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시편 3편을 묵상하며

by 참지않긔

A David Psalm, When He Escaped for His Life from Absalom, His Son


GOD! Look! Enemies past counting!

Enemies sprouting like mushrooms,

Mobs of them all around me, roaring their mockery:

“Hah! No help for him from God!”


But you, GOD, shield me on all sides;

You ground my feet, you lift my head high;


With all my might I shout up to GOD,

His answers thunder from the holy mountain.


I stretch myself out. I sleep.

Then I’m up again—rested, tall and steady,

Fearless before the enemy mobs

Coming at me from all sides.


Up, GOD! My God, help me!

Slap their faces,

First this cheek, then the other,

Your fist hard in their teeth!


Real help comes from GOD.

Your blessing clothes your people!


Massage 성경으로 읽어보는 시편 3편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밤의 어둠보다 더 짙은 영혼의 밤을 지나게 됩니다.

그 밤은 단지 해가 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모든 믿음이 흔들리고, 내가 붙들고 있던 삶의 구조가 조용히 무너지는 내면의 격랑과 침묵의 골짜기입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갑자기 나를 향해 등을 돌린 날, 가장 신뢰하던 이에게 조용히 배신당한 날, 혹은 설명도 없이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은 그런 날들 말입니다.

그날 밤, 우리는 눈을 감습니다.

숨을 참으며 온몸으로 떨리는 감정을 껴안은 채 이 밤이 끝나기를, 이 고요가 지나가기를 조용히 울며 기다립니다.


그런 한밤중에 오래 전 다윗도 기도했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던 날.

왕궁도, 권력도, 충성도 모두 사라지고 광야의 벌판에 홀로 남겨진 그 밤에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יְהוָה מָה־רַבּוּ צָרָי רַבִּים קָמִים עָלָי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히브리어 ‘צָרָי (tzarai)’는 단순한 ‘적’이 아니라 ‘나를 조여오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죄여오는 고통, 압박, 공포...

다윗은 지금 단지 어떤 사람에게 쫓기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깊은 영혼의 위기 속에 있습니다.


그는 또다시 듣습니다. 사람들의 말소리를.

그 소리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신앙의 심장을 향한 조롱이었습니다.


אֵין יְשׁוּעָה לּוֹ בֵאלֹהִים סֶלָה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는 끝났어.

하나님조차도 그를 버리셨지.”

“믿음 좋다더니, 이게 뭔가요?”

그 말들이 칼처럼 그의 마음을 찌릅니다.

그리고 이따금 그 말들은 우리 마음 속에서도 속삭이듯 울려 퍼지곤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건 아닐까…?”


그러나 다윗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시선을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눈물로 젖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떨리는 입술로 고백합니다.


וְאַתָּה יְהוָה מָגֵן בַּעֲדִי כְּבוֹדִי וּמֵרִים רֹאשִׁי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내 머리를 드시는 자이십니다.”


여기서 ‘מָגֵן (magen)’은 몸의 일부만 가리는 작은 방패가 아니라 전신을 보호하며 적의 창을 대신 맞아주는 전장의 보호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위로의 말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나 대신 앞장서서 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כְּבוֹדִי (kevodi)’, 나의 영광이라는 말은 땅에 떨어진 나의 명예와 가치, 사람들에게 짓밟힌 내 이름을 하나님께서 다시 높이 들어올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מֵרִים רֹאשִׁי (merim roshi)’

그분은 고개를 숙인 나에게 다가오셔서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머리를 들어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다.”


다윗은 아직도 광야에 있습니다.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로 인해 다시 숨을 쉽니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고백을 이어갑니다.


אֲנִי שָׁכַבְתִּי וָאִישָׁנָה הֱקִיצוֹתִי כִּי יְהוָה יִסְמְכֵנִי

“내가 누워 자고, 깨어났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입니까.

그는 아직 도망자이고 내일도 불안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고, 깨어났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만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삶이 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평안이 찾아온다고.

쫓기고 있어도, 무너져 있어도, 눈을 감고 잠들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붙드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뜬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분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고백은 두려움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더 깊이 선택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감정을 초월한 신뢰.

상황을 넘어선 고백.

그것은 하나님의 품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결국 외침으로 터져 나옵니다.

마치 전쟁터의 함성처럼 다윗은 하나님께 절규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 외침은 단지 간청이 아닙니다.

이것은 절망의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믿음의 함성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믿음으로 이미 선포합니다.

“주께서 나의 대적들의 뺨을 치시고 악인의 이를 꺾으셨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광야이고 예루살렘은 여전히 아들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손이 이미 일하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의 기도는 그를 넘어서 흘러갑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이 기도는 개인의 위로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동체 전체를 위한 축복으로 확장됩니다.

내가 드린 눈물의 기도가 누군가의 인생을 살릴 수 있고 내가 밤새 외친 탄식이 누군가의 아침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나를 넘어 우리로 흐릅니다.

복음은 언제나 흘러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고백처럼 이 시편은 우리 삶 속에서도 여전히 울려야 합니다.

세상이 무너져도, 두려움이 찾아와도, 조롱이 우리를 덮쳐도 우리는 입을 열어 다시 고백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며, 내 머리를 드시는 자이십니다.”


이 고백은 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고백은 삶을 일으킵니다.

이 고백은 나를 다시 기도하게 하고 다시 살아내게 하며 다시 아침을 맞이하게 합니다.


오늘도 나는 속삭입니다.

“주님, 저는 자고, 일어나, 살아냅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조용히 그러나 굳게 고백합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언제든 당신의 영혼이 흔들릴 때,

이 고백을 다시 꺼내 읽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이 당신을 여전히 붙들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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