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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Sep 29. 2020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이 사람이이때, 이렇게 행동한 이유가 뭐예요?”     

 필자는 여러 해를 강사로 일하면서 이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아왔다.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면 필자는 학생들의 고득점을 위하여 표본에 가까운 답변을 해주면서도 항상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행위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즉, 그 사람이 그 시간, 그 시대에 그러한 행동을 한 것에는 분명 중요한 원인이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충분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것에는 그 원인까지 이해하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현행 교육과정의 암면도 있고, 필자 스스로도 역사 속 인물들의 사상과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부족함 때문도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지식인들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학문은 철학이라는 인간 고유의 사상 체계에서 시작하여 여러 과정을 거친 뒤에 ‘기록’이라는 형태를 통하여 역사로 분류된다. 우리가 근처에서 흔히 방문할 수 있는 도서관에 가보면 000번대의 도서들이 철학으로 분류되어 있고, 900번대가 역사학으로 분류되어있는 까닭이 이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사상은 역사학과 떨어뜨릴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표지

 수 천 년, 수 백 년 전의 인물의 생각과 의도를 추적하는 것은 그 인물의 개인 문집이 남아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가령 개인 문집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언어와 시대상을 면밀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해석에 차이가 분명히 발생하며, 그 진의를 파악하는 것에도 상당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가까운 100년을 살다 간 인물들의 기록을 그 시대와 연결하여 살펴보는 작업은 비교적으로 접근성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역사 인물들을 서면을 통하여 만날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학자인 저자의 시각에서 철학, 종교, 문학, 역사를 아우르는 60인의 사상을 정리한 본서는 사상사적으로도 상당히 의미 깊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0년 역사에 남은 60인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본서가 다룬 60인은 크게 11개의 목차로 분류하였다. 저자는 가장 첫 목차로 한국 현대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출범(1919)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수호했던 대표적인 인물인 김구안창호가 제시하였던 민족주의와 독립사상을 다루었다. 이 장에서는 임시 정부 단계에서 독립 운동가들이 바랐던 국가상과 미래상을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민 지배 아래 살았던 지성인들의 시각과 생각 또한 경험해 볼 수 있다. 

김구와 안창호


 현대를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키워드인 민주화와 산업화에 대한 다양한 기억과 시각들도 다루고 있다.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연결되는 이 두 과제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역시 피할 수 없으며 당장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民主, democracy)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을 찾을 만큼 인류사에서 오랜 기간 함께해왔다. 그러나 이 개념이 한국의 역사에서 등장하여 정식으로 명문화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라는 개념도 역사적으로 특정한 경제구조를 정의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두 개념이 이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앞으로 어떻게 변하고 발전해나갈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물질문명의 발전 속도를 정신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정보들이 집약되어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본서의 전체적인 특징은 선정된 인물들이 특정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경향에 치우치지 않도록 다양하게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순한 소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각각의 인물들을 움직였던 생각들이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에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 지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고민이 정리되어있다.        

   

역사의 원천은 의식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경험과 사유즉 기억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적 성공의 반은 죽을지도 모를 위기에서 비롯됐다. 

역사적 실패의 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아놀드 토인비

  

 필자가 전공 수업을 들었을 때 배웠던 이 문구는 여러 의미로 필자의 인생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과거에 있었던 위기든 영광이든 결국은 그것을 어떤 형태로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는지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겪은 경험과 그에 대한 기억만큼은 주체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선정한 60인은 태어난 곳도, 살던 시대도, 살아온 인생도 모두 각양각색의 인물들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 인물들이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혹은 시대 분위기적으로든 어떠한 ‘상실’ 내지는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해 낸 방법은 60인이 각기 달랐으나,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정립해주고 나아가 우리라는 연대 의식으로 성장할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공통점이 있다.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의 저자, 김호기 연세대 교수


 현재를 사는 우리 역시 이 지성들처럼 같은 종류의, 혹은 같은 수준의 아픔을 겪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혹은 이미 충분히 겪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반영해나갈 것인지에 대하여는 개인마다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고민을 오랜 시간 간직해왔다면 본서에서 다룬 60인의 인생이 어느 정도나마 답변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기억과 경험들을 적절하고 활용하고 올바르게 전승하고자 한다면 미래의 100년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에 소개된 각계 인물들 1, 출처 : 한국일보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에 소개된 각계 인물들 2, 출처 : 부산일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     

  역사 인물의 일생을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그 인물이 살던 시대에서 어떠한 일을 해냈는가, 그것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무슨 행위이든 분명히 그 ‘동기’가 있을 것이다. 이 동기를 이해하기 위하여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것인 방법은 바로 역사 속 인물들의 일생을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는 그들의 저서 혹은 평전을 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일생과 새로운 면모를 접하고, 그들의 고민과 소통함으로써 온전히 그 인물을 이해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내외적으로 많은 격동을 겪으며 살고 있다. 혹자는 나름대로 구축해 온 방략을 바탕으로 일상을 이끌어 나갈 것이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와 이슈들에 정신적인 피로를 겪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100년 이전부터 지금까지를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본문에서 밝히고 있듯 우리 이후의 100년이라는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그 핵심을 60인의 사상을 통하여 ‘민족주의’, ‘연대’, ‘보편적인 사랑’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이 60인이 물려준 패러다임이 현재를 만들고 이끌어주고 있다면, 향후 100년을 이끌 우리만의 패러다임은 무엇일까를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도래하였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정답은 없으나 해답은 있을 수 있는 그 고민의 해결에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서평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본사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필자 : U.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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