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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Sep 17. 2021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카뮈를 만나는 기회

[편성준의 리뷰] - 『카빌리의 비참』

사진은 내용과 관계없습니다.


재작년 가을,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둔 나는 제주에 있는 지인의 별장에 혼자 머물며 질리도록 책을 읽고 글만 쓸 수 있는 꿈같은 기회를 얻었다. 먼저 나서서 별장을 알선해 준 아내가 한 달간 나를 보내주며 내건 조건은 딱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제주 관광지는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글만 썼으면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쓰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속대로 아침에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는 것 말고는 하루 종일 별장에 머물며 첫 책의 초고와 각종 칼럼을 썼고 저녁이 되면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난생처음으로 광고 카피나 기획서에서 벗어나 오로지 쓰고 싶은 글만 쓰는 천국의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휴가를 내고 제주로 내려온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평소에도 내가 쓴 글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그 친구는, 아니나 다를까 이 날도 나를 불러내 방어회를 사주며 "네가 쓰는 글은 너무 착하고 임팩트가 없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옹졸한 마음에 화가 난 나는 "그건 니가 평생 광고회사만 다녀서 그런 거야. 임팩트에 중독돼서!"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그렇게 임팩트가 중요하다면 네가 알고 있는 임팩트 있는 글의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들어 보라고 했더니 대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로 시작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언제 적 '이방인'을 아직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단 말인가.


새가 두 개의 날개로 날듯 카뮈에겐 

작가기자 두 개의 정체성이 있었다.


출판사 메디치에서 보내온 날씬한 책 『카빌리의 비참』의 책장을 열면서 제주도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재작년부터 코로나 19가 세상을 휩쓸면서 그의 소설 『페스트』가 다시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역시 알베르 카뮈 하면 『이방인』부터 생각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팔렸고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이 되었다. 살인을 한 이유나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뫼르소의 무심함과 과묵함은 소설가 카뮈가 부조리한 세상에 반항하는 나름의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책세상


그런데 새가 두 개의 날개로 날듯이 카뮈의 내면에도 뫼르소와 비교되는 또 하나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신문기자 시절에 일하던 알베르 카뮈 자신이다.


카뮈는 카빌리에서 비참함만을 보지 않았다. 그는 카빌리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지향하는 삶, 자연과 합일하여 묵묵히 살아가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을 발견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땅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평생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살았다. 아버지는 카뮈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징집되었다가 사망했고 생계가 막연해진 어머니는 가정부로 일하며 아들을 키웠다. 당연히 가난과 무지로 가득한 삶이었고 상급학교에 진학하기에도 여의치 않았지만 그의 명석함을 알아본 선생님 덕분에 카뮈는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게 된다. 대학원을 졸업한 카뮈는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파스칼 피아를 만난다. 유명한 언론인이었고 아랍인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알제 레퓌블리캥>>을 창간한 그는 카뮈도 그 신문의 기자로 참여시킨다. 기자 카뮈는 문학 작품들에 대한 서평과 더불러 카빌리 지역에 대한 일련의 르포를 쓰는 등 알제리의 정치적 문제점을 파헤쳐 화제가 되는데 『카빌리의 비참』은 바로 그때 썼던 기사들을 모은 책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카뮈는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파스칼 피아를 만난다. 그는 유명한 언론인이었고, <알제 레퓌블리캥>을 창간하며 카뮈에게 카빌리에 대한 리포 기사를 쓰게 했다


카뮈의 눈에 비친 1938년 카빌리의 모습은 비참 그 자체였다. 카빌 인구의 절반이 실업자 신세였고 4분의 3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카뮈는 쓴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은 임금 문제라고 정확히 짚는다. 그는 기사를 시작하며 "우리는 독자들이 분노를 느끼기를 원한다."라고 밝힌다. 그는 돌려 말하지 않는다. "나는 바로 이 빈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모든 것이 빈곤에서 비롯되었고, 모든 것이 빈곤으로 귀결된다. 오늘날 카빌리의 유일한 문제는 빈곤이다."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카빌인의 '정신 상태'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알제리에 널리 퍼진 편견 때문이다. '가난은 창피한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카뮈는 이런 호사스러운 관념을 거부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난은 그 자체로 부조리인 것이다. 그는 묻는다. 왜 누구는 풍족한데 누구는 굶주려야 하느냐고.


기사도 책을 쓰듯이 

자연스럽고 고상한 문체로 쓰고자 했던 카뮈


"어둠이 산으로부터 이 찬란한 땅에 내려와 세상에서 가장 냉혹한 사람의 마음도 한순간 느슨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산골짜기 너머, 거친 보리로 만든 갈레트를 두고 둘러앉은 이들에게 평온이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그 놀랍고 황홀한 저녁에 몰입할 때 느껴질 감미로운 존재를 알았지만, 우리 앞으로 불그스레 타오르는 빈곤의 불꽃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금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가난함 앞에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는 사치스러운 일라는 것을 이렇게 멋지게 쓸 수 있을까. 카뮈는 기사를 쓸 때 일반적으로 신문이 요구하는 문체를 따르지 않고, 책을 쓸 때처럼 자연스러움과 고상함을 유지하고자 애썼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줄곳 느낀 건 그가 정확하지 않은 문장을 구사하거나 난해함에 빠진 적이 없고 오히려 독자들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뮈는 산문가로 출발해서 소설가가 된 사람인데 이 기사들은 『이방인』이 탄생하기 2년 전에 작성되었다. 산문가는 자의식과 싸우는 사람이므로 문장의 밀도가 높고 형이상학적이다. 그러나 카뮈는 책상 앞에만 앉아서 글을 쓰는 문필가는 아니었고 현장을 누비는 기자였다. 그는 카빌라뿐 아니라 알제리 곳곳을 누비며 바꿔야 할 현실의 모순들을 고발하고 역설했는데 예를 들어 "'주민 6만 명당 의사는 단 1명'이라는 기사의 첫머리에서 이 글을 시작하며, 영양이 부족하고 물과 위생 시설이 부재한 상태, 즉, 처참한 보건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이 건강할 리 없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라는 신랄한 문체는 그 자체로도 빛이 난다. 또한 <카빌리에서는 100명이 태어나고 50명이 죽는다>는 기사문의 마지막 문장에 "놀랍게도 의료 문제는 도로, 물, 실업, 임금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라고도 쓴다. 가만히 읽어보면 이는 1938년 알제리의 카빌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 전 세계 어디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다만 80년 전 24살의 지식인 청년 카뮈가 먼저 말했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좀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소설가 최수철이 쓴 [카뮈X최수철](북이십일 아르테 발간)도 사서 함께 읽었다. 덕분에 카뮈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좀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소설가 최수철이 쓴 [카뮈X최수철](북이십일 아르테 발간)도 샀다. 불문학을 전공한 작가 최수철은 출생부터 사망까지 카뮈가 다니고 머물렀던 곳들을 따라 걸으며 그의 생애를 좀 더 깊게 살피는데, 덕분에 나는 47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소설가, 극작가, 에세이스트, 사상가, 저널리스트 등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했을 뿐 아니라 연극 연출가와 배우로도 활동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특유의 고집과 신념 덕분에 절친했던 사르트르와 결별했고 자신의 고향이라 생각했던 프랑스와 알제리 두 나라로부터 모두 배격당했다는 사실도 보다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철학자였지만 그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반항적 기질을 이 책 『카빌리의 비참』에서 이미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죽으면 남는 건 묘비가 아니라 작품이다. 실제 카뮈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는 성난 군중들에 의해 지워졌다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빛나는 리스트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작품을 올려놓게 되었다. 바로 26살의 청춘 카뮈가 집필한 로포 기사 모음집 『카빌리의 비참』이다. 국내 초역인데다 책이 너무 예쁘고 날씬하게 나왔다.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선물한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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