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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Jun 03. 2020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양심적인 일본 변호사들의 징용공을 위한 변론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징용공 피해자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는가? 아니다.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징용공 문제에 대한 가장 논리적이고, 합당한 답을 제목으로 걸어둔 책. 이 책은 표지의 빛깔만큼이나 차갑고도 뜨겁다. 사실과 감정이 뒤섞인 역사의 연장선에 서서, 우리는 과거의 문제를 끌어안고 어디쯤 와있고, 또 얼만큼, 어디로 갈 수 있는가. 단단한 실뭉치를 풀어내듯, 저자들은 뒤얽힌 주장의 타래 속에서  기망과 사실의 끝을 찾아 차분히 끌어내며 엉킨 문제의 속을 낱낱이 보여준다. 

  현재 일본 정부 및 일본 최고재판소는 과거 일본 기업에 강제 동원된 한국인 징용공 피해자 문제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각 피해자들이 법정에 소송을 제기할 권리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1965년에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모든 징용공 피해자들의 청구권도 포함되어 있었고, 협정에 의해 모든 청구권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한국인 징용공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일본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에 따라 지난 28년간 피해자들은 일본에서 진행한 모든 재판에서 패소했고, 어떠한 구제도 받지 못했다. 한국 법원도 2012년 이전까지는 일본 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에 대한 기판력 등을 이유로 피해자들의 항소를 기각하였으나, 2012년 대법원 판결에서 시작하여 2018년 10월 30일 징용공 피해자들은 일본제철을 상대로 승소하게 된다. 한국법원에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일본 기업에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본 정부는 한국이 이미 끝난 일을 다시 끄집어내 억지를 부린다며 비난했고, 이러한 비난의 연장으로 일본은 2019년 7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등  보복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격화된 한일 간 갈등 속에서 저자들은 정말 일본의 주장대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모든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인가?’ 를 상세히 물어가며, 한일 청구권 협정의 대상은 모든 개인의 청구권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특히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이 협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은, 당연히 소송가능한 권리라는 점을 밝힌다. 이 과정에서 저자들은 일본 및 한국 정부의 입장이 담긴 기록물, 각국 법원의 판결문, 판결에 인용된 협정과 조약의 내용을 분석하여 일본 정부의 주장을 법리에 따라 하나 하나 반박한다. 

2019년 5월 24일, 일본 전범기업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기자회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처럼 일본 정부의 입장과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에 내재한 모순과 비합리를 파헤쳐, 진실을 볼 수 있도록 해준 저자들은 고맙게도 일본인 변호사들이다. 이들은 “징용공을 비롯한 강제 동원 문제나 한국 대법원 판결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방안을 냉철하게 생각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저자들의 관심과 중심은 피해자를 향해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처럼 냉철하고도 뜨거운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한일 각국 정부의 입장을 무조건 비난하거나, 어느 일방의 편을 드는 것은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저자들은 각국 헌법의 최고 이념인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한 피해자 구제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었으며, 이처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장 객관적인 목표와 증거인 ‘인간 존엄’의 추구 앞에서 피해자의 권익을 짓밟아온 기망과 비합리적인 주장들은 태양아래 먼지처럼 낱낱이 드러났다. 

  이 민감한 문제에 사실과 양심으로 접근한 저자들은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일본정부와 이에 동조한 대부분의 일본 언론에 맞서 ‘정의와 법의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했으며, 이 책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또한 이들은 한국인들 역시 자국 피해자들의 문제를 ‘정의와 법의 원칙’에 따라 제대로 파악하고,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이 책을 계기로 단순히 ‘같은 한국인이라서’ 피해자들을 지지해왔던 독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피해자들의 호소가 정의와 법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쪽으로 바뀐다면 필자들로서는 이보다 더한 기쁨이 없을 것 같다.” 

  ‘정의와 법의 원칙’은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해결의 열쇠다. 또한 문제를 둘러싼 오해와 감정적 추론을 거두고 명확한 사실을 따져보는 데서 비로소 ‘정의와 법의 원칙’을 당당히 외칠 수 있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가장 합리적인 해법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터주고, 굳게 잠겼던 문의 열쇠를 건네주었다. 이 문을 열고, 그 길을 가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손에 들어온 진행형의 역사, 피와 눈물이 묻은 원통한 기록을 받아들고, 오히려 냉철한 사실 앞에서 감정은 차분해지며 미처 지키지 못한 피해자들의 존엄과 바로 잡아야 할 정의의 빈자리는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은 행위는 지탄받고, 그 억울함은 충분히 보상받아야 한다는 가장 명백한 진리를 두고, 우리는 왜 이렇게 수많은 불합리한 판결문과 거짓의 더미 속에서 세월을 보냈는가. 저자들의 염려대로, 피해자들이 구제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징용공 피해자들의 원통함을 제대로 구제하기 위해서, 단지 감정적 동조가 아닌 필요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 무엇보다 한일 양국 헌법의 정신에 입각한 인간 존엄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책의 기록을 낱낱이, 정확히 새겨 읽어야 한다. 제대로 알게 해줘서, 객관적인 논리로 뜨거운 문제를 풀어줘서 사무치게 고맙다.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북 트레일러 




참조 

일본 정부와 법원의 주장 및 한국 법원의 입장 정리 

  일본 정부와 법원은 2000년 이후로 징용공 피해자들은 소송을 통한 권리행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그 근거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들고 있다. 즉, 한일 청구권협정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틀 내에서 체결된 것인데, 일본 정부와 법원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취지는 사후적으로 양국가의 국민들이 개별적으로 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양국에 지워질 예측 불가능한 부담을 고려하여 민사재판에서 개인의 청구권 행사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일 청구권협정도 이러한 틀 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일본 정부와 법원의 주장에 대해, 크게 세 가지의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 첫째, 일본정부의 한일 청구권협정 효력 해석이 비일관적이라는 점이다. 일본 법원은 2000년 초반 이전까지는 자국민의 외국 정부에 대한 개별적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를 인정했다. 당시 일본인 원폭 피폭자가 일본 정부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국가와 국민의 청구권을 포기했다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자,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포기된 것은 외교보호권일 뿐이며, 피해자들 개인이 직접 미국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권리는 포기된 것이 아니라고 하며 정부의 보상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2000년 초반 이후, 한국인 징용공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건수가 증가하고, 일본기업과 정부에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자, 돌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틀과 한일 청구권협정을 들어 개인의 모든 청구권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00년 이전까지는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제기한 많은 소송에서 한일 청구권협정을 근거로 개인의 청구권을 기각한 사례가 없었다. 일본은 한국인 원폭 피폭자들이 낸 소송에서도 이전에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효력을 내세워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또한 일본 정부는 이전까지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한일 양국이 청구권에 대한  외교보호권만을 상호포기한 것일 뿐, 국내법인 재산권조치법에 의해서도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킨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저자들은 일본 정부와 법원의 이와 같은 입장변경은 법리적으로 해석해도 일관성이 없으며 비합리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둘째, 저자들은 일본 정부가 이야기하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취지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 판단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해석상 틀을 이야기하며, 이 조약의 효력으로 각국의 개인 청구권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하나, 저자들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는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 민사재판상의 권리행사는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도 않으며, 조약 체결 당시 한국은 체결의 당사자도 아니었고, 이에 참여하지도 못했으므로, 이 조약을 근거로 한국인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일본 정부의 그간의 입장을 살펴보면, 일본 정부 역시 본래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취지를 모든 민사재판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저자들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효력을 근거로 한 일본 정부의 주장은 법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내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저자들은 일본이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법상의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재판을 받을 권리’는 ‘세계인권선언’ 제10조 및 ‘국제인권규약(자유권 규약)’ 제14조에 규정된 권리인데, 일본 정부가 이를 부인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고 본다. 또한 저자들은 외교보호권은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일 뿐이며, 소송을 통한 개인의 권리 행사는 이에는 포함되지 않는 근본적인 인권의 문제라고 본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과 더불어, 한국 법원 역시 2012년 이전에는 이와 같은 일본 법원 판결의 기판력을 이유로 피해자들의 소 제기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로 한국 법원은 징용공 피해자들은 소송을 통한 권리 행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처럼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하는 한국 법원의 입장도 외교보호권의 유무를 중심으로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피해자 개인의 모든 청구권도 한일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었으나, 이 청구권에 대해 포기된 것은 외교보호권일 뿐, 개인의 청구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입장이며,  또 한가지는 아직도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에 외교보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당시 한일 청구권협정에 각 개인의 청구권은 애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외교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입장은 한국 헌법 전문을 근거로 든다. 한국 헌법 전문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있으므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전제에서 체결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한 불법행위들까지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들은 이처럼 지금까지 징용공 피해자 구제가 방치된 데에는 한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시 한국 정부는 일본이 제공한 자금을 보상금으로 인식하였고, 당시 이 자금을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지급했어야 했으나, 당시 피징용 사망자들에게만 일정 금액을 보상하고 생존자는 보상금 지급 대상자에서 제외 하는 등,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교착 상태 가운데2018년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이후, 이들 기업은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어 강제집행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강제집행을 위해서도 일본 법원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저자들은 각 기업들이 신속히 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와 법원이 협조해야 하며, 한일 양국은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중심으로 하여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기금 마련 등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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