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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Oct 21. 2020

가짜수술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비과학적 수술의 진실

 우리나라에 국민건강보험이 전면 도입되고 난 뒤 매년 전 국민 대상 건강검진이 실시되고 있다. 이 건강검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암을 조기 검진하고 치료하여 암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가족들은 경제적 부담을 덜었다. 하지만 갑상샘 암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예전에는 갑상샘 암은 대부분 혹이 만져진 후에야 치료를 받았고, 그 크기가 대개 1cm 이상이었기 때문에 수술에 대한 논란은 없었다. 최근 초음파로 1cm 이하의 작은 암이 쉽게 진단되고, 작고 예후도 좋은데 반드시 수술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일본 고베 구마병원에서 1cm 미만의 저위험 갑상샘 유두암 환자를 대상으로 10년 추적 관찰한 결과, 암의 크기가 커진 환자는 8%에 불과하고 림프절 전이 환자가 3.8%로 매우 적었다. 또한, 연령에 따라 진행될 가능성 차이가 있으며 젊은 나이일수록 진행 가능성은 높았다. 반면, 미세한 암이더라도 종양이 신경 가까이에 붙어 있거나, 미세유두암이라도20%에 이르는 재발률을 보이고, 다른 장기로 전이된다면 치명적 결과가 발생하므로 임파샘 전이가 있다면 되도록 빨리 수술을 결정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있다. 일단 암 진단을 받으면 환자 개인은 심리적으로 당황하여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갑상샘을 제거하면 평생 신지로이드를 복용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저자는 외과의사로서 수술 효과가 의심되는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논리를 살펴보고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가짜수술> 표지

 저자는 일부 수술이 효과가 있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바탕에는 플라세보 효과가 있다. 플라세보는 효과가 없다는 의미이다. 라틴어로 ‘내가 기쁨을 줄 것이다(I shall please)’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심리학자들은 고통을 가라앉힌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플라세보 효과를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 효과를 증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주저해왔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실험을 통해 플라세보 효과가 과학적 기반이 있음이 밝혀졌다. 퇴행성 무릎 관절염으로 만성 통증을 겪고 있는 환자 95명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95명의 환자들을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누었다. 대조군에는 진통제를, 실험군에는 설탕으로 만든 정제를 투여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를 통해 뇌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 관찰했다. 실험군 환자들의 이마엽 중전두회에서 반응이 있었다. 이 부위에서 대조군 환자들과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마엽은 대뇌반구의 앞에 있는 부분으로 기억력, 사고력 등을 주관하고 다른 연합 영역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조정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기관이며 중전두회는 주로 감정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부위다. 이로써 플라세보 효과를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많은 수술이 플라세보 효과 정도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어떤 수술은 별다른 이점 없이 해로울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플라세보 효과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제대로 치료되지 않은 상태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환자가 호전된 경우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환자는 나아졌지만, 치료 때문에 나은 것은 아니다. 

환자는 나아지지 않았고, 의사가 그들이 나아졌다고 생각할 뿐이다.

환자는 나아지지 않았는데, 환자 스스로 나아졌다고 생각할 뿐이다. 


세 번째 경우가 가장 좋지 않다. 두 번째 경우 환자가 고통을 느끼면 고통을 호소하고 조치를 취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세 번째 경우는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쳐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이 세 번째 경우가 플라세보 효과 때문일 수 있다. 플라세보 효과는 실제 효과 이상의 유효성을 드러내고, 환자가 직접 지각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효과다. 심리적으로 플라세보 효과를 유도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수술에서 만큼은 플라세보 효과는 위험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첫째, 과학자들이 더욱 엄정해야 한다.

둘째, 연구 내용 전체를 담고 있으며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학술지가 늘어나야 한다.

셋째, 후원자들(보조금 지원자, 기업, 대학, 정부)은 혁신적이지 않더라도 임상적, 자원적으로 중요한 발견을 기준으로 적절하게 반복 연구의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

넷째, 논문을 읽을 때 비판적으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스스로 과학적 유효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을 터득해야 한다. 


이 해결책을 당장 적용하는 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불필요해 보이는 수술을 알아보자.     

골관절염, 척추골절 환자 뼈시멘트 주입, 비만환자 소화기에 풍선 주입, 자궁내막증 등의 여러 수술 중 일부 유형은 환자가 얻는 혜택이 '가짜수술'과 별 차이가 없다. 어깨뼈돌기성형술에 대해 무작위 비교 임상시험을 한 결과 효과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골이 닳거나 기능이 저하되면 뼈끼리 마찰돼 뼈 끝 부분이 뾰족하게 되고 인대 등이 뼈에 닿아 손상과 염증, 통증을 일으키므로 어깨 부위 뼈돌기를 깎아주는 게 좋다는 이론에 근거해 매우 흔히 하는 내시경 수술이다. 협심증 수술인 내유동맥 묶음술은 심장 근처 안쪽에 흐르는 동맥을 잡아매는 방식으로 심장에 더 많은 혈액을 보내기 위한 수술이다. 하지만 검증 실험에서 진짜 수술을 받은 환자라 하더라도 가짜 수술을 받은 그룹보다 월등히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파킨슨병 수술은 검증결과 환자들의 삶의 질을 측정한 결과, 진짜 수술과 가짜 수술 집단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진짜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한’ 환자들이 크게 호전되었다. 메니에르병은 현기증과 이명 또는 청력 손실이 나타나는 장애로, 이 병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질환의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병리 테스트를 하기 어려워 우리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치료가 실제로 효과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근치적 유방절제술은 유방을 완전히 절제했을 때 장기간 생존율은 방사선 치료에 상관없이 유방종양절제술을 했을 때와 똑같고 전체 생존율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음이 밝혀져 더 이상 이용되지 않는다. 전두엽 절제술은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전두엽 절제술은 고도의 뇌기능을 제거하고 환자들을 얌전하게 만들었다. 환자들은 불안감과 행동 문제, 그것들을 표현하는 능력을 제거당했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 공급이 차단될 때 발생한다. 두 개 외내동맥 우회술은 뇌 내부의 막힌 동맥으로 혈액을 더 보내기 위해 뇌 외부의 동맥에서 혈류를 전환한다. 아이디어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술 집단에서 뇌졸중이 더욱 자주, 더 빨리 일어났다. 이 수술을 검증하기 위해 같은 조건의 무작위 대조군을 이용하지 않았다. 이 사례는 의학 연구가 얼마나 심하게 편향되었는지 보여준다. 위 수술들은 현재 시행되지 않고 있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은 큰 반면 환자에게 큰 이득이 없는 수술은 다음과 같다.

척추유합술은 요추에 일어나는 마모, 관절염, 척추증 같은 퇴행성 질환을 이유로 이웃한 두 개의 척추뼈를 붙여서 치료한다. 높은 수술비용, 비싼 이식 재료대, 합병증, 추가 수술 가능성, 요통에 효과적이라는 근거 부재에도 불구하고 척추유합술은 빈번히 시행되고 있다. 척추 수술은 그저 설탕으로 된 알약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정교한 플라세보이며 무척 위험하다. 다발성경화증은 심신을 약화시키는 점진적인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환자마다 증상과 징후의 유형, 그 심각성의 차이가 매우 큰데 반해 환자들의 호전 정도를 쉽게 측정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제왕절개술의 이로움은 과대평가된 반면 해로움은 과소평가되었다. 과다 출혈, 마취 관련 합병증, 상처 감염, 자궁내막염, 요로 감염, 수술 부위 벌어짐 등의 합병증이 일어날 수 있지만 위험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은 관상동맥 우회술의 결과 사망률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스텐트를 삽입했을 때 또다시 혈관을 재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의사들은 스텐트 시술을 시행하려면 그 이점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저자는 수술이 플라세보 수술인지, 불필요하거나 효과 없는 수술인지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실제 플라세보 효과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수술을 플라세보 수술과 비교해야만 하며 수술 후 나타난 치료 효과를 플라세보 효과나 심리적•생리적 반응으로 정의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효과가 없거나 우리의 기대보다 덜 효과적인 수술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면 의사들은 왜 관성적으로 수술을 시행할까? 저자는 다음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의학부 학생들의 의료 실습은 도제식 교육으로 이루어지며 비판적 사고는 교수되지 않는다. 둘째 유효성 근거 부족은 유효성 부족의 근거가 아니다. 즉 근거가 부족하다고 해서 수술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추측할 수 없지만, 수술이 효과적이라고 추측해서도 안 된다. 셋째, 인지적 불일치이다. 연구 결과가 의사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다. 의사는 어떤 수술을 시행했을 때 효과적이라고 가정하면 안 되고 자신의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술은 오래전부터 매우 관습적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명확한 근거를 직면할 때조차도 의료 행위가 바뀌지 않았다. 행동 강박은 의료에서 과잉 진료의 강력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전문의들이 대부분 명확한 기저질환 없는 모호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분류하는 진단법이 있다. 저자가 제시한 예를 들어보자. 환자가 복부 팽만, 근육통, 기력 저하, 피로, 두통, 어지럼증 등의 증상을 호소하면 전문의마다 진단명이 다르다. 

위장병 전문의 : 과민대장증후군 또는 소화불량

산부인과 전문의 : 만성골반통 또는 월경전증후군

호흡기내과 전문의 : 과호흡증후군

감염내과 전문의 : 만성(바이러스성 질환 후) 피로증후군

신경과 전문의 : 긴장성 두통, 편두통, 하지불안증후군     


저자가 제시한 결론을 들어보자.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관련 정보를 많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관련 정보를 많이 알수록 자신의 결정에 더 만족할 것이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장 과학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연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우는 편향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후원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금을 통해서 연구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제하거나 의료서비스에 후원을 하면 어떤 수술을 해야 하는지 통제하는 것이다.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비판적 사고의 가치를 키워 나가는 것이다.      


갈수록 고도화되는 의학 지식, 기술을 일반인이 따라가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가 수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비판적 사고로 수술의 유효성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단지 그렇게만 해도 관성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습은 고쳐지지 않을까? 결국 최종 수술 결정은 내가 해야 한다.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서평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본사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필자 : Nebula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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