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론성지 피정
배론성지로 향하는 세 시간 동안 막달레나 형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사랑하는 반쪽을 잃었어요. 남편이 한두 달 안에 간다는 선고를 받고, 40일 만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나도 살고 싶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아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딸이 있어요.”
형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상황을 OX로 보세요.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이 세상에 없어요. 베네딕다의 아이는 아빠가 있어요. 하지만 그 아빠에게는 사랑이 없어요. 그냥 그 사실을 인정하면 돼요. 나 자신을 찾아야 해요. 나 자신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엄마에게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세요. 사람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기꺼이 받으세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전 동생이 하늘나라에 가고, 저는 사람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딸과 둘이 살면서 사람 손 하나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또 그 부재가 얼마나 큰 빈자리를 남기는지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제가 너무 아까워요.”
⸻
성지에 도착해 점심을 기다리던 중, 1998년 해미 군종성당에서 뵈었던 이정훈 클레멘스 신부님을 다시 만났다.
그때 나는 가톨릭대 신학과 1학년이었고, 부대 안 노래방에서 ‘유쾌한 씨의 껌 씹는 방법’을 불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부님은 그 모습을 귀여워해 주셨고,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오늘도 여전히 따뜻했다.
신부님은 식사 중인 내게 다가와 김효준 신부님과 통화하면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권하셨다. 그날 오후 두 시, 허브사랑에서 두 시간을 면담했다.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이어 주는 연결이었다. 피정의 시작부터 이미 주님의 계획 안에 내가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사랑 많은 에디타 구역장님은 암 진단을 받은 내가 피곤할까 봐 노심초사하셨다.
나는 이번 피정에서 빠지겠다고 했었지만, 구역장님은 오히려 밥을 사주시며 말씀하셨다.
“피정에 오기만 하세요. 방에서 누워 있다 가셔도 괜찮아요.”
그 따뜻한 제안 덕분에 나는 용기를 내어 피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믿음이 깊은 신덕 봉사자님께서 입회 2반을 모두 모이게 하셨다. 그 자리에서 내게 말씀하셨다.
“아픈 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말은 발상의 전환이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저녁 자리에서도 신덕 봉사자님은 나를 불러 주셨다. 걱정해주는 이들의 곁에서 밥을 먹으며 나는 깊이 깨달았다.
나는 단지 진단을 받았을 뿐인데, 그래서 배려의 혜택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진단받지 못했을 뿐, 마음과 몸에 감춰진 고통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이 더 깊이 아플 수도 있다. 나처럼 배려받아야 할 이들이 내 곁에 있다.
⸻
막달레나 형님의 진솔한 대화, 에디타 구역장님의 세심한 배려, 신덕 봉사자님의 위로와 권면, 이정훈 신부님과의 우연 같은 재회와 면담.
이 모든 만남은 끊어진 사건들이 아니라, 묵주알처럼 이어져 있는 은총의 사슬이었다. 피정은 시작부터 끝까지 의미가 있었고, 주님께서 준비하신 연결의 길 위에 내가 서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가 받은 배려는 단지 위로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또 다른 이들을 살피게 하는 눈을 열어준다. 내가 받은 선물은 결국 흘러가야 할 은총이다.
“주님, 제가 받은 배려를 나누게 하소서.“
#배론성지
#피정
#암환자
#가톨릭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