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entMeditator Oct 14. 2024

Bette Davis, 그녀의 눈빛

어제 사무실에서 잠시 숨 돌릴 겸 라디오를 조용히 틀어놓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이란 공간에서라면 조금은 꺼림칙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묘하게도 이런 몰래 듣는 라디오가 주는 은밀한 즐거움이 있잖아요.
그러던 중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눈앞에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그 노래는 바로 Bette Davis Eyes였습니다




그 시절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국민학교 6학년이었는지 중학교 1학년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때 처음 팝송이라는 세계가 제 앞에 열렸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에게 이 곡은 그저 영어로 된 노래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해주는 마법 같았습니다.
가사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 분위기 그리고 뭔지 모를 쓸쓸하면서도 매력적인 멜로디가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들은 Bette Davis Eyes는 어딘가 달랐어요.
원곡보다는 훨씬 차분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랄까요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분에 Shazam을 켜서 확인해보니 테일러 스위프트가 라이브에서 부른 버전이더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낡은 필름 속 풍경을 한 장씩 펼쳐내듯이 예전의 추억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했어요.
마치 오래된 사진을 다시 꺼내보는 기분이랄까요.




어린 시절 아직은 세상이 무척이나 넓고 복잡하게 느껴지던 그때가 생각났습니다.
팝송은 그 시절에 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세상을 꿈꾸게 하던 창문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그 팝송의 세계가 한결 가까워져 있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것들이 어느덧 제 삶의 한 부분이 되었네요.
테일러의 목소리로 부르는 이 노래가 묘하게도 지금의 나를 어릴 적 그 순간으로 돌려보내주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졌습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듣는 옛 노래들은 예전과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한때는 그저 신기하고 멋져 보였던 노래가 이제는 그 속에서 사라진 시간과 지나온 삶을 엿보게 하니까요.
테일러 스위프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그 시절의 기억에 살며시 따스한 감정이 덧입혀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 익숙한 노래가 잠깐의 틈을 타 저를 예전으로 데려가 준 덕에 오후의 사무실 책상 위는 아련하고 따뜻하게 추억으로 물들어갔습니다.
추억이란 건 참 묘한 힘을 가진 것 같아요.
그저 한 곡의 노래가 다시금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어릴 적 그 시절의 설렘과 지금의 내 모습이 겹쳐지게 하는 거죠.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노래를 공유하며 나이와 세월을 뛰어넘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스래쉬 메탈의 전설 슬레이어 - 그 네번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