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을 처음 알았을 땐, 뭔가 대단한 건 줄 알았다.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브.런.치.북.
이건 약간 뉴욕 브루클린에서 9시에 바질 파스타 먹으며 글 쓰는 누군가가
"이건 나의 브런치북이에요"라고 말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냥 매거진이랑 별 차이 없다.
표지 있고, 목차 있고, 형식 좀 다르고... 그게 다다.
막상 발행해도 주변에서 “우와!”보다는
“그게 뭐야?”가 더 많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브런치북이 출판돼?”라고 물었다.
아니, 그건 그냥 내가 쓴 거라고...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이는 그 포맷에 혹해서
나도 한 번은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목차도 짜고, 커버도 만들고 "시리즈로 묶어야지"라는 생각도 했다.
첫 화 올릴 때만 해도 열정이 미쳤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발행하겠습니다” 같은 말도 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왜 그렇게 자신감이 넘쳤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사무실 출근하는 줄.
물론 그 패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딱 두 편 쓰고 끝났다.
세 번째 글은 “아무 글이나 써야 하는데”라는 말만 하다가 하루가 갔고
네 번째 글은 “요즘은 좀 감정이 안 와”라는 말로 덮었다.
감정은 안 오고, 치킨만 왔다.
매번.
문제는 일정이다.
정해진 날짜에 맞춰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쓰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날엔
갑자기 글 대신 에어프라이어에 군고구마 넣는 법이 더 궁금해진다.
글은 안 쓰고,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있다.
그런 날도 많았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이건 내 방식이 아니구나.
계획적인 브런치북은 안 맞고
그냥 생각날 때 툭툭 매거진에 쓰는 게 훨씬 나았다.
그래서 요즘은 그걸로 만족한다.
어차피 둘 다 발행하면 사람들한테 똑같이 노출되고
댓글 다는 건 운이다.
브런치북이라고 갑자기 박수 소리가 울리는 것도 아니다.
정작 가장 많이 읽힌 글은
치킨을 몇 조각 먹어야 행복해지는가라는 글이었다.
그건 매거진이었다.
이쯤 되면, 브런치북은 내게 로또 같은 존재는 아니다.
로또는 그래도 안 되면 안 된 티가 나는데
브런치북은 안 돼도 아무도 모른다.
그냥 조용히, 아주 자연스럽게 묻힌다.
묘하게... 고요하고... 평화롭다.
묘비명이 있다면 이럴 것 같다.
“이 글은 목차 2번이었으며, 이후 발행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 또 생각날지도 모른다.
“이번엔 진짜 진심으로 써야지” 같은 말을 하면서.
그땐 또 열심히 목차 짜고, 표지 만들고
글은 안 쓰고, 스티비 이메일 뉴스레터 구독하면서
창작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겠지.
어쨌든 나는 오늘도 매거진에 한 편 올렸다.
그거면 됐다.
브런치북은... 그냥 형태의 차이일 뿐이다.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썼다는 게 중요하지.
그리고 어쩌면, 오늘 쓴 이 글이
나중에 ‘브런치북으로 발행해볼까?’ 싶은 글이 될 수도 있다.
...라고 또 생각해본다.
그러다 내일은 이 글을 삭제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
창작이란 다 그런 거니까.
치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