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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Jun 12. 2020

협력의 역설

세상을 바꾸는 분열의 힘

협력이 어떤 점에서 역설적이라는 것인가, 대체 협력이란 무엇인가, 책 속의 다음 일화를 읽어보자. 


“과테말라 팀의 중요한 사건은 첫 워크숍의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났다. 그들은 동그랗게 둘러앉아 내전에 관한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가톨릭교회 인권운동가 로널드 오차에타 Ronald Ochaeta 는 원주민 마을을 방문했다가 내전 당시 벌어진 대학살의 피해자들이 묻힌 거대한 무덤을 발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땅이 파헤쳐지자 수많은 작은 뼈가 보였다. 오차에타는 법의학자들에게 피해자들의 뼈가 학살당할 때 부러진 것인지 물었다. 법의학자들은 피해자 가운데 임산부도 있었고 작은 뼈는 태아의 것이라고 말했다. 

오차에타의 이야기가 끝나자 완전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런 침묵은 처음이었기에 나도 무척 놀랐다. 침묵이 한 5분간 이어지다가 일정이 재개되었다. 

그 일은 나와 팀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5년 후 이 프로젝트의 역사를 조명하는 인터뷰가 진행되었을 대 팀원 다수가 프로젝트 이후에 함께한 중요한 과제가 대부분 그 침묵의 순간에 깃든 통찰과 유대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과테말라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 협정 프로젝트에 갈등 해결 전문가로 참여했던 기억을 이와 같이 회상하고 있다. 36년간 2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과테말라 내전에서 분열되었던 각계 인사들이 내전 종식과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을 때, 인권운동가 로널드 오차에타의 첫 마디와 모두의 침묵은 극단적인 갈등으로 찢어졌던 이들의 마음에 내전을 끝내고 평화를  되찾아야겠다는 공동의 목적을 각인 시켜주었다. 

협정에 참여한 이들은 비록 각자의 의견을 굽힐 수는 없었지만, 무고한 이들에게 참혹한 피해를 입힌 내전을 끝내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에는 공감했다. 그리고 이 저변의 공감은 이후 과테말라에서 진행된 각종 문제 해결 및 평화를 위한 위원회 결성과 활동에 묵직한 바탕이 되었다. 

<협력의 역설> 표지


과테말라 중앙대성당 기둥 :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세계적인 갈등해결 전문가인 저자는 25년간 이처럼 세계 각국을 뛰며 기업과 국가단위의 갈등과 분쟁을 종식하기 위한 각종 협의의 과정을 기획하고 중재했다. 그는 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몽플뢰르 시나리오 콘퍼런스’ 프로젝트에서 남아공 지도자들이 협의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대화의 원칙을 제시했는데, 이 원칙에 따라 진행된 협의에서 남아공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다양한 해법이 도출되었고, 이는 남아공이 뿌리깊은 인종차별을 종식하고 새로운 도약과 전환을 할 수 있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저자 Adam Kahane

저자는 실패와 좌절, 각기 다른 의견을 지닌 이들과의 신경전을 무수히 겪어낸 다양한 중재의 경험 속에서 협력을 위한 가장 고도의 기술을 간파하고, 이를 이 책에 아낌없이 녹여냈다. 그 기술은 바로,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애써 협력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협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갈등 중재 전문가의 입에서 굳이 협력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다니, 정말 역설적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은 ‘갈등을 멈추고,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갈등과 분열보다는 매끈한 협력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고, 협력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관련 상황들을 조정하고 맞추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긴다. 그런데 저자는 협력하려는 생각 자체가 문제를 더 그르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의견을 어떻게 조정하고, 어떻게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의견을 조정하려 하지도 말고, 문제를 매끈하게 해결하려고 하지도 말라고. 협력을 해야만 문제가 풀린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이런 결론은 어쩐지 불편하고 불안하다. 그렇다면 갈등의 상황을 그대로 놓아둬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으로 무엇이 해결될 수 있는가? 화해와 협력으로 귀결 되어야 어쩐지 마음이 편할 것 같은 우리에게 갈등을 그저 놓아두는 것은 꽤나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러나 갈등을 그대로 놓아두려면 사실 고도의 협력 기술이 필요하다. 갈등이 파괴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면서도, 어느 누구의 의견이 다른 이의 의견에 강제적으로 편입되지 않도록 서로 다른 의견을 유지하는 데에는 순간순간 면밀한 상황 판단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파괴적인 상대주의와 숨막히는 획일적 전체주의의 양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과테말라 일화 속 침묵의 5분처럼 그 ‘어느 중간’, ‘어느정도 다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서로 다른 의견들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서 엉킨 문제들을 넘어 한걸음이라도 전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서로 다른 의견 사이의 이 절묘한 힘의 균형 상태를 다양한 일화와 분석들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잘 직조된 카펫을 보듯 서로 다른 경험과 일화들은 ‘다양성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갈등을 인정하며 관리하라’는 하나의 패턴, 하나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저자의 경험 공유를 통해 갈등과 협력의 본질, 나아가 인간 행위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적인 균형을 유지하지 말고 역동적인 불균형을 의식하고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통찰은 마치 합리론과 경험론, 리와 기, 보편과 개별 사이의 아주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온 동서양 사상사의 맥락을 구체적 경험의 장에서 헤집어 드러내는 것 같다. 정합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협력에 대한 생각은 사실 정합적일 수 없는 상황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뿐이며,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불균형 상태를 방치할 수만은 없다. 이 양극단에서 상황별로 적절하고 요긴한 균형점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협력의 기술이다. 

어느 유명한 책의 제목처럼, ‘부분과 전체’는 늘 부분은 부분대로, 전체는 전체 대로, 다 생생히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실은 어느 일방의 주장에 불과한 것을 ‘전체’로 둔갑시키고, 모든 ‘부분’들을 그 전체에 강제로 가두고 마는 협력에 대한 이상 때문에, 부분 간의 갈등은 더 곯아버리게 된다. 개별적인 관심사와 주장, 즉 부분들이 살아 있어야 “개인의 전체를 포함하고 초월하여 전체의 가능성을 알아차리는” 협력의 시작을 기대할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매우 현실적이고 어려운 진리가 이 책에 속속들이 숨어있다. 

원서 표지 : 원서명은 Collaborationg with the Enemy 이다

저자는 이처럼 현실적으로 강자의 목소리만 남게 되는 협력의 허상을 드러내고, 사람들은 각기 자기만의 주장과 이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데서 오히려 진실한 협력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정당하고 선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무조건 다른 이의 행동과 의견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야 말로 진정한 협력을 그르치는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모든 이가 내 생각대로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는다. ‘갈등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전제를 받아들이고, 완벽한 협력에 대한 환상을 깨면, 그때부터 역설적으로 협력이 시작된다.

저자는 강조한다. ‘단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가장 좋은 방법을 찾으려 하지 말라’, ‘통제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스트레치를 통하여 팀 안팎에 자리하는 갈등과 관계에 마음을 열고 수용하라’, ‘명확한 비전이나 목표 없이도 행동하며 배우고, 진전을 이루는 과정을 받아들여라’, ‘불확실성과 회의 속에 편안히 있는 능력을 키워라.’ 즉, 전통적인 협력의 환상 속에 편히 있지 않고, 이처럼 불편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 이해와 관심을 열어 두는 ‘스트레치’협력의 기술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치우치지 않은 가장 실질적인 선택과 진전을 가능하게 한다고. 

과테말라 프로젝트 이야기로 글을 열었으니, 과테말라 원주민 키체족K’iche’의 성서 《포폴 부 Popol Vuh》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그 5분 간의 침묵을 묘사한 과테말라인 프로젝트 책임자의 한 마디로 글을 닫으면서, 협력의 본질을 곱씹어 본다. 

“우리는 의견을 같이 내놓지 않았다. 목적을 같이 내놓았다. 그 다음에 합의하고 결정했다.”


추가로 한국어판은 최재천 선생님이 추천하시고 설명도 덧붙여 주셨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살펴보면 더 이해가 쉽게 될 것도 같다. 

https://youtu.be/3Yzh4JfDm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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