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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Dec 10. 2020

뭐든 다 배달합니다

쿠팡 배민 카카오 플랫폼 노동 200일의 기록

 지금 우리는 참 편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식사는 물론 야식이나 간식, 심지어는 좋아하는 카페의 커피 한 잔조차 길어야 한 시간 안팎이면 내 집 안에서 편하게 배달받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핸드폰으로 클릭 몇 번이면 내가 필요한 물품들이 잘 포장되어 집까지 배송되어온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음식이든 배달해주는 사람들, 이른바 ‘특수 고용 노동자’ 중의 한 사람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의 거리에는 민트색 헬멧을 쓴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배민 커넥터’라고 불리는 이 일은 한때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싶은 만큼만’이라는 기업 측의 홍보 문구와, ‘월 400만원?’이라는 흥미 유발성 기사들로 인해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정말 환경이 좋은 일 자리, 좋은 장소는 대중에 알려지기 전에 이미 소식이 빠른 소수의 몇몇에 점령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이다. 따라서 저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도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며 간단하게 기억에서 잊었다.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렇게 월 400을 버는데 난 왜 이것밖에 못 벌지?’가 아니라면, ‘저 일로 월 400이라니’ 하는 생각.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 아르바이트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구직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접하기 쉬운 곳이 쿠팡, 배민 커넥터처럼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업무가 비교적 단순 명료한 일들일 것이다. 본서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쿠팡은 일당으로 받을 수 있고, 정해진 기간을 넘어가면 사대보험도 가입되는 등 나름의 장점도 있다.   

만약에 이런 장점들에 끌려 해당 업무를 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좀 더 많은 경험담을 들어보고 싶다 등을 이유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서를 읽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뭐든 다 배달합니다> 표지


저자는 오랜 기간을 기자로 재직하면서 현장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업무를 해온 경험이 많았기 때문인지, 상당히 낙관적이고 즐거운 시각으로 하루하루의 업무일지를 본서에 기록하였다. 그러면서도 소속된 조직이 움직이는 구조나 주변 인물들의 고충, 비슷한 유형의 사회문제를 빼놓지 않고 지적하면서 저자 나름대로의 오랜 고민과 생각들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서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현장감’이다.


<김하영 저자가 경험한 쿠팡, 배달의 민족, 카카오 대리>

 저자가 배달 전선에 뛰어든 이유는 첫째로 억대 연봉이나 3조 원대 시장 규모 등 배송 관련 업계에서 쏟아지는 놀라운 성장 속도의 배경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2019년의 타다 갈등에서 촉발된 여러 사회문제나, 또는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다시 발생해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었다.          

 그 궁금함과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저자가 첫 번째로 선택한 장소는 쿠팡이었다. 굳이 쿠팡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저자는 고객들의 주문을 받은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구역을 찾아가 지시하는 품목을 수량만큼 카트에 담아 옮기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면서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팔, 다리가 더 비싸긴 하지만 언젠가는 이 일도 기계나 인공지능이 전담하게 될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동시에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하루 한두 마디 정도의 대화도 필요 없는 작업 환경이나, 소소한 부분에도 극적으로 갈아지는 사람들의 반응들, 코로나 19 이후로 쿠팡에 쏟아지는 사회의 경멸적인 시선들과 같이 업무 외적으로 인간성이 사라지는 분위기에도 역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두 번째로 경험한 곳은 배민 커넥터였다. 라이더와는 달리 자전거, 전동 킥보드나 전동 자전거, 도보로 가까운 거리를 배달하는 일이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배달 앱에 라이더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몇 배 이상으로 배달이 가능한 업체와 종류가 늘었다. 소비자로서는 선택지가 늘었고, 업체의 입장에서는 매출이 늘어날 테니 상호 간에 좋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소비자에겐 이전과 달리 배달료라는 명목으로 천 원, 이천 원, 삼천 원, 경우에 따라서 오천 원 이상의 금액이 더 부과된다. 폐업하는 매장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배민 커넥터를 비롯한 다수의 라이더들은 ‘건당 수수료’라는 체계로 인하여 누구보다도 빨리 일단 콜을 잡아야 하는 경쟁의 수렁에 빠졌다. 많은 콜을 받아내기 위해 많은 주문을 받아 한 번에 배달하느라 오토바이 사고와 사망률은 나날이 높아진다. 배달을 전담하는 직원이 매장에 고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던 예전에 비교한다면 새로운 고충이 늘어난 것이다.

 저자는 순식간에 콜을 낚아채는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생각이나 고민은 금물인 것 같다고 표현했다. 또한 당장의 안전보다는 그날그날 내게 주어지는 수입을 더 중시하게끔 만들어가는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배달을 위해 방문한 집에서 달려 나오는 아이들의 기쁜 목소리, 누군가가 감사의 의미로 건넨 비타민 음료 한 병에 감동을 받은 등 저자의 소소한 이야기가 앞선 내용과 대비되어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물품과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과 그 소유의 자동차를 옮겨주는 카카오 대리기사까지 경험하고 난 저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사회의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보호나 일 할 만한 업무 환경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은 특수고용 노동직에 대하여 사회적으로나 기업이나 하나의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직업군으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설명하였다. 시대와 물질이 발달하고 변화하는 것에 맞춰 우리의 인식 또한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플랫폼 노동의 주요 형태, 이미지 출처 - 조선에듀>

  분명 코로나 19의 확산은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일단 교복을 입고 등하교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거리에서 사라졌다.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뭉쳐 다니는 직장인들의 모습도 찾기 어려워졌다. 화상회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기업의 면접 역시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곳이 많아졌다. 코로나 19는 21세기의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하고 파격적으로 우리들이 공유하고 있던 많은 규칙들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지금 참 편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몸이 편한 것과는 별개로 살아 남기란 상당히 불편하고 힘겨운 것 같다. 배달의 편리를 누리려면 그만큼 지출이 필요하고, 지출은 본질적으로 경제력에 기인한다. 경제력을 높이려면 좋은 직장, 수입이 보장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 한동안은 좋은 학벌, 탄탄한 인맥들을 요구했었지만 지금은 설상가상으로 개인만의 재능과 차별성,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유연한 사고와 같이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능력들을 요구한다.

  언젠가는 열심히 악착같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정도는 이루어지는 시대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1인 가구들이 늘고, 미래를 포기한 채 오늘 하루 살아남기가 벅찬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19로 기업의 채용이 줄어든 것도 힘든데, 터무니없는 조건이나 연봉을 내놓고는 ‘당신 아니어도 여기 오고 싶어 하는 사람 많다’는 식으로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데 어디 가서 힘들단 말 한마디 선뜻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이다. 돌아오는 말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일까 봐.

  기계, 인공지능과 사람이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사람에겐 감정이 있다는 것 아닐까? 배우고 입력받은 데이터를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감정. 그런데 지금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그 감정을 말려 죽이기 좋은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대면과 접촉이 줄어들면서 ‘마음은 더 가까이’라는 방역 관련 슬로건이 무색하리만큼 삭막해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온정어린 택배기사 응원 문구 : 이미지 출처 - 머니투데이, 사진-봉벤져스>




 무엇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물질문명. 그리고 그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와 사상. 이 상황이 최악의 형태로 끝나기 전에 무언가든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직원이 ‘사람’으로서 근로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소규모의 개인 사업자들 또한 합리적으로 ‘사람’을 고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사람에 따라 여러 견해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본서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영역을 인공지능과 기계가 대체하고 업무 공간이나 공장에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미래뿐일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서평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본사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필자 : U.Nell

* <뭐든 다 배달합니다> 북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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