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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Oct 21. 2020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너무 많은 생각이 당신을 망가뜨린다

 본다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일까? 우리의 망막에서는 빛을 감각하고 이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후두엽으로 보낸다. 후두엽에서는 시신경을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를 이용해 사물의 위치, 모양, 운동 상태를 분석한다. 이 분석 정보를 전두엽으로 보내 움직이는 것에 대한 시각적인 정보와 그에 대한 눈의 움직임이나 몸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처리한다. 측두엽으로 가는 정보는 보고 있는 물체의 색과 형태를 기존의 영상과 비교하면서 판단하는 기능을 담당하며, 시각에 관한 기억의 장기 저장에 관여한다. 보는 과정은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만약 우리 뇌에서 기존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 시각정보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한다. 우리 기억에 제대로 된 정보가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가 흔히 보는 하늘, 구름, 나무와 같은 물체를 구분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가 보는 과정은 과거의 정보를 기억해 내는 과정이다. 뇌가 없으면 보지 못한다. 우리는 보는 동안 끊임없이 뇌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면서 보지 않는 경우가 있을까? 특히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살아가는 우리는 시각 정보로부터 자유로운 순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머리를 비운 상태를 상상하지 못한다. 흔히 생각 없이 말한다, 생각 없이 행동한다고 말하지만 여기서 생각 없다는 것은 정말 뇌 작용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경솔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말 텅 빈 상태에 이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보통은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는 죽음에 준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요컨대 생각이 없다고 여겨지는, 꿈을 꾸고 있는 상황이라도 뇌는 뭔가를 하고 있다. 사실 꿈을 꾸는 상황과 보고 있는 상황은 뇌의 후두엽이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니 뇌가 작동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는 뇌가 텅 비어 있는 상황을 탐구하고 이의 좋은 점을 알려준다. 같이 따라가 보자.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표지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느니 차라리 무(無)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뇌를 실행하는 기관은 나이가 들면서 신선함과 수행 능력을 잃으며, 이 때문에 뇌는 의지를 성취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체험으로 얻는 만족감은 점점 약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때문에 뇌의 의지까지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짐을 본다. 저자는 우리의 뇌는 의지가 더 강해지지만 성취가 줄어들어 감에 따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느니 차라리 무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뇌는 항상 무언가를 원한다. 이러한 의지는 결코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지만 목표의 일부에 도달함으로써 스스로를 다시 달아오르게 한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석가모니는 더 이상 우리 삶에 어떤 의미와 내용을 부여하지 말고 지체 없이 존재가 텅 비어 있는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쇼펜하우어는 체념과 동정심이 필요한 방법과 예술과 음악의 도움으로 현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했다.     

프리드리히 니체(왼쪽)와 쇼펜하우어(오른쪽)

 

뇌신경은 뉴런-시냅스 시스템의 일부이다. 신경전달은 감각 뉴런에서 연합 뉴런을 거쳐 운동 뉴런으로 이어진다. 뉴런 한 개마다 수 백에서 수 천 개의 시냅스가 다른 뉴런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시냅스에 충분한 신경 전달 물질(글루타민산염,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이 충분하지 않아 대부분 대기 상태에 있으며 활성화될 순간을 기다린다. 뉴런은 시냅스에서 항상 효과를 일으키지 않는다. 때때로 통제받는다. 가령 당신이 뜨거운 찌개 냄비를 들고 있다고 해보자. 당신의 뇌가 뜨거운 냄비를 인지한 순간 손가락에 화상을 입지 않으려고 반사 작용을 통해 국 냄비를 떨어뜨리도록 한다. 하지만 냄비를 떨어뜨리면 바닥이 온통 더럽혀지므로 당신의 뇌는 어딘가에 냄비를 놓고 잠시 뜨거움을 참도록 운동 뉴런을 통제한다. 대뇌피질은 지칠 줄 모르고 밤낮으로 일하는 생각 펌프이지만 이를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뉴런은 지쳐 붕괴 상태에 이른다. 붕괴를 막기 위해 대뇌피질 아래쪽에 시상이 존재한다. 시상은 의식으로 가는 문으로서 의미 있는 신호를 걸러 대뇌피질이 잘 작동하도록 돕는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텅 빈 상태를 조절하는 건 시상이다.     


 밤에 잠이 들고 2~3시간이 지나면, 텅 빈 상태가 찾아온다. 이때 정보가 해마에서 대뇌의 장기 기억으로 전달되는 상황이 일어난다. 반면 뇌에서 공포를 담당하는 기관 편도체는 인간의 방어체계 기능한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자극을 전달하므로 대뇌피질은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에서 편도체를 자극하는 두려움을 끊임없이 받는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거나 확인해야 한다는 두려움, 다양한 연예 뉴스나 검색 순위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그것이다. 당연하게 끊임없는 두려움으로 편도체를 자극하는 활동은 대뇌를 지치게 하며 텅 빈 상태를 지향하게 만든다. 텅 빈 상태는 신경 전달 물질을 충전하는, 휴식의 의미다.      

자기수용성 감각은 나와 외부 세상을 구분 짓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나 자신과 외부 세상을 중재하는 건 자기수용성 감각이다. 이를 테면 나는 여기 있고, 다른 사람은 저기 있다. 여기는 내가, 저기에는 내가 아닌 존재가 있다. 따라서 자기수용성 감각, 내면 생활을 인지하는 기능이 사라지면 내면의 평화를 맛보게 된다. 이 말은 내면 생활을 인지하지 못했던 이가 의지를 발휘해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행불행을 속단하기 힘들어진다는 의미를 가진다.      

명상자는, 특히 훈련된 선승들은 뇌가 텅 빈 상태를 유지한다. 특정 대상에 집중하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대단히 집중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는다. 이는 명상 상태에서 후두엽의 인지 영역은 전전두엽의 실행 영역과 격리된다. 명상자는 세상을 극도로 주의 깊게 내면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의미도 인지하거나 체험하지 않으며 행위와 통제에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 사물은 의미가 텅 비어 있는 상태로 남아 있는다.     

 직업 음악가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명상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뇌 활동을 전개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쇼펜하우어의 표현, ‘의지가 음악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는 직업 음악가에게 아주 잘 적용된다. 음악가는 손 기술을 고도로 발달시켜 복잡한 뇌 활동을 작동시키지 않고도 악기를 마음대로 다룬다. 직업 음악가의 경우 악기 연주는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이는 손으로 하는 연주 패턴이 소뇌 같이 뇌 깊숙한 곳에 있는 영역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으므로 음악가는 악기를 연주하며 대뇌 활동력을 요구할 필요가 거의 없다. 그래서 뛰어난 음악가는 일반적으로 음악 경험이 적은 사람들보다 훨씬 쉽게 텅 빈 상태에 도달한다. 구조가 복잡한 음악을 들으면 뇌는 복잡한 생각을 통해 이해하므로 텅 빈 상태에 도달하기 힘들지만 단순하고 리듬이 강조된 음색의 음악, 행진곡을 듣거나 테크노 비트나 힙합에 맞춰 춤을 추면 황홀경에 쉽게 빠진다.      

텅 빈 상태에 이르면 무언가를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품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텅 빈 상태라는 질병’인 정신장애를 살펴보자. 

우울증 환자는 무기력감을 체험하면 뇌에 코르티솔과 다른 스트레스 호르몬이 넘쳐나며 그 결과 시상하부와 해마에도 범람한다. 시냅스 연결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물질인 신경 성장 인자(NGF)가 시상하부와 해마에서 덜 활성화된다. 에너지 생산에 관계하는 아데노신도 크게 감소하여 시상하부와 해마의 기능이 뚜렷하게 줄어들어 우울증 환자는 점점 더 생각이 완전히 텅 빈 상태로 가라앉는다. 항우울제는 환자의 동기와 추진력을 강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지만 해마의 능력을 감소시킨다. 종국에는 무기력이 기억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위협적인 사건에 직면하면 반사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기대하는 심리를 일으킨다. 

 주의력결핍 장애나 사이코패스는 강렬한 자극을 찾아 매진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두 장애를 가진 사람은 흥미진진하지 않은 자극을 지루하게 느낀 나머지 새로운 자극을 구하기 위해 사기, 과도한 부채, 가학 행위, 동물 학대, 살인과 같은 해로운 행동을 추구하게 된다. 이들은 텅 빈 상태를 견뎌내지 못하면서, 자동적으로 계속 이런 상태가 확대되는 특별한 문제에 직면한다. 사이코패스는 텅 빈 상태를 견딜 수 있으면 사회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텅 빈 상태는 그에게 스트레스를 더 많이 유발하고 나아가 범죄행위를 저지르도록 한다. 

 조현병 환자는 해마의 축소라는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인다. 해마의 축소는 텅 빈 상태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해석이 가능하며, 이로 인해 사회라는 외부세계는 의미를 잃고 단편화된다. 그래서 조현병 환자는 발병하기 훨씬 전부터 의미가 가득한 정보와 의미가 없는 정보를 서로 구별해내지 못한다. 즉, 의미 없는 정보도 그대로 가져오므로, 신호는 걸러지지 않고 특별한 1차 선택 과정도 없이 가공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현병 환자의 경우, 통상 여과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시상도 덜 활성화된다. 그 결과 새로운 세계와 관점을 열어주어 창의력을 엄청나게 발휘하도록 밀어붙인다. 조현병 환자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텅 빈 상태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어 의미 있는 연관 관계를 발생하지 않는다. 

 루게릭병 등에 걸려 뇌는 기능하지만 몸을 아예 움직일 수 없는 ‘감금증후군’ 환자들의 사례를 보자. 저자는 환자의 뇌에 측정 칩을 장착해 뇌파와 혈류의 변화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게 했다. 비자발적으로 텅 빈 상태에 놓였다고 할 수 있는 그들의 마음에서 우울증과 체념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삶의 질’이 비환자들에 견줘 더 높았으며, 감금 상태의 단계가 심각할수록 더 긍정적이었다고 말한다. 감금 상태의 주된 특징은 뇌가 목표한 효과를 달성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뇌가 어떠한 효과도 달성하지 못하면 아울러 좌절과 실패도 겪지 않기 때문에 절망이란 문을 이미 지난 이들은 두려움도, 자신에 대한 집착과 의지도 없는 텅 빈 상태로 들어선다. 뇌는 더 이상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무언가를 얻으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통뿐인 세상에서 해방되기 위한 길과 다름없다. 그래서 감금증후군 환자들은 우리보다 세상을 훨씬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고, 우리가 평소에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이해력과 통찰력이 뛰어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텅 빈 상태에 이를 수 있는가? 저자는 인간이 텅 빈 상태를 붙잡으려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텅 빈 상태는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벗어나 버린다고 말한다. 텅 빈 상태가 스스로 나에게 오도록 행동해야 하고 텅 빈 상태는 텅 빈 상태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이에게 열린다고 결론을 내린다.     

텅 빈 상태는 뇌에 과부하가 걸려 있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하다. 저자가 말미에 제시한 감금증후군 환자들의 삶의 질이 우리가 선입관처럼 가지고 있는 반대로 나쁘지 않았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만이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끼고,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조작하는데 열중한다. 때로 스스로 침잠하여 시름을 잊어보는 건 어떨까?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서평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본사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필자 : Nebula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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