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벚꽃과 내가 남았다

by 참지않긔
ChatGPT Image 2025년 4월 9일 오후 01_45_45.png



벚꽃은 매년 피는데 나는 매년 똑같이 생겼다.

꽃은 흔들리고, 사람은 설레고, 연인은 키스를 나눈다.

그 가운데서 나는…

"어우, 꽃가루 알레르기 쩌네" 라며 기침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친구가 말했다.

“야, 너 여기 좀 서봐.

지브리 느낌 나게 찍어줄게.”

지브리?

설렘이 몰려왔다.

살면서 한 번쯤은 나도 하울처럼 나와보고 싶지 않겠는가?

벚꽃 아래에서 미소 짓는 그 무심한 남자…

근데 나는 그 미소를 안 지었고

그 무심함은 그냥 진심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을 뿐이었다.



친구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말없이 내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나는 멈췄고, 숨도 안 쉬었다.

왜냐면 내가 숨을 쉬면…

콧구멍이 커지니까.

찰칵.

“좋아, 이걸로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줄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채찍피티 형님을 꺼내 사진을 넣었다.

나는 조용히 바랐다.

제발... 하울 아니면 최소 바람계곡 배경단역이라도...



잠시 후, 친구는 화면을 보여줬다.

나는 기대했다.

“이건 뭐… 분위기 있는 미중년 정도는 나오겠지?”

그런데 화면 속의 나는…

산적 두목. 그것도 말 안 하는 타입.

이마에는 주름이 강하게 살아 있었고,

얼굴은 "우리 마을을 통과하려면 세금을 내고 가라"를 말하려다 말아버린 표정.

입술은 일직선.

눈빛은 누군가 실수하면 바로 뒤에서 칼 던질 각.

이게… 지브리냐?

내 친구는 말했다.

“와 진짜 잘 나왔다ㅋㅋㅋㅋ 약간 그거 같아. 몬스터들 통제하는 장군 스타일.”



게다가 머리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카락은 포기했지만, 두피 위에는 철학이 남아 있다.

지브리의 캐릭터는 대부분 머리카락이 흐느적거리는데
내 지브리 버전은 머리 대신 빛나는 황금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친구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야 이거 대박이야. 너랑 눈 마주치면 선택지 3개 떠야 돼.”
① 싸운다
② 돈 낸다
③ 도망간다



벚꽃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커플샷을 찍고, 가족은 피크닉을 즐기고, 아이들은 꽃잎을 잡으려 뛰어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 한가운데서

표정 하나 안 바뀐 채 서 있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말했다.

“형님 이거 포스터임?”

“뭔가… 세계관 설명해줘요.”

“형님은 지브리의 인간흑막임. 애니메이션 끝날 때까지 정체 안 밝혀지는 그 사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 주인공은 꽃이지만, 악역도 있어야 얘기가 되지.

벚꽃은 흐드러지고,

나는 흐트러짐 없이 그 옆에 서 있었다.



벚꽃은 졌다.

사람들도 떠났다.

SNS에는 수많은 인생샷들이 올라오고

그 중에 내 사진도 있었다.

"봄, 그리고 NPC 장군"

조회수는 1만을 넘었고,

댓글에는 "이 형님 누구임? 설렘파괴자?"

"아직 선택지 못 고른 중임"

"이거 고백하러 가면 퀘스트 깨는 건가요?"가 달렸다.

나는 웃었다.

그래…

꽃은 흔들리고, 머리카락은 없고

하지만 나는

봄이라는 이벤트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은 존재였다.

그렇게 나는…

지브리 악역의 얼굴로

이 봄날을 완성했다.






어제 찍은 사진으로 채찍피티 돌려보니

아름다운 인물 이미지가 나왔어요


절대로 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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