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Day 3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고난주간은 해마다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인도합니다.
이 한 주간은 달력의 일부가 아니라 시간을 가로지르며 존재를 흔드는 거룩한 침묵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 겸손한 발걸음, 사람들의 환호를 지나 골고다 언덕까지 묵묵히 걸으신 그 순종의 여정은 그분을 따르겠노라 고백한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 길은 높아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칭송받고 축복받는 길도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비우고 자기의 권리를 내려놓고 고난을 선택하며 끝내는 죽음에 이르시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서 “너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그분을 위하여 무엇을 잃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쥐고 살아가고 있는가?
바울은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자랑할 만한 것들, 삶을 지탱해온 모든 기반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합니다.
단지 버린 것이 아니라, 여긴 것입니다.
‘버림’은 과거형이지만 ‘여김’은 현재형입니다.
헬라어 원문 역시 그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도, 여전히, 반복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회고적 고백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가는 방향을 바꾼 결단이며 반복되는 신앙의 선택입니다.
그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고 율법에 흠이 없는 자였으며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이력서와도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는 단지 실패하거나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잃기로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단지 바울의 고백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향하여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배설물로 여기고 있는가?”
“너는 지금,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무엇을 내려놓았는가?”
오늘날 우리는 ‘성공’, ‘가치’, ‘자아실현’, ‘존재 증명’이라는 언어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학위와 커리어, 경제력과 인간관계를 끊임없이 쌓아가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는 자주, 그리고 깊이 지쳐갑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언어들이 바로 바울이 ‘배설물’이라 여긴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고난주간은 단지 예수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고난주간은 그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되는 자리이며 십자가가 내가 죽어야 할 자리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바울의 고백을 함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만 복음은 역사 속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나는 매일 무엇을 내려놓고 있는가?
정직함을 선택했을 때 손해를 보았던 기억, 순결함을 지키려다 조롱받았던 순간, 양보와 인내를 선택하며 오해받았던 때,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 십자가를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바울은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는 무엇을 버렸는지보다 무엇을 얻었는지에 집중합니다.
그가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주저함 없이, 미련 없이, 오히려 기쁨으로 자신이 의지하고 자랑하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며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비교를 통한 상대적 가치의 하향 조정이 아니라 전적인 가치 전복이었으며 세상의 중심에서 십자가의 중심으로 생의 중력이 옮겨지는 영혼의 본질적 회심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인생의 주어가 아니었으며 그의 문장은 '나는'으로 시작되지 않고, '그분을 위하여'라는 종속과 순복의 고백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살아내는 자의 언어로 고백을 넘어선 삶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처럼 강하지 못합니다.
그의 고백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을 속삭이지만 현실의 자리에서 똑같은 결단을 실행하기란 너무나 어렵고도 고통스럽습니다.
결단은 잠깐이나마 할 수 있지만 그 결단을 반복하여 삶의 습관이 되게 하는 일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말씀 앞에서 눈물 흘리고 다시금 시작하고자 마음을 다져보지만 며칠이 지나면 세상의 소리와 삶의 바쁨 속에 그 다짐은 흔들리고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쉽게 흔들리며, 계속해서 되돌아섭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안에 깊은 절망과 낙심이 파고들며 나는 왜 이토록 약한가 하는 자책의 회오리 속에서 헤매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로 그 무너짐의 순간에야말로 우리는 가장 진실하게 복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신앙의 기도이며 가장 정직한 예배의 시작입니다.
내가 비로소 스스로의 능력을 포기할 때 그리스도의 은혜는 비로소 내 안에 흐르기 시작합니다.
내가 채우고자 애썼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성령의 능력이 그 빈 자리에 임하게 됩니다.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죄인임을 인정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를 얻는다’는 선언은, 단지 결단의 열매가 아니라 전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는 누구에게나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는 자에게 흘러갑니다.
내 안에 나의 의와 자랑, 경력과 체면, 경험과 욕망이 가득 찬 채로는 은혜는 머물 수 없습니다.
은혜는 빈 자리를 찾고 낮은 자를 만나며 끝내는 비워진 가슴 위에 흘러들어와 예수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제 내려놓았던 것을 다시 쥐려는 손을 펴야 하며 어제 꺾었던 자존심이 오늘 다시 고개를 들 때 그것을 다시 낮춰야 합니다.
내려놓음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의 호흡과도 같은 반복의 행위입니다.
바울이 말한 ‘배설물로 여긴다’는 현재형 동사처럼 우리도 반복적으로,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삶의 선택들 앞에서 다시금 그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매일, 매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또다시 우리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고백에서 실천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결코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드려지는 작고 조용한 선택들, 그것들이야말로 가장 향기로운 제사요, 주님의 마음에 닿는 순종입니다.
오늘 하루,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내가 내려놓을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사소하지만 내 마음을 누르는 작은 자존심 하나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불친절한 말에 반응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내면의 절제일 수도 있으며 내 고집이 앞서가려는 순간 그것을 뒤로 미루고 침묵하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작고 은밀한 포기는 하나님 앞에서는 고귀한 드림이 됩니다.
내려놓음은 고통이 따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내려놓으려는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온 가치들이고, 나의 정체성을 구성해온 도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를 위해 내가 모든 것을 잃었노라.”
그 음성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깊이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분을 위해 오늘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나서 우리는 두 번째 걸음을 내디딥니다.
내려놓음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아가는 발걸음.
불편함을 감수하고 누군가의 필요를 돌아보는 일,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잠시 유보하고 타인을 먼저 세워주는 선택,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정직과 진실함을 지키는 용기—그 모든 행동은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질서 안에서는 복된 순종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음처럼 보일지 모르나 주님은 그것을 기뻐하시며 기억하십니다.
이러한 순종이 계속될 때 우리는 반드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눈에 띄게 극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속도보다 더디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진리는 항상 조용하고 꾸준히 우리 안에서 일을 합니다.
그 실천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 삶의 궤적이 어느새 복음의 궤적을 닮아가고 있음을, 내 말과 행동, 생각과 눈빛 속에 십자가의 흔적이 배어들고 있음을.
그러므로 우리는 주간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멈추어야 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지난 며칠간의 삶을 조심스럽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내려놓았던 감정, 꺾었던 말, 선택했던 순종, 기꺼이 감내한 오해—그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흘려주셨는가.
나는 그 안에서 어떤 평안을 맛보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깊은 위로가 되었는가를 가만히 헤아려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내려놓은 그 자리마다 주님은 나를 기다리고 계셨고 나를 채우고 계셨다는 것을.
그리하여 우리는 점점 더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더 이상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보다 주님을 더 깊이 얻기 위한 기쁨으로 우리의 내려놓음은 자발적이 되고 순종은 형식이 아니라 향기로 변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우리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배설물로 여긴 것은
그분을 얻기 위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