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을 보고 나오면서, 자연스레 '덩케르크'가 떠올랐습니다.
무채색의 단조로움 속에서도 화면 하나하나가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화려한 액션이나 신파 없이도 묵직하게 관객을 몰입시키는 그 특유의 정서가 깊이 와 닿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조명과 그림자의 대비는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습니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독립운동가들의 내면적 고뇌와 광복을 향한 간절한 염원을 상징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배우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빛과 어둠은 그 시대를 관통하는 슬픔과 희망을 그대로 담아내는 듯했지요.
특히 영화의 빛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선 상징적 장치로 기능했습니다.
그 빛은 때로는 억압의 도구로 때로는 희망의 표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음지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그들이 선택한 결의와 용기를 대변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어둠 속에 웅크렸다가 빛으로 향하는 순간은 마치 모든 고난을 딛고 일어서려는 독립운동가들의 의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마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사진작가가 깨달았던 것처럼 이 영화는 피사체가 아니라 '빛'을 찍고 있었습니다.
빛과 그 주변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하얼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감독의 접근 방식 또한 매우 신중하고 대담했습니다.
흔히 역사 영화에서 기대할 법한 극적 서사나 감정적 신파 대신 이 영화는 안중근 의사의 내면에 집중했습니다.
그의 두려움, 고독, 그리고 결단에 이르기까지의 심리적 여정을 차분히 그려내며,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의도적으로 피했습니다.
"안중근을 영웅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은 한 인간으로서의 안중근 그의 인간적 고뇌와 결의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에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하얼빈 역에서의 암살 장면은 영화의 정점이 되어야 할 부분이었지만 그 긴박감과 극적 연출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일본 소좌라는 세 인물의 대비와 얽힘을 좀 더 세밀하게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었다면 관객들에게 더 큰 긴장감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암살 순간의 절정에서 세 인물의 입장과 감정이 좀 더 생생하게 맞물렸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영화 속 가상의 캐릭터인 김상현과 공부인도 흥미로운 설정이었지만 서사적으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특히 밀정 설정은 긴장감을 만들어내려는 의도는 보였으나 그 당위성이 부족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덕순과 김상현 사이의 긴장감을 더 심도 있게 그렸더라면 이야기가 더욱 흡입력 있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릴리 프랭키의 연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의 연기는 절제되었지만 제국주의의 교만함과 당당함을 조금 더 부각했더라면 캐릭터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졌을 것 같았습니다.
특히 담배 연기가 자욱한 장면이나 창밖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기차의 흔들림을 활용해 그의 심리적 불안감을 표현했다면 더 설득력 있는 장면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하얼빈'은 분명히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얼빈'은 대단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CJ가 300억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이런 진중하고 예술적인 영화를 만든 것은 그 자체로 깊이 감사한 일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흥행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품격 있게 재조명한 도전적인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며 화면 속에 담긴 빛과 어둠, 그리고 인물들의 움직임이 전하는 정서가 마음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시대의 혼란과 투사들의 결의가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그 정성이 담긴 장면 장면이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하얼빈'은 단순히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예술적 깊이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독립운동의 숭고함과 역사의 무게를 담담히 그러나 깊이 있게 표현한 이 영화는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백하면서도 강렬한 울림을 남깁니다.
이 영화가 앞으로도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이러한 작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까메오 그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