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문학과 숫자의 기술 :

전환기적 인간 소통으로서의 영화

by 매체인간


정보통신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류의 대표적인 소통도구는 문자에서 콘텐츠로 변했다. 문자의 지위 변화에 따라 문학 역시 영화의 내용을 담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콘텐츠의 산파로 변모하기도 하였다. 또는 소통 구조의 변화로 역으로 플랫폼을 통해 문학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과거 문학의 대상은 텍스트의 해석과 의미였다. 하지만 시대는 그 작업을 더 이상 요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인간 삶을 이루는 지각이 변하고 움직이면서, 영화 역시 문학이 걸었던 길을 뒤 따라 가고 있다. 참신한 담론이 요구되는 때이다.
문학과 영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어떠한가? 비교적 많은 문학 연구와 담론들이 텍스트와 스토리에 대한 의미와 해석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은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영화 자체에 대한 구성주의적 시각은 기존의 연구들에서 쉽게 찾기 어려웠다. '영화 trans 문화'의 주제에서 탈경계는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인간 소통이 치밀하게 연결-구조화되면서 경계의 의미가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탈경계적 · 구성주의적 시각은 영화나 텍스트의 의미 해석보다 소통 도구로서의 특징에 주목하는 것이며, 영화를 ‘문자의 문화와 숫자의 기술이 균형적 소통을 하는 소통 그 자체’로 접근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영화 담론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성찰하고 더불어 문학이 진취적인 주체로서 미래에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


1) 시대가 요구하는 문학의 변화


문학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그 변주의 최근 배경에는 디지털 기술과 정보통신이 있다. 소통 도구의 측면에서 인류 내러티브의 변천은 설화, 문학, 영화, 디지털콘텐츠 순서로 볼 수 있다. 설화가 문학이 되고, 문학이 영화가 되고, 영화는 콘텐츠(짤방-짧은 동영상, 웹툰, 게임, 이모티콘 등)가 되었다. 설화가 문학이 된 데에는 소통 도구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데, 구두언어에서 문자언어로 전환된 것이다. 소통 도구의 측면에서 본 문자와 인쇄술의 발견은 인간 삶을 체계적인 제도로 근대화시키는 혁명이었다. 문학이 영화가 된 배경에는 소통 도구가 문자언어에서 동영상(기술적 형상)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화는 새로운 소통 도구로서 획기적인 역할을 충실히 했다. 인터넷이 발견되고, 인터넷이 주체의 움직임에 따라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소통도구는 영화에서 디지털화된 콘텐츠로 전환되었다. 문학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를 지나, 다양한 콘텐츠가 혼종되어 서로의 영역에 침식되거나 예상하지 않았던 영역에서 문학적 요소가 드러나는 것은 소통도구의 변화와 구조와 관련이 있다. 소통 도구와 구조가 그것을 작동시키는 사유방식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하이데거, 맥루한, 플루서를 통해서 드러났다. 시대가 요구하는 문학의 변화는 소통 도구와 구조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2)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 문학과 기술


이 시대의 인간이 유희하는 장면을 포착해 보면, 그것은 문학도, 영화도 아닌 짤방(짧은 동영상)이다. sns를 통해 순간순간 변모해가는, 살아있는 소통 그 자체가 인간 유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책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보고, 검색과 저장이 일상화된 지성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는 2D, 3D, 4D 기술을 넘어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게임화되고, 엔터테인먼트 영역을 넘어 교육과 사회, 산업 등 삶의 구성에 영향을 주는 매체로 재매개화되고 있다. 영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화를 위해 영화를 구성하는 단위를 소통 도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문자의 문학과 숫자의 기술로 볼 수 있다. 문학을 구성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이끄는 기본 단위를 문자, 글자라고 했을 때, 기술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숫자이다. 더불어 문학과 기술을 등치관계로 둔 것은 문자중심적 텍스트 분석 방식에서 벗어나 영화를 구성주의적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한 것이다. 실제 집안에서 혹은 손안에서 쉽게 다운받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의 스토리는 예전만큼 위용을 떨치지 못한다. 현상적으로 영화관의 생존여부는 스토리만큼 그래픽과 기술력을 통해 관람객이 아닌 체험객(유저)이 되어버린 소비자들의 실감이나 몰입 만족도와 관련이 있다.


3) 문학과 기술이 영화를 구성하는 방법


영화의 구성에서 문학과 기술이 드러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문학은 문자와 그 문자를 해독하는 사유를 통해 구현되고, 기술은 숫자와 그 숫자를 통해 세계를 구성하는 인간의 이성작용을 통해 드러난다. 이 두 가지 방식은 시간성과 공간성으로 비교적 뚜렷하게 구별이 된다. 영화 안에서 문학의 역할을 확인해보면, 내러티브의 시간성으로 축약할 수 있다. 문자를 코드화하는 방법 역시 시간의 흐름과 관계가 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시간을 정직하게 소비한다는 점에서 문학의 내러티브와 같다. 하지만 숫자는 문자와 달리 논리를 통해 시간을 접거나, 기술 등을 통해 공간 인지를 상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영화는 문자와 숫자의 기초단위를 통해 문학과 기술을 시간과 공간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는 문자의 문화와 숫자의 기술이 균형적인 소통을 이루었을 때 높아진다. 영화의 구성은 문학의 기초단위인 문자와 기술의 기초단위인 숫자의 상호 소통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문학에서 왔으며, 영화의 상징화된 공간은 기술로부터 왔다. 소통의 방식에서 본 영화는 문학이 차지하는 비율만큼 기술력을 주목 한다. 내러티브의 완성도와 더불어 카메라 구조를 비롯한 음향, 그래픽 등 기술은 내러티브를 돋보이게 하는 도구의 역할이 아닌, 영화 자체의 구성 요소로 보아야 한다. 이는 기존의 매체나 도구를 향한 시선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이 다른 디지털 콘텐츠와 만나는 지점에서도 소통 방식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조연 캐릭터가 새로운 스토리를 통해 주연으로 개발되어가는 과정은 기존의 이야기 중심 관점에서 볼 수 없었던 확장이다. 수평적 구조의 소통 방식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기존의 문학과 영화의 담론이 문자중심적이었다는 것은 텍스트의 의미와 해석에 주로 주목해왔던 것과 관련이 있다. 인물과 사건, 역사와 배경 등은 텍스트 자체, 이야기 자체를 담론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트랜스를 주제화하며 문학과 영화를 주목하는 것은 새로운 담론의 솟구침을 기대하는 것이다. 한때 성공한 산업의 상징이었던 영화관은 체험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쇄신해야할 기로에 서 있다. 스토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종이와 이성으로 경계화된 문학에서 오페라, 연극 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에서도 필요로 하는 것은 시대를 깊게 통찰하고, 현실의 한계를 흔드는 문학적 상상력과 언어를 통해 구성된 세련된 문화적 소통 능력이다. 게임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4차산업혁명 콘텐츠로 문학과 영화를 대신해 문화원형을 담지한 스토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문학이 스토리에 대한 충성도 못지않게, 물리학과 수학의 문제해결에서 문자가 줄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도 문학의 능동적인 자기 발견이 될 수 있다. 문학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위상은 예전과 다르다. 문학은 냉철한 현실 진단을 통해 진취적인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기술력의 현실을 인문학적으로 포장해주려는 것이 아니다. 문자중심주의의 해체의 거듭된 요구는 문학의 경계안에서 안주하려는 태도에 대한 폭로이자, 문학의 잠재성과 가능성의 사각지대를 찾아나서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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