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이중생활, 공간의 기도〉

Trio Credo의 구조적 해석과 감정의 응결

by 매체인간
공연 전


공연명: French vs German: 소리의 이중생활 1


일시/장소: 2025년 5월 20일(화) 오후 3시 / 로데아트센터 콘서트홀


연주: Trio Credo (피아노-권미혁, 바이올린-이근화, 첼로-남정현)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제5번 “유령” Op.70-1



비가 내릴 것 같은 오후,
나는 로데아트센터 콘서트홀에 앉아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 라벨과 베토벤.
서로 다른 두 시선이
같은 삼중주 형식 위에 놓인 순간.

공연의 제목은 “소리의 이중생활.”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중’이란 말에는
늘 경계의 감각이 포함되니까.


베토벤의 ‘유령’ 트리오가 시작되었다.

음악은 단단했고, 질서정연했으며,
특히 2악장의 고요는 침묵의 내부를 드러내듯

어딘가 존재의 바깥을 울리고 있었다.


나는 그 조용한 소리 속에서

악기가 ‘소리를 낸다’는 감각보다

소리를 머물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울림은 공간 안에
시간의 결을 남겼다.


그 순간, 다시 기억이 났다.
음악은 소리로 공간에 정보를 주는 행위라는 것을.
그리고 그 정보는
기억, 예감, 기다림으로 이어져
공간을 과거-현재-미래의 기도처로 만든다.




라벨 피아노 삼중주 가단조



라벨의 트리오가 이어졌다.
피아노의 움직임은 아주 미세했다.
때로는 숨처럼,
때로는 수면 위에 얹힌 먼지처럼.

하지만 그 미세함이

오히려 더욱 깊은 시간의 입구가 되었다.


어느 순간
익숙한 선율이 들려왔다.
아리랑과 비슷한 무언가.


나는 거기서
민족적 기억이 아니라,
공통된 감정의 진동수를 들었다.

라벨이 전한 것은 멜로디가 아니라
공간을 감각하는 방식이었다.

음악은 시간을 넘지 않는다.
대신 음악은
시간 안에 미래를 배치한다.


그것은 지금 이곳에 없지만
곧 도착할 어떤 감정,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울림.


그것이 내가 음악을 들을 때마다
기도처럼 느끼는 이유다.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어떤 신의 이름도 없지만,
그 침묵의 사이에
몸이 정렬되고, 마음이 열리고,
공간이 응답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음악은 공간 속에 미래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미래를 기다리는 오늘의 청중이었다.


공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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