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하고 부르는 날에
난 다 잊어버렸단다
철없던 나이도
꿈 많던 나이도
꽃다운 나이 반납하고
여보 소리 듣던 날
끄떡없을 두 손과
눈이 부신 미래로 가
까만 눈에 내가 있고
닮은 눈엔 당신이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네
고생했단 한마디에
밀린 마음 흘러가
어느새 우리도
훌쩍 커버렸구나
엄마 하고 부르던 날
난 다 잊어 버렸단다
눈물짓던 날들도
내 이름도
어느덧 머리맡에 재어두던
벽에 적은 선들은
처음 너를 만난 날
내 나이를 넘어간다
“엄마, 라는 단어를 부르지 않게 된 시간”
출근길이었다.
새벽을 지나온 공기가 아직 몸속에 머물고 있었고 발끝은 바닥을 밟고 있으되 어딘가 이질적인 부유감이 따라붙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비비의 노래, ‘일기장’.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었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무심코 흘러간 가사 하나가 나를 무너뜨렸다.
“엄마 하고 부르던 날에 / 난 다 잊어버렸단다.”
그 문장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뚫고 지나갔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감정은 물처럼 넘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뼈 사이로 스며드는 미세한 침전물처럼 작용한다.
나는 걷고 있었고, 음악은 흘렀고, 도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길을 계속했고, 그 속에서 나만 아주 느리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엄마는 나의 시간 속에서 자주 부재했고, 자주 지워졌다.
아침 일찍 문 닫히는 소리, 조용한 부엌, 전기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의 김 냄새.
엄마는 그 모든 주변부에 있었고 중심에는 없었다.
그러나 삶은 종종,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자란다.
나는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서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괜찮다”는 말 속에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 감정을 설명한 적이 없었다.
내가 울어도 이유를 묻지 않았고 내가 참아도 칭찬하지 않았다.
대신 반찬을 한 가지 더 얹었고 쪽지를 남겼다.
‘계란 데워 먹어라’
문장 끝에 마침표가 없었던 것을 나는 오래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그 침묵의 문장들이 엄마가 내게 남긴 유일한 편지였는지도 모른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쥐어주려 했지만, 그 모든 것도 애쓴 사랑이었음을.”
작사가 백아의 노트에 담긴 이 문장은 내가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문장처럼 마음에 걸린다.
사랑이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나는 아주 늦게야 알았다.
누군가는 말 없는 부재를, 누군가는 일상의 무심함을, 누군가는 끝내 하지 못한 사과를 ‘애쓴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엄마의 이름을 안다.
그 이름은 내 주민등록등본 어디쯤에도 찍혀 있고 내 국민학교 입학원서 맨 아래에도 눌려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서로를 역할로만 불렀다.
엄마는 엄마였고 나는 아이였고 그 이상을 부를 여유도, 필요도, 감정도 없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오래도록 함께 있었고 그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언어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글은 회고도 아니고 고백도 아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려는 몸짓 같은 것을 흉내 내는 중이다.
나는 엄마를 아직도 부르지 못한다.
그 단어는 내게 너무 커서 입안 어디쯤에서 걸린다.
걸리는 그 감정이 불편하고, 쑥스럽고, 때론 지나치게 날것이라 나는 차라리 긴 문장을 쓴다.
부르지 못한 단어 대신 불안정한 문장을 길게 늘어뜨린다.
어쩌면 문장이 내 방식의 이름 부르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글은 늦은 이름 부르기이자 끝내 부르지 못할 것 같은 이름을 향한 조용한 응시다.
엄마, 라는 단어는 오늘도 나를 스쳐간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데에 실패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실패를 기록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조심스러운 진심이다.