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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Dec 14. 2020

문재인 이후의 교육

교육평론가 이범의 솔직하고 대담한 한국 교육 쾌도난마

 교육은 언제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뜨거운 주제다. 코로나 19가 다시 심각해져 확진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수학능력시험이 12월 3일 치러졌다. 수많은 우려가 있었다. 시험을 미루어야 한다는 의견은 거의 묵살되었다. 수능이 실시되지 않으면 다음 해 대학 학사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 그래서 정말 치명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더 심각한 상황에서도 실시되었을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대학 입시는 삶의 일부분이고 대부분 거쳐 가는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대학 입시 영향을 직접 받는 고등학교 교육과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초중학교 교육은 어느 가정에서나 피할 수 없다. 저자 이범은 교육에서의 경쟁이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는 분석에서 벗어나 평균 이상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계속 치열해져 왔음을 지적하며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이야기한다. 특히, 코로나 19가 강제하게 한 온라인 학습(K-에듀)을 통해 공동학습을 위한 국가 규모의 실험이, 다소 시행착오가 있었고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성공적이었다고 평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언한다. 저자의 이력은 다채롭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를 졸업한 이후 사교육에 종사하다 EBS에서 무료 강의하고 서울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정치 과정도 경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결정되었던 교육정책 과정을 말한다. 저자는 정치를 하고자 하지 않아 본인의 생각을 비교적 거침없이 피력한다. 이를 따라가 보자. 

   


 

<문재인 이후의 교육> 표지


 저자도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 교사의 교권은 아주 약하다. 생활지도를 하며 학생들을 물리적인 위력으로 강제했던 시절에도 교육함에 있어 교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국가가 세세하게 규정해 놓은 교육과정을 그대로 교수해야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학이나 영어 검인정 교과서는 수 십 종이지만 목차가 거의 똑같다. 당연히 교수 내용은 동일하고 표현 방법만 약간 차이 날 뿐이다. 과거 교사들은 개학하기 일주일 전에야 담당할 학년과 과목을 알게 된다. 2017년에 이르러서야 교원 인사 발령일이 2월 1일로 앞당겨지고 이에 따라 담당 학년과 교과목을 과거보다 2~3주일 빠르게 알게 되었다. 이는 행정편의주의로 교사는 이미 마련된 교육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면 될 뿐이라는 행정기관의 사고를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 교사에게 주어진 자율은 거의 없다. 교과를 잘 가르치는 교사보다 행정 업무를 잘 처리하는 교사가 환영받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교사가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면 오히려 박대받고 조직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받는다. 우리나라 교사는 가르치는 내용도 일일이 간섭받을 뿐만 아니라 평가 내용도 세세하게 규정된 대로 따라야 한다. 설령 빡빡한 지침 하에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열심히 가르쳤어도 엄정한 평가규정을 따라야 한다. 평가를 담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수활동은 학생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학생들은 이를 학습하지 않는다. 교사는 수업으로 말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교사는 처리하는 공문서(公文書)의 수와 업무 처리 속도로 말한다. 

     

<"문재인 이후의 교육"저자인 교육평론가 이범>

 문재인 정부의 첫 교육부 장관 김상곤은 명예스럽지 못하게 퇴진했다. 국민들은 김상곤 장관이 발표한 교육정책에 반발했다. 김상곤은 취임하고 학종 개편안을 내놓는 대신 수능 개편안부터 내놓았다. 김상곤 장관이 수능 절대평가를 추진한 배경은 첫째, 학생들이 겪는 경쟁과 부담을 줄이고 둘째, 수능의 영향력을 약화 화기 위해서였다. 이는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정시모집 변별에 문제가 생긴다는 반박에 대비하지 못한 부족한 개편안이었다. 학부모들은 수능보다는 학종에 불만이 많다. 학종은 반영하는 요소가 매우 다양하며 학생들의 부담이 매우 크고 비교과 영역은 부모와 사교육의 조력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진보 교육 진영은 ‘입시 때문에 교육을 망친다’고 의례히 말하며 입시를 가볍게 여기고 고찰하지 않았다. 이는 수능 절대평가를 선언하고서 보완책을 준비하지 않는데서 드러난다. 전교조를 중심으로 수능 자격고사화 및 수능 폐지를 주장해왔지만 내신에 대한 대책은 고민하지 않았다. 진보 교육계는 오랫동안 대학 서열화를 교육 황폐화의 주범으로 지목만 해왔을 뿐이다. 

<2020년, 경기도 비교과 중학교 내신 선출 방법-200점 만점 기준 내신성적 반영요소 >

세계적으로 비교과 반영은 예외적 현상이다. 우리가 겪어온, 끊임없이 제기되는 불공정 문제 때문이다. 비교과를 반영하는 두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은 비교과 활동을 주로 자기소개서에 반영한다. 영국은 그 비중이 작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생각, 자신의 논리를 훈련하는 평가보다는 정답 빨리 찾기 평가에 열중하였다. 나아가 상대평가에 집중하였다. 그러니 학력 수준이 높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은 나머지 학생들에게 기피 과목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 다양한 교육은 설자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내신 상대평가는 학생의 객관적 성취 수준을 반영하지 않으며 학생들의 체감 경쟁 강도를 높인다. 문제는 내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면 강남 쏠림, 특목고 자사고 쏠림이 강화될 것이다. 이는 정치적 파장을 일으킨다. 그래서 입시제도 비판은 쉽지만 대안 제시는 무척 어렵다.      

 저자는 학종이 보수와 진보가 합작한 입학사정관제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유학한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쳤으며 이들은 미국의 선진 제도로 들여왔다고 생각한다. 입학 사정관제를 도입한 바탕에는 ‘자율’ 담론이 존재한다. 이 ‘자율’은 개인의 자율이 아니라 기관의 자율이었다. 개인의 자율은 무시하고 기관(대학, 고교)의 자율만 강조하는 일관된 편향을 보인다. 교과서 자유발행제, 교육과정 간소화, 교사별 평가 등 교사 개인의 자율을 넓히는 조치는 진전이 없다. 또, 고교평준화는 이미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민사고, 상산고 등 6개 자사고를 인가한 것은 김대중 정부였고 노무현 정부는 과학고 3개, 외고 11개를 인가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입 자율화를 내세우고 자사고를 밀어붙였다. 상위권 대학교들이 학종을 선호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입학사정관제/학종 입학생이 상대적으로 대학 재학 중 성적이 높고 중도탈락률이 낮다는 것이다. 대학교에서 원하는 입시제도는 중도탈락률이 낮은 제도이다. 중도탈락 비율은 학종이 2.5% 수능은 6%였다. 실제로 학종 입학자가 수능 입학자보다 중도탈락률이 낮고 대학 재학 중 성적이 높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종 입학자는 재수하기 어렵다. 학종 재수자는 전년도 자료를 활용해야 해서 재수 성공률이 낮다. 둘째, 학종 입학자는 학종에 지원하기 위해 미리 대학 전공을 정해놓고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고등학교 내신 평가와 대학  평가는 유사해서 학종 입학자가 유리하다. 한편 초중고 교육계도 학종을 지지해왔다. 그 이유로 내세운 이유로 첫째, 학종에 내신 성적이 주요한 요소로 반영되어 공교육이 살아난다. 둘째,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고등학교 수업과 평가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셋째, 학종이 학생들의 자율적 활동과 진로교육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다. 학종이 수능보다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데는 형평성과 결과의 평등이 있다. 상위권대 학종 입학자는 수능 입학자에 비해 저소득층, 비수도권이 많다는데 그 근거를 둔다.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데는 결과가 실력이나 노력에 비례해야 공정하다 생각하는 데 있다. 수능이 학생을 직접 가르친 교사가 아닌 외부기관이 주관하는 시험이고 이로부터 비례적인 결과를 얻는 방법이라 여긴다. 한편 학생들이 체감하는 불공정은 교사의 의욕과 노력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세특, 친구가 활용하는 값비싼 비교과 사교육이나 컨설팅, 전학 가면 달라지는 상대평가 내신 성적 등 그들이 체험한 일상생활 자체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성에서 우월하다. 하지만 결과의 형평성에서는 학종이 수능보다 우월하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난이도를 높이면 사교육이 늘어난다. 대입제도가 복잡해지면 이로 인해 정보의 비대칭성이 생겨 부모의 재력이 학생의 입시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육적 타당성이 있다는 이유로 전형요소 들을 동시에 여러 가지 반영하는 더하기 개혁은 사교육을 자극한다.      

 보통 서울대가 연고대보다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서울대가 연고대 보다 훨씬 강력한 학벌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과거 대학 서열화와 고시제도가 결합해 정부의 학벌을 만들고 정부 주도 경제에서 민간의 학벌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서울대가 연고대보다 좋은 가장 강력한 증거로 학생 1인당 교육비로 제시한다. 2018년 기준 학생 1인당 교육비로 서울대는 4,475만 원인데 연세대는 3,173만 원이다. 이를 증명하는 예가 있다. 교육 여건을 충실히 확보해 대학을 설립하자마자 최상위 대학이 된 포항공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다. 신생 대학이어서 학벌 효과가 전혀 없는데도 단시간 내에 최상위 서열의 대학으로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있으며 이들 대학은 연고대와 서성한(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사이 정도에 있다고 평가된다. 

입시 때마다 주목받는 대학서열 이미지

 상위 대학에 진학하라고 격려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상위 대학에 진학할수록 교육 여건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동료효과도 얻는다. 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경우 서울이 제공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니 단지 학벌주의와 능력주의로 대학 서열화를 비판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으며 도출되는 대안도 폭넓은 동의를 얻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교육 경쟁은 단순히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도입되기 전부터 우리나라의 교육 경쟁은 무척 치열했다. 이는 경쟁 참여자가 많았고 대학 서열화가 심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하지만 요즘 학벌 가치의 하락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대 출신의 영향력이 전반적으로 감소했고 최근의 노동시장은 전문성 중심의 수시채용으로 점차 변화 화면서 최고 스펙인 학벌의 가치를 낮추고 있다. 이렇게 학벌 가치가 떨어짐에도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불안감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임금 격차와 비정규직 비율로 대표되는 양극화의 지표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계는 사교육의 원인을 경쟁에서 찾고 경쟁을 유발하는 서열화와 학벌 타파를 주장한다. 보수 교육계는 사교육의 원인을 공교육 부실이라 규정하고 공교육 강화를 제안한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초등학교 입학생들의 한글 학습을 책임지지 않는다. 사교육에서 해결해 오도록 했다. 최근 학력 저하가 뚜렷하게 늘었다. 거기에 학교 내 편차 및 학교 간 편차 모두 OECD 평균보다 높은 학력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에서는 혁신학교 탓으로 돌린다. 혁신학교는 초기 기초학력이 낮은 학생이 많아 비교학교에 비해 학력이 낮지만 이후 학력 향상이 관찰되었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고서로 옳지 않음이 드러났다. 진보 교육계는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에 매몰되어 교육을 대입과 관련해 정당화하는 것을 기피해왔다. 그래서 대입과 관련된 학부모들의 우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불신만 키우고 있다. 저자는 혁신학교는 일정 성과를 이루어 냈으며 앞으로 제도혁신에 역점을 두고 혁신적인 교사가 살아남도록 교권 선진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국 혁신학교 수 및 혁신 고등학교 수, 2019년 기준-이미지 출처 : 교육부>

 저자는 교실 붕괴와 일반고 교육 황폐화를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학문적 교육과정을 받는 고등학생 비율을 지적한다. 일반고에는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과정이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는, 매 학년초 자퇴하고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이는 포퓰리즘 교육정책과 그 결과이다. 포퓰리즘 교육정책은 첫째, 대학을 무분별하게 늘리고 대학 졸업장을 남발한다. 둘째, 고등학교 학사관리에서 유급과 낙제를 없앴다. 셋째, 고교에서 인문계 정원 비율을 대폭 높였다. 저자가 제시하는 일반고 살리기 해법은 일반고의 진입 문턱을 높이고 필수과목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선택과목의 폭을 대폭 넓히는 것이다. 또, 2025년 실시 예정되어 있는 고교학점제를 확장적인 모델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이 대학이 평준화된 유럽 교육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우리나라는 사립대 재학생 비율이 매우 높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저자는 주요 사립대들을 폼을 수 있는 포용적 대안을 제시한다.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그 효과가 작고 공영형 사립대 정책은 유인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 그래서 포용적 상향평준화의 원리로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서울⋅수도권 주요 사립대를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대학에 대한 투자를 늘려 대학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셋째, 대학의 자율적 발전 전략을 허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야 입시제도가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사회가 급속히 변화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수록 이에 대한 대비는 교육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극히 낮은데, 여기에 큰 기여를 하는 요인이 자녀의 교육이다. 누구나 교육에 대해 걱정하고 비판하지만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의 현실에 바탕을 둔 분석과 제안이 설득력을 가진다. 저자의 의견을 곰곰이 살펴보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면 누구나 고통스러워하는 대학 입시제도를 바꾸는 여정에 한 걸음 내딛는 게 아닐까?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서평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본사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필자 : Nebula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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