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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처 없이 떠나는 노래, 그 민중의 정언詩

by 참지않긔






어디 가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말했다.
타박타박, 타복 타복, 타박네 간다고.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오래된 눈물의 냄새가 스며 있었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이란 게 있다.
그건 사전에도 없고 문법에도 없는 것, 살아 있는 몸이 기억하는 고요한 절망 같은 것.


그 말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도착지는 없고 떠나야 할 이유만이 명확한 걸음.
‘타박네’는 지도에 없다.

그러나 모든 이의 가슴 안에는 있다.
외딴 산속일 수도, 지하철 끝자락일 수도, 시장 한복판의 소란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사각의 햇살일 수도 있다.
혹은 병원 복도 끝자락, 사랑을 붙잡을 수 없게 된 손끝 어딘가일지도.


그곳은 멀리 있다기보다 여기와는 다르게 아픈 곳이다.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말하자면 말해봤자 전해지지 않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결심이다.
그리고 그 결심이 너무 오래되었을 때 사람은 걷는다.

타박타박.


1924년, 『조선동요집』이라는 책에 ‘다북네’라는 이름으로 이 노래가 수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록으로서의 첫 등장이었을 뿐 이 노래는 이미 오랫동안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숨결로 불리고 있었으리라.
바람이 드는 부엌 끝에서, 젖먹이를 업은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장터에서 외면당한 늙은이의 입 안에서, 그리고 고개 숙인 자들의 마음 아래서.


이 노래의 주인공이 무당의 딸이었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어디에 그렇게 적혀 있냐고.
그러나 문학이란 원래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말해지지 않은 것, 기록되지 않은 것, 그럼에도 뼛속에 박혀 전해지는 것.


무당의 딸이라는 존재는 단지 한 인물의 정체성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그림자 아래 존재해온 모든 ‘경계인’들의 집합적 은유다.
신과 인간 사이, 삶과 죽음 사이, 주류와 주변 사이에서 늘 무언가를 중계했지만, 결국 배제당했던 존재.


그녀는 금기의 자식이다.
슬픔과 죽음을 다루는 사람의 핏줄로 태어난 이.
세상은 그녀의 존재를 애써 외면했고 그 외면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그녀는 아무도 묻지 않아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끝내 말이 아닌 걸음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타박네 간다.
그건 결코 가벼운 방랑이 아니다.
그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사람만이 시작할 수 있는, 심연의 발걸음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 길은 찬란하지 않고, 아무도 반기지 않으며 표지판 하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길이다.
무릎으로 기고 손으로 더듬고 몸으로 땅을 읽으며 가는 그 길.


무덤가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개똥참외 하나를 발견한다.
그건 누구도 준비해두지 않은 선물이고 어쩌면 자연이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건넨 위로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먹는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그 맛이, 엄마가 살아 있을 때 내게 주던 젖맛이었다는 것을.


그 한 입.
그 한 순간.
그것이 문학이고, 그것이 기적이며, 그것이 민중의 모든 노래가 지향하는 마지막 목적지다.


참외는 젖이고, 젖은 기억이고, 기억은 사랑이며, 사랑은 다시 살아가게 하는 작은, 그러나 완고한 이유다.


이 노래는 살아 있었다.
그 후 수십 년이 흐른 뒤 한 가수가 그것을 다시 불렀다.
양병집.
그는 오래된 민중의 울음을 노래로 불러올렸다.
그리고 금지당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정권은 슬픔을 두려워한다.
슬픔은 말이 되고 말은 노래가 되고 노래는 연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연대는 언젠가 폭발할 수도 있는 말 못 한 자들의 숨은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박네’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더 깊이 파묻혀 살아남았다.
그 노래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어떤 날은 꿈속에서, 어떤 날은 혼잣말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은밀히 불렸다.

타박네 간다.
그건 지금도 사람들이 말하는 말이다.
말 대신 꺼내는 마지막 몸짓.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문을 닫고 나서며 가방을 들고 걷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속으로 말한다.


타박네 간다.


그건 포기가 아니다.
그건 투쟁도 아니다.
그건 생존이다.
그리고 회복이다.


이 땅의 민중은 그렇게 살아왔다.
누군가 줄 명태도 내밀 가지도 거절하며 오직 자신만이 기억하는 진짜 사랑, 진짜 위안, 진짜 젖을 찾아 타박타박 걸어왔다.


그 걸음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 노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끝내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지도에는 없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 말.


“타박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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