 독일인들도 그 점을 인식하고 살아간다. 1945년 독일에서는, 서독이건 동독이건 어느 쪽도 과거의 연속성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치 시대에 일어난 일의 진실을 인정하는 것은 연방 공화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꼭 필요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나치의 이념인 국가사회주의와 그 유산을 청산하면서 그 외의 다른 과거들도 지웠다고 평가한다. 학교에서는 역사를 가르치고 박물관에서는 나치가 자행했던 홀로코스트와 같은 사건을 잘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이런 것들을 현재와 동일시하는 교육을 받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과거는 다른 나라의 일이다. 독일의 국적은 출생지주의가 아니라 혈통주의이다. 1871년이 되어서야 국경 개념이 형성된 독일인들에게 민족 정체성은 지역적 소속감과 인종적, 문화적 공동 유산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 이 영향은 1960년대 말 현재 인구의 5%를 차지하는 터키인들이 대량으로 이주한 후 생겨난 현상에 그대로 드러난다. 터키인들은 독일 사회에 융합하지 않고 터키인들이 배타적인 거주 지역을 현상하고 대부분 터키 국적을 유지한다.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는 독일에서 많은 터키인들은 혈통주의의 독일 문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터키 국적을 유지한다. 독일인들은 거주지나 국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타고난 혈통이 중요하다. 그러니 독일이 아니라 EU로 국적이 바뀌어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변화에 대해 수용적이다.      

 과거 프랑스와 독일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묘사된 사회적 배경은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이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 중에도 프랑스와 독일은 인접국으로서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1963년 드골 대통령과 아데나워 총리가 조인한 엘리제 조약 이후 공동 시장의 틀 안에서 양국이 협력해 왔다. 이즈음부터 수십 년 동안 거의 모든 프랑스와 독일 공무원들은 서로와 격이 비슷한 상대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것이 당연했으며 일상적으로 서로 통화하고 이메일을 교환했다. 양국의 공무원은 미리, 가능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서로의 이해관계와 양립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다. 군사 작전은 NATO 체제 안에서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했다. EU의 경제 정책은 독일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를 프랑스도 잘 알고 있다. 2012년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하고 프랑스의 악화된 경제 상황이 두 나라의 관계를 뒤틀기 시작했고 후임 올랑드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와 마음이 더 맞지 않았다. 올랑드 대통령은 성장 촉진 수단으로 재정 정책을 선호했으나 메르켈 총리는 노동시장 개혁을 선택해서 단호하게 올랑드 대통령과 선을 그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총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압박했지만 독일을 움직이지 못했다. 독일이 유로채나 부채 공동화 수단 도입을 거부하면 방법이 없었다. 결국 올랑드 대통령은 독일의 결정을 따르는 선택지 외에는 없었다. 영국은 EU 탈퇴 국민투표 시점에 이미 EU에서 반쯤 떨어져 나왔다. 영국은 유로존에 합류하지 않을 예정이었고 사법 및 내무에 관련된 많은 EU 정책을 기피 상태로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영국은 난민을 분배하는 EU 계획에 참여할 의향이 없었고 방위 정책을 EU에 위임하는데 반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영국이 EU에 잔존하면 좋지만 굳이 탈퇴를 막기 위해 양보할 의향도 없어 올해 2월을 맞이했다.  

<  前 프랑스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

   

 독일은 EU와 유로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거두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EU의 정치 구조와 우선순위를 독일의 정치 구조와 우선순위로 순치시켰다. 독일은 EU를 통해 혈통주의 기반 민족주의 국가임을 가리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동서독 통일 후 수면 밑바닥에서 조용히 부상한 독일이 전적으로 EU를 지지하는 건 당연하다. 저자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지적한다. ‘EU는 거의 독일의 국교다. EU를 비판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EU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예민함이 대중 토론이라는 일반적인 습관보다 우위에 서 있는 것 같다’  독일 정치인들은 유럽 통합 강화에 대해 공언하지만 유럽 통합 강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독일 정치인들은 유럽 경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청사진은 명확하다. EU는 가능한 한 독일과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래에도 독일 정부는 독일의 국익을 위해 청사진을 바꾸지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2015년 리비아에서 이민자들이 범람하자 유럽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당장 해안에서 이민자들을 단속해야 하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이민자들을 자국에 수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독일이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자 난민들은 시리아 인척 하며 독일로, 독일로 향했다. 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한 독일은 2020년 현재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으며 자국 내에서 많은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이민자 문제는 현재 진행 상황이며 독일이 차후 이 문제를 국내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EU 전체로 확대시켜 해결하려고 함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독일이 EU에 가진 경제력 수준만큼의 패권을 외교나 방위 분야에 행사할 의향은 없는 걸로 보여 왔다. 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경험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하지만 독일이 UN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NATO의 회원국이고 헌신적으로 유럽 영토 직접 방위에 기여해왔다. 그럼에도 독일은 방위 정책에서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독일의 군사력 확장에 반대하던 영국이 EU에서 탈퇴를 계기로 독일이  EU 방위 정책에 영향을 행사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독일의 부상과 영향력 증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독일이 순수하게 자국의 힘을 외부에 행사하기보다는 EU의 틀을 가지고, 그 외연을 더욱 확장하여 독일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초점을 맞출 거라 전망한다. 하지만 저자의 전망이 그대로 실현된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저자의 폭넓고 논리 정연한 분석은, 충분히 숙고할 가치가 있다.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서평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본사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필자 : Nebula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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