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은 아직 내 안에 있다

by 참지않긔


봄은 언제나 겹쳐 있다.

빛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이, 따뜻함과 스산함이, 그 안에 함께 있다.

사람들은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바람의 냄새가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창문을 반쯤 열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골목 어귀에 맴돌면, 그 순간 알 수 있다.

아, 봄이구나.




그렇게 봄은 언제나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언제부턴가 나는 봄이 오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꽃이 피는 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떨어지는 것이 늘 먼저 보였다.

잎보다 먼저 진 꽃잎들. 걷는 발 아래에 쌓여 있는 연분홍의 것들.

그렇게 매년의 봄을 보면서, 나는 조금씩 나의 봄도 생각하게 되었다.




지나온 시간들 중에도 봄은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장면들.

한 사람의 웃음, 아이의 첫 걸음, 손에 쥐어준 아이스크림의 차가운 감촉.

그것들은 모두 빛나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아주 천천히,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뒤편에는 항상 ‘지나감’이 있었다.




한 해의 봄을 지나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헛헛해진다.

무언가를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계절인데도, 나는 종종 그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다.

마치 내게는 더 이상 돌아올 봄이 없다는 듯이.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는 걸, 지금은 안다.

시간은 흐르지만 계절은 돌고 돈다.

그 말이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자주 잊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진실이 있다.

겨울이 아무리 길고 차가워도, 봄은 다시 오니까.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그 순환 속에서 나도 다시 걷게 되었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종종 낯설게 느낀다.

예전의 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조금 더 느릿하고, 조금 더 조용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더 이상 거창한 시작을 꿈꾸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다시 피어나는 봄이 있다.

비교하자면, 그것은 예전의 찬란한 빛과는 다르다.

이제의 봄은 부드러운 음영처럼 마음속을 흘러간다.

조금 느린 대신, 오래 머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이다.

무언가를 더 강하게 느끼기보다는, 더 작고 느린 것을 알아채는 능력이 생기는 것.

꽃향기의 미세한 떨림, 저녁 햇살이 벽에 그리는 선, 나뭇잎 사이로 흘러드는 바람의 방향.

그런 것들을 붙잡을 수 있게 되는 것.

나는 지금 그것들을 배우고 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어떤 날은 오래 전의 친구가 생각나고,

어떤 날은 창밖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문득 누군가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그 모든 순간이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이제는 그저 조용히 바라볼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내 삶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크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작은 변화, 사소한 흔들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나는 그런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 안에서 다시 나를 발견한다.




요즘 나는 아침이면 창문을 연다.

바람이 천천히 방 안으로 스며들고, 커튼 끝이 느리게 흔들린다.

베란다 구석에 놓아둔 화분 몇 개가 조금씩 변해간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자라 있는 줄기, 미세하게 달라진 잎의 각도.

햇살은 조용히 흘러들고, 그 빛은 벽지를 따라 퍼지며 방 안을 따뜻하게 만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순간에, 나는 문득 깨닫는다.

이 조용한 시간이, 내게 다시 돌아온 봄이라는 것을.




한때 너무 멀게 느껴졌던 그것이, 지금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

더는 예전과 같은 모양은 아니지만, 나는 분명 다시 피어나고 있다.




이제 나는 안다.

내 삶에 다시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조용히,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지금의 나는 그 봄 속에서 걷고 있다.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고, 그저 이 계절의 빛과 향기 속에 서서,

조금씩 조금씩, 다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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