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자의 리뷰] - 『거의 모든 IT의 역사』
2021년 9월15일 아침,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채 유튜브로 ‘애플 이벤트’를 시청했다. 이날 애플 CEO 팀 쿡은 아이폰13을 비롯해 애플워치, 아이패드 등 애플의 새 기능을 선보였다. 매년 9월 애플 마니아들의 관심사는 애플이 또 어떤 제품을 선보일지에 쏠린다. 이것은 2009년 11월 애플이 아이폰을 한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연례행사다. 왜 나는 매년 애플의 이벤트를 기다릴까? 도대체 애플은 어떻게 전 세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정지훈 교수는 그의 책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서 그 이유를 ‘환경 디자인이 잘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환경 디자인은 생각과 우리 주변의 전체적인 환경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으로 단순히 모양이 이쁘고 기능이 좋은 매력을 뛰어 넘는다. 즉, 우리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에 최적화된 디자인은 그 자체로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가능성까지 품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어떻게 이런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은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 속속들이 설명되어 있다. 역사를 살피는 일은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는 힘과 직결된다. 이제는 IT를 빼놓고 비즈니스를 생각할 수 없으니 IT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예상해보는 것은 미래를 살아가는 힘이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10년 출간되었을 때도 짧지만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IT의 역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그로부터 10년, IT 분야에는 새로운 승자가 등장했고 아직도 끊임없이 전쟁 중이다. 개정판에서는 2010년 이후 IT 산업의 변화와 함께 전작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IT 기업들의 흥망성쇠가 정리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10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한국과 중국의 IT 산업과 미래를 내다보는 저자의 태도, 그리고 인공 지능이 가져올 변화를 예측한 점이 흥미롭다.
저자 정지훈은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IT 융합전문가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다양한 강연과 방송 활동으로 IT와 우리 생활을 연결해 이야기한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가 흥미로운 점은 사람을 중심으로 산업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 기업을 이끄느냐에 따라 기업 문화가 달라지듯 IT 역시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앞서서 나가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달라진다.
지금 우리 삶을 지배하는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는 1955년을 분기점으로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5년 미국에서 3명의 걸출한 인물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에릭 슈미트가 그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1974년부터 보이지 않는 영토에서의 전쟁을 시작했다. 세 사람 모두 당시엔 일반인들은 존재조차 몰랐던 컴퓨터에 빠졌고 그것이 가져올 변화를 예상이라도 한 듯 관련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들은 각각 IT 산업의 하드웨어(애플), 소프트웨어(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구글) 분야를 선도하며 우리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선물했다.
가장 흥미로운 챕터는 첫 챕터와 마지막 챕터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확실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을 바라봐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애플은 왕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제국, 구글은 공화국이라 표현하며 각 기업의 특징을 세분화한 것이 재밌다. 왕국과 제국, 공화국의 차이만큼 이 기업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인공지능이 대중화될 미래를 예측한다. 인공지능이 삶으로 들어오면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할까? 저자는 코로나 19가 기업환경을 극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이런 시대일수록 개인과 기업은 IT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활용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서 기업은 IT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관심을 더 기울이면서 성장 방향을 잡아야 한다. 2020년 <유로피언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사이먼 돌란의 기고문에 따르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비즈니스와 교육은 디지털 기술로 대폭 이동할 것이다.
둘째, 팬데믹이나 다른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스마트 머신과 인간의 지능 협력을 준비해야 한다.
셋째, 직접적인 대면 접촉보다 디지털 채널을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우선 고려하라.
넷째, 온사이트 온디맨드 생산이 중요하다.
다섯째, 알고리즘에 기반한 솔루션 등의 디지털 소유권이 확대된다.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어떤 곡선을 그리며 성장하고 쇠퇴하고 사라졌는지를 아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나는 한때 검색으로 세계를 재패할 것 같았던 야후!가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 정말 궁금했다. 고양이 사진을 올리던 인스타그램에서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구매할 수 있게 되었을까? 아이러브스쿨이나 싸이월드는 심지어 페이스북보다 먼저 서비스를 시작하고도 우리 추억에만 남게 된 이유도 이 책 안에 다 들어있다.
IT라고 하면 스마트폰부터 떠올라 책으로만 읽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유튜브 <알릴레오 북스> 33, 34화를 시청하면 도움이 된다. 해당 프로그램에 정지훈 교수가 출연해 이 책과 관련된 저자의 생각을 자세하게 이야기하며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나 역시 책을 읽던 중에 이 방송을 시청하며 부가 설명을 들었다. IT역사를 다룬 책이라 그런지 독서 방식조차도 이토록 입체적이었는데 그럼으로써 더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시분초를 다투는 IT의 역사를 다루었음에도 10년 만에 개정판이 나온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이제 당신이 읽을 차례다. 결국은 책을 읽는 자가 미래를 읽는 법이니까.
알릴레오 북's <거의 모든 IT의 역사> 1,2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