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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Sep 29. 2020

옷장은 터질 것 같은데 입을 옷이 없어!

‘옷장 확대범’의 미스터리

“늘 옷을 사는 것 같은데 왜 항상 입을 옷이 없는 거지?” 이 문제는 세탁기를 거쳐 나온 양말의 짝이 늘 제각각인 것과 동급으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막상 약속이라도 있어서 멋지게 차려입고 싶어 옷장 문을 열면 이상하게도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망설이다 급하게 옷을 샀던 적도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사두었던 옷들, 그 당시에는 멋지다고 생각했던 옷들이 그 순간 어디론가 다 숨어버린 느낌. 이 책은 이 풀리지 않는 현대인의 미스터리에 마주한 저자의 통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옷장은 터질 것 같은데 입을 옷이 없어!> 표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트디렉터인 저자 마쓰오 다이코는 옷장은 터질 것 같은데 입을 옷이 없는 것 같은 영원한 모순의 굴레 속에서 100일 동안 옷을 사지 않는 결심을 실행하면서 그 모순의 실체에 서서히 직면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을 진정으로 돋보이게 하는 멋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옷이 아무리 많아져도 항상 입을 옷이 없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      

  문제는 ‘옷’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무지에 있었다. 자신의 취향과 멋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본 적 없이 새로운 옷이 자신을 돋보이게 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늘 옷을 사야 하는 자신만의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내고, 그 감성적 수요에 맞춰 옷을 사는 ‘행위’를 반복했던 저자는 ‘100일 동안 옷 사지 않기’ 작전을 시작하면서 때때마다 옷을 사야 할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는 법부터 배우게 된다. 진정한 내면의 수요에 따르는 것이 아닌 얄팍한 소비성 만족을 쫓던 ‘행위’에 대해서도 물론 돌아보게 되면서.      

옷 사지 않기

  ‘옷을 사는 행위’는 옷과 멋에 다가서는 본질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멋진 옷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할 때, 혹은 밝은 매장에서 잠시 그 옷을 착용한 순간, 어쩐지 나의 존재감도 새 옷의 가치만큼 올라간 기분이 든다. 그러나 새 옷이 주는 효용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물론 순간의 즐거움은 소중하지만. 결국 또 자신의 취향과 멋을 발산하지 못하고, 어쩐지 초라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소비의 감각으로 채우려 또 새 옷을 사게 되고, 또 입을 옷은 없고의 반복.      

인터넷에 있는 "옷 사고 싶을 때마다 보는 짤",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좀 덜해 질까요?

  그런데 ‘옷’과 ‘옷 소비’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을까. 어쩌면 이 책은 현대인의 일상적인 습관과 인식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찰일 수도 있다. 술술, 재미있게 읽히는, ‘옷 사는 이유에 관한 인식론’, 혹은 ‘옷장 확대범 구출을 위한 실용윤리학’.      


(잘 입을 것도 아니면서) 자꾸 옷을 사는 이유에 관한 철학적 고찰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옷을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합니다만, 바라보고 있으면 역시 갖고 싶어 집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또 어느샌가 예정에도 없던 옷을 사서, 숍의 종이가방 두세 개를 손에 든 채 들떠서 집에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그 ‘오락’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많은 쇼핑 잡지를 산 덕에 갖고 싶은 것은 계속 나타납니다. 웹사이트 같은 데에서도 무엇이 유행하는지를 알게 되면 바로 갖고 싶어 지죠. ‘뉴 아이템’이라면 어떤 것인지 입어보고 싶어 지고, ‘올해의 유행을 따라잡지 않으면 안 돼!’라며 조급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게 됩니다.” “밤이 되면 여기저기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이 정도 금액이면 실패해도 괜찮지 뭐’라며 바로 구입 버튼을 클릭해버립니다.”     

  이어 저자는 왜 그렇게 계속 옷을 샀는지 옷을 사던 자신의 사고 회로를 분석하고, 옷을 살 당시의 환상과 현실을 대비시켜 소위 ‘팩트 폭력’을 가하는데, 예컨대 ‘뒤집어 입을 수 있으면 두 배로 즐길 수 있으니까 이득!’이라 생각해서 즉흥적으로 구입한 옷은 실제로는 뒤집어 입기 귀찮아서 결국 한쪽으로만 입게 되니 “결국은 이익 본 느낌 없음.”이라고. 또한 한정이니 세일이니 하는 순간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손해다!”라고 생각하거나 “이 비싼 옷이 60퍼센트 할인이라니!”라며 살 때 큰 이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만 “세일하는 시점에서 이미 그 옷의 가치는 떨어져 있는 것”이라는 ‘팩트’를 그대로 보여준다.           


‘옷장 확대범’을 위한 실용 윤리학 _ 한동안 옷을 사지 않으면서 겪게 되는 설득력 있는 변화      

그런데 한동안 옷을 사지 않으면 어떤 변화를 누릴 수 있을까, 좋은 점이 있어야 적극 실시할 테니. 저자는 일단 옷을 사지 못하니 있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맞춰보며 ‘머리를 쓰게 된다’고 했다. 계속 궁리를 하다가 ‘옷 조합의 달인’이라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옷을 사지 못하니 있는 옷의 손질에 더욱 공을 들이게 되고, 옷에 대해 더욱 생각할 수 있으며, 손질한 옷을 더욱 애정 하게 된다고. 즉,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멋지게 입어보려고 자꾸 머리를 쓰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멋을 알아보는 능력과 센스 지수는 높아진다.      

또한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 후 저자는 ‘옷에 대한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특히 ‘쇼핑하러 가도 옷에 눈이 가지 않게’ 되고, ‘유행에 휘둘리지 않게’ 되며,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는 데다가, ‘같은 옷을 입어도 주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 저자의 또 다른 동료는 옷 사지 않기 프로젝트를 통해 100일 안에 뭔가 사고 싶은 것이 생길 경우 “갖고 싶어!”라는 기분을 몇 번이나 되새김질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의외로 바로 ‘갖고 싶어 병’이 사그라들며, 그래도 “사고 싶어!”라는 기분이 남아 있는 물건만 사게 되었다며 ‘옷 사지 않기 프로젝트’의 효과를 입증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옷을 사지 않는 돈으로 쇼핑 대신 ‘센스를 다듬는 공부’를 하게 된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다른 영역의 미를 추구할 여유도 생기고, 그러면서 “돈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남들이 멋대로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자신의 기분을 중시해서 일상의 패션과 마주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      

저자는 이 프로젝트의 효과를 맛본 후, 기간을 100일에서 무려 일 년으로 늘려 블로그에 공개하고,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켜나간다. 드디어 8개월째 결심을 지킨 저자의 고백 : “많은 정보가 들어오지 않으니, 멈춰 서서 냉정하게 자신의 취향을 분석할 수 있었다.” 저자는 사지 않음으로써 취향이 확고해졌기에, 그래서 “‘아, 이거 멋지네!’라고 생각해도 스스로 그려보는 자기 모습과 맞지 않으면 구매의욕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라고 고백한다.      

또한 의외의 수확은, 늘 외출복에만 관심이 기울어 있다가, 새삼 잠옷과 집에서 입는 옷의 가치를 새롭게 보게 된 것. 집에서도 자신을 편안히 돋보이며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짧은 인생, 비록 집에만 있더라도 무릎 나온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다는, 그렇게 처분 한도 지난 옷들은 되도록 처분하고, 언제든 외출할 정도의 일상복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있으면 ‘오늘도 예쁘네!’라는 심리적 위안을 얻게 된다는 것.      

저자는 이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름 확고한 취향을 갖게 되었기에,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아 입지 않지만 어쩐지 아까워 버리지 못했던 옷들을 버리고 ‘좋아하는 것’으로만 가득 찬 옷장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고 한다(그런데 ‘좋아하는 것’으로만 ‘가득 찬’ 옷장은 이유 있는 옷장이므로, ‘옷장 확대범’의 범주에서 제외시키자). 또한 그녀는 나이에 맞는 멋을 계속 업데이트하며 자신을 가꾸는 법, 나의 멋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도 마음을 열어야 멋 지수가 상승한다는 점도 깨닫는다. 옷 입는 데에도 열린 소통과 객관적 평가는 중요하다.           

결국, 저자나 우리들이 옷을 자주 샀던 것은 타인에게 존재감 있어 보이고 싶은 표면적인 마음만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개성과 존재감은 새로운 옷에서 표출되지 않고,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반영하여 자기에게 가장 어울리면서 자신의 진정한 취향을 더욱 돋보이도록 옷을 입는 ‘방법’과 고유한 센스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옷은 여전히 저자를, 우리를 즐겁게 하는 소중한 존재다. 다만 그 즐거움의 정체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젊을 때는 이런저런 스타일을 입어보며 실패해도 괜찮다고 한다. 경험 속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고. 결국 멋은 꼭 새로운 옷에서 나오지 않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최적의 경험치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를 쌓는 데에는 사실 많은 노력이 든다.           


이제 혹 한동안 옷을 사지 않는 것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고, 물건을 선택할 때 타협하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의 매뉴얼을 숙지하면 될 것 같다. 이 책에는 친절하게도 옷 소비 금단증상에 대비해 소품이나 속옷 등 사도 괜찮은 품목을 정하는 것으로 ‘나만의 룰을 정하고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던가, ‘목표를 달성하면 상품을 줘서 동기부여를 하는 것’ 같은 구체적인 예비책도 마련되어 있다.      

어쩐지 입을 옷도 없으면서 옷장만 빵빵한 죄에서 구출될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서평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본사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필자 : 낙지(樂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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